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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1918년 양기탁은 ‘대고려국’ 건국을 위해서 주사형과 함께 길림, 철령, 장춘 등을 경유하여 동지들 규합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주사형과 상하이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천진에서 상하이로 출발하던 중 누군가의 밀고로 왜놈 경찰에 체포되었다.
양기탁이 국내로 압송되어 중국 체류 금지 3년 처분을 받아 부자연스러운 몸이 되는 바람에 주사형과의 계획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해 12월 18일 경성의 장춘관에서, 중국에 갈 수 없는 양기탁이 중심이 되어 열린 ‘조선고사연구회’에 주사형과 스에나가 미사오가 참석한 것을 보면 당시 ‘대고려국’ 건국의 주체들은 열성적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이 모임은 겉으로는 대한제국의 고대사를 연구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대고려국’ 건국을 위한 모금이 목적이었다.
또한 전술한 바와 같이 1918년 3월 7일 정안립이 일왕을 독대하고, 실권자인 테라우치 마사다케를 만났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때 야당 당수인 도야마 미쓰루가 배석했는데, 도야마 미쓰루는 만주에 ‘대고려국’을 건국하는 것에 호의적이었다. 일본 내각도 하세가와 요시미치 대한제국 총독의 승인만 받으면 ‘대고려국’ 건국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안립은 서울에서 하세가와 총독을 만나 ‘대고려국’ 건설을 타진하였으나, 승인을 받지 못한다.
대한제국의 총독인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자신들이 병탄하고 있는 대한제국의 맥을 이어나가는 또 다른 독립 국가를 만주에 건국한다는 것을 절대로 허락할 리가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는 대한제국의 총독으로, 만주와 한반도가 이어져서 함께 항일투쟁을 전개한다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도야마 미쓰루는 겐요샤의 창립자 중 한 사람으로 일본 극우주의자다. 을미왜변을 주동한 단체이기도 한 겐요샤는 일본의 대륙진출 야망을 군이 아닌 민간단체에서 주도적으로 벌여오던 단체이니 만주에 독립국을 세우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그들은 중국의 쑨원(孫文)이 일으킨 신해혁명을 지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화민국 수립에 깊숙이 관여함으로써 한족의 중국과 만주를 분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일 자신들이 병탄한 대한제국의 백성들이 중심이 된 독립국이 건국된다면 일본의 만주 진출이 그만큼 쉬워질 것으로 판단했다.
‘대고려국’ 건국에 많은 대한제국의 애국지사들이 참여한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고조선 이래 고구려 영토로 이어져 온 대한제국 선조들의 영토인 만주에 ‘대고려국’을 건국하여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하는 초석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대고려국’을 무장기지화해서 반도의 일본군을 무력으로 공격함으로써 조국 광복을 찾겠다는 의지였다. 그중에서 양기탁과 정안립 둥은 고종황제나 의친왕, 영친왕의 망명을 전제조건으로 하였다. 그분들 중 한 분을 모시는 입헌군주제를 계획했다. 그것은 대한제국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의지는 1915년 3월 결성된 신한혁명당 때부터 이어져 온 맥락이다. 신한혁명당 역시 고종황제와 의친왕의 망명을 꾀한 것은 물론 무력으로 국내 진공을 계획해 왔다.
양기탁과 정안립은 끊임없이 고종황제 혹은 의친왕이나 영친왕의 중국 망명을 추진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독립정신이 투철했던 의친왕을 가장 선호했다. 그러나 망명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세분 중 어느 분이든 성공만 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추진했다.
고종황제의 망명은 이회영(李會榮)이 입국하여 고종황제의 망명을 허락받았으나, 고종황제가 1919년 1월 21일 갑자기 독살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의친왕이 망명하기 위해서 상복 차림으로 위장하고 압록강 철교를 건너 안동역에 내렸으나 정보를 입수한 왜놈 경찰에 체포되는 바람에 실패하였다. 의친왕의 망명에 실패하자 정안립은 영친왕의 망명을 계획하였다. 영친왕이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가다가 상하이에 기착하는 순간 망명을 결행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일제가 사전에 알고 영친왕의 상하이 정박을 불허하여 실패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보면, 대한제국의 독립투사인 양기탁과 정안립의 생각과 일본의 생각은 그 내용적인 면에서는 서로 다르면서, 단지 만주에 ‘대고려국’을 건국한다는 것만 일치했던 동상이몽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1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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