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부회장, 한진그룹 은닉도 덜미 검찰조사 받아
국세청 “국제사회 전방위 노력 최근 3년간 수천억 추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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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영 칼럼니스트. |
최근 국세청의 브리핑에 따르면 스위스, 홍콩, 싱가포르 은행 등 통상 조세피난처로 알려졌던 여러 나라들의 ‘비밀계좌’에 대한 빗장이 풀려 더 이상의 역외탈세 은신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통치자들까지 스위스은행을 정치자금 은닉처로 이용했으니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밀계좌’에 대한 것을 알고 보면 처음부터 ‘비밀계좌’는 없고 ‘숫자계좌’인 것이다. 영문과 숫자를 조합(예 : Biggold6011)계좌를 만들어 사용하다보니 노출이 안 됐을 뿐이다. 이 숫자계좌 역시 은닉처 자국은행에서 비밀주의로 일관해 왔기 때문에 역외 자금유출을 밝혀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국세청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성형외과 병원장 A 씨는 성형의료 해외 출장을 통해 외국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파나마, 키프로스 등 정부의 손길이 닿기 힘든 조세피난처 곳곳에 개설한 금융계좌에 나눠 은닉했다. 국세청은 국가 간 금융정보 교환을 통해 A 씨의 해외 계좌정보가 한국에 통보되면서 그는 수십억 원의 해외금융계좌 미신고 과태료와 세금을 추징당했다.
또 기업가 B 씨는 기업승계자금 등을 자녀에게 몰래 마련해주기 위해 스위스 은행의 상담을 받고, 계좌 주 이름이 영문과 숫자의 조합(예: blackdiamond119)으로 표기돼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이른바 ‘숫자계좌’를 개설했다. 그러나 정부가 스위스 국세청과의 공조를 통해 숫자계좌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B 씨는 현재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다. 유명 기업가 C 씨는 수십억 원의 국내 재산을 일단 본인의 해외계좌로 송금하고, 이를 해외에 있는 자녀가 인출하는 방식으로 미국 베벌리힐스 등에 고급 주택을 구입했다. 국세청은 미국 과세 당국과의 정보교환을 통해 수억 원의 증여세를 추징했다.
스위스은행 계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한진그룹의 고 조중훈 창업주도 비밀계좌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역외탈세의 온상으로 인식됐었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과 한진그룹에서 은닉한 돈은 거액으로 드러나면서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세청이 최근 외국 정부와의 정보공조를 통해 역외탈세 혐의자를 적발한 사례들이다. 자국 법원의 소환장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고객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금융기관의 운영 방식을 뜻하는 금융비밀주의에 기대어, 과거 각국 자산가들은 역외은행의 비밀계좌에 ‘이름표 없는(nameless)’ 돈을 숨겨두고 과세 당국의 감시와 세금을 피해왔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노력으로 비밀계좌에 대한 빗장풀기가 이루어지면서 이른바 금융비밀주의 종언(終焉) 시대가 온 것이다.
국세청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와 조세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양자 또는 다자 간 정보교환이 가능한 국가는 152개국에 달한다. 그동안 역외 현금지급기(ATM) 역할을 했지만 철통같은 금융비밀주의로 인해 접근하지 못했던 스위스,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이고 케이맨, 몰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의 금융계좌 정보도 정기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강화된 국제공조 네트워크를 통해, 실명을 쓰지 않고 계좌주 이름이 숫자와 문자로 표시돼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숫자계좌’의 실제 소유주와 은닉된 거래정보를 확보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금융정보뿐만 아니라 해외부동산 보유 정보, 외국환 거래자료, 해외 소득자료 등도 납세자별로 관리해 나갈 계획이다.
디지털 경제의 성장과 함께 가상화폐를 비롯한 새로운 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를 활용한 신종 역외탈세 수법 개발과 재산 은닉 시도도 계속될 것임을 잘 안다. 또 두둑한 보수를 받고 고객에게 정부 감시를 피할 ‘투명망토(cloak of invisibility)’를 마련해주는 어둠의 역외탈세 공급자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금융비밀주의의 견고한 벽을 무너뜨린 것처럼, 국세청은 국제사회와 공조해 역외탈세에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으로 확신한다. 누구나 가진 소득과 재산에 따라 정당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조세정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회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세청과 조세정보-금융정보를 교류하는 나라는 152개국에 이른다. 이들 정보교류국가들은 검은돈을 숨겨두는 것은 역외탈세를 돕고 종래는 국익에 손해가 된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국세청은 아직도 역외탈세는 존재하지만 멀지 않아 뿌리가 뽑힐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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