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생활정치 아카데미 추성춘 이사장© 로컬세계
[로컬세계] 눈물샘이 마를 때 까진 울어야 한다.
말로 고통을 토해 낼 수 있다면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
가족 중에 누군가와 사별하면, 그 비통함을 치유하기 까진 일 년 여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학자의 연구 결과가 있다지만, 세월호의 비극은 그것이 천재지변도 아닌 인재라는 사실에 너무나 원통하고 가슴 아파, 정신을 좀 차리기 까지는, 이 년이 걸릴지 삼 년이 걸릴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세월이 가도 돌덩이 같은 한 으로만 남을지 누가 알겠는가.
세월이 약이란 말도 있지만, 우리가 분노와 죄책감의 감정으로부터 해방되기 까진, 그만한 프로세스와 시간, 모두의 노력이 요구 될 것이다. 그렇다고 시간에만 맡겨 둘 수 없다. 지금은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가는 노력을 당장 시작할 때다.
특히 2차 쇼크가 닥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유가족들은, 희생된 자식과 가족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여 있다.
그것은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과도 비례할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정신적 반응이다. 살려내지 못한 그 죄. 무력감. 그로부터 오는 울분장애. 다시 자신감 상실과 고독감.
그러나 이제는 정신과 전문가와 의료의 힘을 동원해야 한다.
의약의 힘은 외상후스트레스의 강도를 다소 부드럽게 할 수 있다. 유가족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이 강한 마음을 일으켜 세워 ‘지나친 죄책감’으로 부터 자신의 생명을 더 이상 소모하지 않는다면, 지금 겪고 있는 심리적 상태는 질병이 아닌 당연한 정신적 반응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가면, 회복력을 찾아 성장의 기회를 맞을 수가 있다.
‘울분장애’로부터 ‘외상후성장’으로. 반드시 이렇게 돼야한다.
그렇게 하여 치유기간을 줄여가고 무엇보다 유가족들과 우리 사회에 대한 2차 쇼크를 막아야 한다. 2차 충격은, 공동체가 합심해 준비하고 실천하면 피해갈 수 있다. 부모를 총탄에 잃고 엄청난 충격을 극복해 온 박 대통령이 일찌감치 현장을 찾은데 이어, 적절한 때에 재회하게 되면, 그거만으로도 유가족들에겐 또 하나의 정신적 카운슬링이 될 것이다.
공동체가 위기에 직면할 때, 구성원들의 대처 능력은 일의 우선순위와 타이밍에서 드러난다.
지금은 무엇 보다, 정부와 정치권이 한국인이 겪고 있는 지난 2주간의 심리적 공황 상태(1차 충격)가 평상심(平常心-사건 이전의 심리상태)으로 회복되는 과정을 신속히 진행시켜야 한다.
우선, 대형안전사고의 재발을 막고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해 사고의 정확한 원인규명을 전담할 특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기를 제안 한다. 지금처럼 처벌이 중심인 검찰이 처음부터 앞에 나오면, 관계자들이 입을 다물게 돼 사고 원인이 영원히 은폐될 수가 있다.
처벌을 위한 검찰 수사에 앞서, 별도로 권위와 실행력 있는, 사고원인 전담 수사 기구가 총체적인 사고 원인을 철저하고 입체적으로 규명해 역사로 기록하고 후세에 남겨야 한다.
사고원인 조사를 위해서는 면책 특권 부여도 검토할 만하다.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야 말로 재발방지를 위한 최고의 전제 조건이다.
대통령 직속의, 최고의 권위와 고도의 전문성을 확보한, 실행력 있는 사고원인 규명 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한다.
다음으로 사고해역 인근에 해난사고 박물관이나 단원고 분교를 만들어, 청소년들과 국민의 해상안전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도 검토해 볼만하다.
아울러 제주까지의 해저 터널에 관한 연구도 본격화해야 한다. 해저터널 건설의 가능성은 이미 검토된 바가 있다.
1954년 일본 홋가이도 하코다테항 부근에서, 갑작스런 태풍으로 도야마루호 등 5척의 여객선이 침몰, 1430명이 사망한 세계 제 2 해난사고(제 1 해난사고 타이타닉호 침몰) 직후, 일본 정부는 홋가이도와 혼슈를 잇는 총 길이 53.85 킬로미터의 해저 터널을 착공, 21 년간의 난공사 끝에 1985년에 개통한다.
그때 해저 터널 건설의 영웅 들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오늘날의 경제 강국, 위기에 강한 나라를 만들었다.
해운국인 일본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인명피해가 100명이 넘는 해난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희생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대실패의 교훈을 국민적 각오에 담은 것이다. 모든 안전사고에는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이 있다.
개인의 무지와 부주의, 업무 태만. 오판, 기본실행지침 망각이 개인적 측면이라면, 조직 붕괴, 기업경영 불량, 게으른 행정과 방황하는 정치 태만, 사회 시스템의 부적합 등은 사회적 측면으로, 하나의 사고 안에는 이렇게 계층적이고 복잡한 원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고 깊숙한 곳에다 똬리를 틀고 숨어 있는, 엘리트와 기득권층의 부패와 타락, 탐욕의 소용돌이가 끊이지 않고,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라미드 삼각형으로 비유하면, 삼각 맨 밑으로 가면서 넓어지는 데가 개인의 책임이고, 맨 위 뾰족한 데가 사회의 부패구조와 엘리트의 탈선이다.
개인 문제에서 조직의 문제로, 조직의 병폐에서 정치와 행정의 부패로, 계단을 오를수록 내 탓이 아니라고 한다. 이것이 재발을 막지 못하고 안전사고의 소용돌이로 이어져, 사회적으로 급성스트레스 반응을 장기화시켜 피해를 확대·확산 시킨다.
이번 사고를 두고도 힘 있는 세력은 남의 탓하고 힘없는 서민들은 내 탓이라고 한다.
어느 나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층, 엘리트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가 쇠약하면 위기에 강한 나라가 되지 못했다. 작은 위기에도 사회의 회복력이 떨어져 국민은 자신감 상실 등으로 고통 받는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뤄가겠다고 말했다.
울분장애를 씻어내고 ‘외상후 성장’을 강조한 것이다.
대선 당시, 당락의 박빙을 밟고 있던 박 후보는 광화문 광장의 마지막 유세에서 야당의 정권 교체에 맞서 자신은 시대교체를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서 있는 위치는 어디 쯤 인가,
대한민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러고는 그 다음은? 비전 없이 방황하고 있다.
산업, 민주 두 세력이 통합을 이루지도 못했다. 지도력의 빈곤 속에 국민의 정신적 불황의 파고는, 동북아의 세력 충돌과 겹쳐져 불안한 미래가 예고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부터 한국의 시간을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양분해 딱 쪼개야 한다. 세월호 이전의 정치는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 정치가 아니다.
세월호 이후의 정치, 새로운 한국의 정치다. 산업화와 민주화 했으면 이 지구상에 이제 더 이상 한국의 모델이 될 정치는 없다. 선진국 어디를 계속 닮겠다고만 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정치가 있을 뿐이다.
정치인이고 기업인이고 학자고 언론인이고 이제는 세월호 이후의 정치인 기업인 학자 언론인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요즘 말해지고 있는 ‘국가 개조’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참으로 변화하고 진보하는 것이다.
국가 개조의 청사진은 먼저 산업화 세력이 만들어야 한다.
산업화 시대의 관료는 지금처럼 부패하거나 애국심이 없거나 탐욕스럽지 않았다.
산업화 시대의 애국심과 한국적인 전통정신과 서민정신, 농촌의 애향심을 부활시키는 일이 민족개조 이고 국가개조 사업이다. 산업화 시대의 양심적인 원로들이 최후의 일성으로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을 재건하는 데 힘을 모아주고 박 대통령은 때를 놓치지 말고 정치를 개혁하고 정부를 재구성하는 역사적 결단을 해야 한다.
정치나 국가운영은 타이밍의 반복이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룰 것인가, 내일 일을 오늘로 앞당길 것인가. 박 대통령이 선택할 일이다.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내각은 총사퇴하고 여야는 자신들이 지방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일이 국민에게 그리 중요치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국민통합을 우선한다면 세월호 이후의 새 정치의 방향도 잡혀 갈 것이다.
너무나 짧은 시간에 이승의 졸업장을 받고 떠난 청춘들, 다섯 살 혈육을 남기고 떠난 엄마, 초로의 초등학교 동창생들, 또 모든 희생자들이 하루 빨리 천국에서 신의 따뜻한 눈물로 차가운 몸을 녹일 수 있도록, 살아남은 이 땅의 모든 이들은 각자가 공동체 책임윤리를 되찾아 위기에 강한 나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데 한 사람도 낙오되지 말고 함께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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