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장쭤린의 임무는 만주를 장악하고 화북지방으로 영역을 넓히는 계획을 시험하는 것까지가 전부였던 것이고,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 퇴각하는 그를 일본이 관동군 참모들을 내세워 계획적으로 제거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청나라의 잔존 군벌인 장쭤린보다는 국제적으로 더 인정받을 수 있는, 정통성 있는 인물을 내세워 나라를 건국하고 그 나라를 식민통치하는 것이 일본으로서는 더 명분이 서기 때문이다. 이런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만주국의 건국이다.
일본이 만주국을 건국해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손쉽게 대한제국과 만주국을 통치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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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만주국을 별도로 건국하지 않을 경우 이미 만주에 터전을 일구고 있는 대한제국의 백성들과 만주의 만주족은 물론 만주와 한반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대한제국 백성들까지 연합하여 일본에 저항한다면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만주국을 건국함으로써 역사적으로 증명된 청나라와 조선의 갈등을 표출시켜 이미 만주에서 생활하며 ‘대고려국’의 건국으로 만주의 주권을 갖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백성들과 청나라 후손들의 민심을 양분하여 분열을 초래한다면 식민지 지배가 훨씬 용이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게다가 비록 청나라가 패망하여 마지막 황제 부의가 천진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청나라의 발상지인 만주에 청나라 황제를 국왕으로 추대하여 국가를 세운다면 국제사회로부터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계산했던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만주와 한반도의 대한제국과 한족의 중국과 만주족을 각각 분리하는 것만이 대륙진출의 꿈을 가장 쉽게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했고, 그것은 ‘대고려국’ 건국을 포기하고 만주국 건국계획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일본의 의도와는 다르게 장쭤린의 암살로 인해서 그의 아들 장쉐량(張學良)이 지위를 계승하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반감으로 국민당 정부에 합류하자, 만주국을 세워 만주를 지배하려던 일본의 만주 정복 전략은 잠시 주춤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은 절대로 만주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일본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철도 선로를 스스로 폭파하고 그 사건이 장쉐량 지휘하의 중국군에 의한 소행이라고 몰아붙이며 관동군이 만주 침략을 개시했다. 1931년 10월 요녕성(遼寧省) 서부에 있는 도시 금주(錦州 : 진저우)를 폭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1932년 1월 장쉐량의 거점인 금주를 점령하고 2월에는 하얼빈을 점령하여 만주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이미 1931년 11월부터 준비했던 대로 천진에 망명 중이던 청나라 마지막 황제 애신각라부의(愛新覚羅溥儀 : 아이신기오로푸이)를 탈출시켜 만주국의 황제로 삼았다. 1932년 3월 1일 만주국 행정위원회가 건국을 선포하고, 3월 9일 애신각라부의가 국왕에 취임하고, 대동이라는 연호를 쓰는 새로운 국가인 만주국으로 출범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청나라를 건국한 여진족이 그들 스스로 만주족이라 칭하며 청나라를 세운 것에서 착안하여, 청나라가 중화민국에 의해 멸망하자 그들의 발상지인 만주에 그들 민족의 이름을 국호로 한 만주국을 건국하게 하였다. 이것은 ‘대고려국’이라는 발상에서 착안한 것이다.
만주에 독립국을 세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만주의 영토권자인 한민족을 내세워 건국하는 ‘대고려국’이 여러 가지 사정상 실현 불가능하게 되자, 청나라의 발상지라는 점에 착안해서 패망한 청나라 마지막 황제를 앞세워 만주국을 건국한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의도는 만주국의 건국표어인 오족협화의 왕도낙토(五族協和の王道樂土)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 의미는 만주족과 한족, 몽골족, 한민족 및 일본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족으로 일본을 구성하는 민족의 대표격인 야마토 족의 오족이 화합하여 부족함 없이 살기 좋은 땅을 구현하자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대고려국’ 건국계획 당시 ‘대고려국’의 구성 민족은 우리 한민족을 기반으로 하되 그 당시 고려국 안에 있는 백성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한다는 다민족 국가를 원칙으로 했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만주국은 ‘대고려국’의 건국 계획의 틀을 만주국으로 옮겨서 만주족을 수장으로 변형하여 시행한 것이다. (14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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