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세계] 통일 준비란 한마디로 ‘북한 주민과 함께 살 준비’를 하는 일이다.
▲ 추성춘 생활정치 이사장 © 로컬세계
70년 동안 갈라져 살아 온 북한사람은, 혈통으로는 한민족임이 틀림없지만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남한사람들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외국인의 눈에는, 남북한 국민은 같으면서 다른 사람들이다. 좀 과장하면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사람들로 되고 있다.
뷔페식당처럼 자유롭고 선택이 다양한 민주주의 생활양식과 단일 메뉴에, 입맛에 맞지 않아도 꼭 찍어 주는 것만 먹어야 하는 공산주의 생활양식 간의 다툼은, 결국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후자의 패배로 결판났음에도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이 모순된 싸움이 현재 진행형이다.
남북의 서로 다른 식탁은 사람의 모습과 생각 까지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필자는 지난 한 해 동안 전국 11개 광역 자치권에서, 지역 의회와 공동 개최한 통일국민 토론회 좌장을 맡아, 탈북 시민들과도 자주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
그 중에는 각고의 노력으로 새 생활에 안착한 드라마 주인공 같은 스타급도 있었지만, 여전히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탈북 시민도 많았고, 특히 2만 5천여 명의 탈북자 사회에도 양극화 현상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탈북 공동체’ 안의 유대감마저도 많이 손상돼 있는 듯 보였다. 이렇게 한국 사회가 지금 ‘25000’과도 함께 살 준비가 잘 안 돼 있다면 ‘250,000, 25,000,000’이 합쳐지는 상황이 어느 날 닥쳐오면 어떻게 될까.
결국 통일이란, 집을 나간 지 70년, 그러니까 젖먹이 아이가 백발노인이 돼 돌아온 2천 5백만의 새 식구와 새 살림을 차리는 일이 될 텐데, 그동안 무엇을 먹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느 날 함께 살라 하면 밥그릇이 깨질 테고 가정불화는 불문가지다.
통일준비에는, 우선 새 식구가 쓸 살림도구를 갖춰야 하는 물질적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과 생각을 조절하고 ‘머릿속의 장벽’까지를 허물고 화학적으로 결합해 가는, 마음의 준비가 더욱 중요하고, 이것이 통일 준비의 어려운 부분이다.
아무튼 통일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는 북한을 정확히 아는 일이다. 동거인의 신원 파악이다. 그래야 남한도 스스로를 교정하면서 내실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상대를 아는 것과 자신을 아는 것을 동시 작업으로 진행하면 이것을 ‘물 샐 틈 없는 준비’라고 말 할 수 있다.
따라서 ‘통일준비위원회’는, 북한의 머리부터 발끝까지(수령은 뇌, 당은 몸통, 인민은 팔다리라고 한다) 파악하고 분석해, 정확한 판단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고난도의 실무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냥 통상적인 ‘위원회’ 개념으로, 통일에 관한 국민적 여론을 수렴하고 통일정책의 방향을 논의한다는 정도의, 관념체계적 이론이나 문장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잘 알다시피 북한에 대해서는, 이론의 유용성이 극히 제한적이다.
우리가 과학적, 객관주의적인 학문 태도를 실사구시라고 하는데, 북한을 분석하는 데는 감정이나 선입견은 물론 희망적 사고까지도 경계하면서 사실에 근거해 실증적으로 파헤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은 북한을 어느 정도나 파악해 왔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한 세기 가까이 ‘북 맹 증’(北 盲 症)을 앓아 오고 있다.
필자가 수 년 전 평양 방문에서 만난 한 북한 간부는 “남쪽은 북을 모른다. 대학 마다 북한학과가 여럿 있고 교수들도 많지만 우릴 통 몰라”라면서 불평하기에 “당신들이 꼭꼭 감추니 알 도리가 없는 것 아닌가. 통일 전 서독도 동독을 너무 몰랐었다고 하드라”라고 응수 했지만, 이유가 어디 있든 우리가 북한을 정확히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폐쇄적인 북한을 기어이 ‘알아내지 못하고’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효율적인 통일준비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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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정치 이사장 추 성춘 전 MBC 판문점 중계방송 하고있는 모습 © 로컬세계 |
‘통준위’가 하는 일은, 국민이 ‘북한을 북한으로 알 수 있도록’ 한다는 고도의 신뢰 수준을 쌓아가야 한다.
통일 전 동독 인민은 서독 TV를 보고 있었고, 서독은 수십 년에 걸쳐 ‘접촉을 통한 변화’ 정책을 일관되게 지켰다. 이렇게 교류와 협력을 실천 해 왔지만 통일이 심리적 통합으로 까지 도달하는 데는, 동독에 대한 정보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것은 산더미 같은 바위 덩어리였다. 그 많은 접촉에도 불구하고 동독을 몰랐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독일 지도자들에게 통일과정에서 참고삼을 경험 사례를 묻자, ‘동독에 관한 정보부족의 까막눈 시절을 강조하면서 “인포메이션, 인포메이션’이라고 강조했다고 하지 않는가.
독일 통일 지도자 빌리브란트 전 서독 수상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불과 보름 전 까지도 “내 생전엔 통일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니 서독도 동독의 실상을 제대로 몰랐고, 정보 부족은 양 독 국민의 통일 후 심리적 통합을 방해 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 되는 순간의 얘기다.
동독 정부는 당초, ‘정부 당국은 동독 인민이 출국 <허가>를 받을 경우 다른 나라 방문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내일부터 출국허가 신청 할 수 있다’라고 발표할 예정 이였다.
그런데 언론 발표에 훈련이 안 된 사회주의통일당의 한 정치국원은 “출국을 원하면 언제든지 나 갈수 있다.”고 말을 바꿔버렸고, 다시 언제부터냐는 기자 질문에 “지금 바로다.”라고, 계속 잘 못 말해버린 것이다.
그래도 동독 국민은 긴가민가하던 차에(평소에도 동독 정부 발표를 인민들은 별로 신용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서독 TV가 “동 베를린 시민과 동독 국민은 자유롭게(출국 허가 없이도) 서 베를린과 서독에 올 수 있게 됐다”고 전하자 평소 위성방송으로 서독 TV를 봐 오면서, 서측 보도를 신뢰하고 있던 동독 사람들은 베를린 장벽을 향해 몰려가는, 자유의 행군을 시작한 ‘역사적 사건’이 전개된 것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결국 정치국원의 미숙한 발표라는 ‘우연’으로 촉발 됐다. 그러나 이미 동독 인민들은 서독 TV를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서독 TV 보도가 동독 인민이 볼 때도 신용할 정도의 수준 이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근대 세균학의 대가인 루이 파스퇴르는 “행운의 신은 항상 준비돼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법이다.”라고 갈파 했다.
‘우연’이란 것도 결국 준비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미소 짓지 않고, 기적도 (준비 없이) 기적처럼은 오지 않는 법인데, 그 준비를 준비답게 하려면 ‘지피지기’가 동시 진행형으로 이뤄져야 한다.
‘통준위’는 북한의 변화를 견인하기 위한 한국 체제의 자력(磁力)의 성능이, 지금 어느 수준인지를, 각 분야에 걸쳐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국민적 혁신의 동력을 만들어가는 전기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독일 드레스덴 연설은, 인도적 지원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등 긍정적인 평화통일 제안으로 국제적 상식 기준에도 부합 한다. 그러나 북한은 불쾌감을 드러내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마이크 기퍼드 북한 주재 영국 대사는 최근 서울을 찾아 한국 국회의원과의 모임에서 의미 있는 해석을 했는데, “북한 당국은 한국 정부의 통일 제안을 북한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본 것이다.
필자의 견해를 덧붙이면 북한은 갈수록 한국의 흡수통일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통일과정에 진입하면 국민의 삶을 기준으로 열악한 쪽이 우월한 체제로 편입·합병되는 당연한 이치를 북한의 집권자도 깨닫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수 년 전 부터 “통일의 단계 까지 핵 억지력 보유”를 강조하고 있고 북한의 대남통일 정책과 핵보유가 하나로 일체화 된다. 북한의 핵은 단순한 미국과의 협상 카드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확인 됐고 정치와 군사를 결합한 북한의 통일 전략에도 변함이 없다.
앞으로 통일 과정에로의 진입이 조금 씩이나마 가시화되기 시작하면 그럴수록 북한의 돌출 행동에 대응하고 상대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지고 북한 상황의 불확실성의 증가로 새로운 위기 국면이 전개 될 것이다.
통일준비위원회가 ‘가슴 보다 머리’를 더 써야 하고, 희망적 또는 비관적 사고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고 실증적 탐구에 몰두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특히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한국의 제안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넉넉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뭔가를 줄 때는 세심한 디테일이 중요하다.
제안을 하면 한 가지라도 받아야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가. 그래서 받을 때 보다 줄 때의 전략에 보다 더 세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에 관한 한.
아울러 ‘통준위’가 남북대화 전략을 구성하는데 있어 명심할 것은, 대통령이 직접 위원회 의장을 맡게 됨으로 해서, 위에서 내리는 정책 지시에 입을 닫는 관료체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위원회’ 구성원이 겁먹지 않고 정책을 비판 수정할 수 있는, 상호 인내와 배려의 정신을 살려내야 한다.
다음으로 야당과의 관계이다.
구 민주당의 김한길 전 대표는 올 초 국회 연설에서 ‘통일시대준비위원회’구성을 제안했고 박 대통령은 연두회견에서 ‘통일준비위원회’ 설치 (4월 중순 발족 예정이라는 청와대 대변인 설명이 있었음)를 밝혔다. 통일준비를 초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안철수 공동대표의 제안으로 당 정강·정책에 ‘7·4 남북공동성명(1972년)과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정신을 이행 한다’라고 밝혔고 여야공동대표단 대북특사 구성도 제안하는 등 통일정책과 관련, 야당이 한 발 청와대 쪽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나 아직 야당과는 구체적인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선거 이해관계로 얽힌 여야의 갈등 때문으로 보인다.
‘통준위’에는 여야 두 진영 세력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이것은 남남 분열에 의한 북한의 오판도 막고 통일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 통합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통일정책과 관련, 여야는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지금까지는 여야가 무리하게 차이를 강조하고, 이분법으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명성에 집착하다 보니, 좌우 양 극단 세력이 설칠 공간만 넓혀줬다. 통일정책이 ‘정치적 도구’로 악용된다.
앞으로 균형 잡힌 국민적 통일론이 형성되고 정부의 통일정책이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과 야당, 각각의 역할이 중요하다. 박 대통령은 합리적 보수를 피곤하게 하는 극우 수구 세력의 공격을, 야당은 맹목적인 극좌 종북 세력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
그런데, ‘통준위’가 여야 공동합작의 명품으로 탄생하려면, 지방선거 이후에 충분한 협의를 거칠 시간이 필요하고, 그때 출범시켜도 늦지 않으며 서두른 나머지 반쪽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통준위’가 정당과 정권을 넘어 오래 살려면 서둘지 말고 물 샐 틈 없는 준비를 해야 한다. 선거용이라는 핀잔, 청와대 거수기라는 빈정거림이 없도록, 영예로운 ‘통준위’를 준비해야 한다.
아울러 장래는 각급 지방정부가 남북 민간 교류의 주역이 될 텐데, 광역 자치정부의 대표가 ‘통준위’에 참여 하는 건 필수다. 선거 후, 새 지방정부와 지역의 적극적인 참여 방법, 교류 과제를 협의하는 과정을 통해, 풀뿌리 통일운동의 텃밭을 가꿔가야 한다.
지방 정부는 세계 각국 지방정부와의 시민 교류를 활성화 해, 한반도 통일의 국제적 기운을 조성하는 공공(公共)외교의 주역이 될 것이다.
셋째로 ‘통준위’의 우선 과제로는,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새로운 통일교육 그리고 민간 통일운동의 새로운 좌표를 들고 싶다.
정치와 권력구조가 중심이 되는 국가 통일은 늦어져도, 남북한 국민이 한민족의 원형을 되살려 경제와 문화, 역사 공동체로서의 동질성을 깨우쳐 가는 일은 우리가 노력하기에 따라 앞당겨 질 수 있다.
국가 통일에 앞서 경제, 문화, 역사가 중심이 되는 민족 통합이 ‘통준위’의 우선순위가 돼야, 통일 후, ‘분단 된 채로 통일 된’ 독일의 실패를 벗어날 수 있다. 통일 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구 동서독의 양극화와 차별(동서의 임금과 연금의 격차)의 후유증이 남아 있음은, 정확한 정보에 의한 제도 설계와 ‘사람의 심리적 통합’이 얼마나 시급하고도 어려운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주시경 선생이, 말과 글, 맞춤법을 통일시키고 제자들을 남북에 배치시켜 언어 공동체를 만든 것은 하늘이 도운 탁월한 ‘통일 준비’였고, 민족 통합 이였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 정부가, 소수 민족을 동화시키기 위해 역점을 두는 일이, 말글을 지우는 것이다. 우리 조상의 고토인 만주에서 만주어가 사라지는 것도 그런 연유다. 언어 공동체가 민족의 버팀목이다.
‘우리는 한민족이다’라는 말이 구호로 끝나지 않게, 각 분야에서 제 2 제 3의 주시경이 탄생하도록, 실증적 민족통합과제를 발굴하는 각 분야의 인재들을 ‘통준위’에 불러 모아야 한다.
개성상인들의 독창성과 경제사상을 아는가. 고려시대부터 개성을 중심으로 상업과 국제 교역을 이끈 개성상인들은 현대적 복식 부기의 원형을 만든 주역이다. 북한 사회과학원이 소장한 1786년의 복식부기는, 한국 자본주의 전통을 18세기 까지 앞당겼다.
세계에서도 가장 앞선 것이다. 복식부기 실무회계 기록으로 세계에서 가장 빨랐던 우리 조상의 창조 정신을, 남북경제공동체의 혼과 뼈대로 삼아야 한다. 한국의 민간통일운동의 주역은, 그동안 민주화 깃발의 시민운동 세력과 냉전시대의 멸공 구호를 외우는 수구세력으로 얽혀져, 실증적 분석에 의한 과학적인 통일행동으로 업그레이드되지 못했다.
민주와 독재라는 정치 투쟁 속에 혼합된 통일운동이, 결국 보수와 진보 두 진영의 감정 과잉과 적대적 증오, 편견과 오해로 점철된 슬로건의 시대에, 너무 오랜 시간 묻혀버렸다. 이제는 ‘통준위’가 중심이 돼, 새 시대 통일운동의 실천세력을 키워내는 중장기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남북통일과 통합의 핵심은, 자유민주시민 교육이요 한민족 동질성 운동 이다.
‘통준위’를 통해, 국가규모 통일교육의 새 비전이 제시되고, 민간 통일운동의 새로운 방향이 수렴되기를 기대한다. 낡은 이미지가 박힌 민간 통일운동의 ‘껍데기는 가야한다.’
필자는 40여 년 전, (1971~1972년) 판문점이 취재 일터였다. 분단 25년 만에 남북이 최초로 만나게 된 적십자 회담과 남북 조절위원회 회담이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열리면서 대표단 왕래의 길목인 판문점이 국제적 뉴스 무대가 된 것이다.
이 시기에 남북이 합의 한 7·4 남북공동성명은, 자주와 평화, 민족대단결통일 3원칙을 천명하고, 통일 대장정의 씨앗을 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나는 금방 통일이 될 것 같은 흥분 속에 실황 중계방송을 했고, 특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위원장으로 평양 회담을 마치고 판문점 자유의 집을 거쳐 돌아오던 날, 그와의 회견을 생방송 하면서 “아! 꿈에도 통일이라던 그 통일이 눈앞이네”라고 마음속으로 외쳐 보기도 했고, 통일의 그 순간을 내가 중계방송 한다면, 첫 멘트를 뭐라고 말 할까 라고 골똘히 생각하면서 자유의 집 풀밭에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가, 통일이 왔다! 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를 꿈속에서 듣기도 했다.
당시 남북 4천만 민족의 심정은, ‘놀라움이 눈앞에. 경악!’등의 신문 기사 제목으로 대변됐다.
빨갱이 잡던 남한의 중앙정보부장이 북한에 가 김일성을 만나고 왔다니, 시민들의 표정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그리고 통일 3원칙 까지! 그렇다. 1969년부터 시동이 걸린 미국 닉슨 대통령의 데탕트 정책은 미국과 공산권인 중국·소련의 화해로 이어지고, 그 물결은 한반도에도 밀려와, 주한미군의 철수와 북한에 대한 중국의 남북대화 압력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물로, 분단이후 준전시상태 이던 남북한이 대화의 문을 연 것이다.
이런 가운데 남북 정상의 국제정세 인식이 일치했고, 7·4 공동성명이 만들어 졌다. 그러나 곧이어 북한에서는 김 부자 세습체제가 등장, 정치·군사적 강경노선으로 복귀하며 한국의 유신체제 등장과 함께, 남북은 다시 준전시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분단 25년 만에 통일 논의의 물꼬를 튼 남북한은, 이렇게 불과 1년여 만에 파국을 맞는다. 다시 북한의 대남 도발의 시기, 준전시 상태. 이어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1991년, 통일의 바탕이 됐다고 평가되는 남북기본합의서가 나오고, 21 세기 들어서는 남북 정상회담도 두 차례 진행됐으나 또다시 북한의 대남 무력 도발 시기가 되풀이 된다.
이제 내년이면 분단 70년에 이른다.
통일이란 결국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하늘은 우연(偶然)을 선택할 성 싶다. 그러나 파스퇴르의 지적처럼 그 우연은 준비 없는 사람에겐 미소 짓지 않는다.
‘한 민 족 통 일 준 비 위 원 회’ 의 행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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