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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강흥(시인·수필가) |
언제나 어디서나 살아서 숨 쉬는 문학은 단순한 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세상이 달라져도 삶의 형태가 변하여도 문학은 어느 곳 어디서나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글이다.
이 시대 문학은 과거, 현재, 미래가 예견되는 세상을 그리면서 자연생태환경과 어울리며 독자들의 가슴에도 희망의 싹을 틔우는 삶의 봄이다. 자연에도 봄이 오고 풀이 자라고 노목에도 싹이 난다. 이것은 생태의 순리이다.
그런데 인간의 봄은 언제 오며 어디서 오는가? 누구나 인간은 원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또 죽지 않을 수도 없다. 식물과는 다른 생존 방식을 고수한다. 그런데 갈수록 변하는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양과 정서는 기술의 발달 속에 묻히기 쉽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다워야 하듯이 우주도 변해가고 있는 시대다.
최근 가속화되는 부동산 투기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런데 물가 상승도 원리적 요소가 되겠지만 과연 글을 쓰는 문학인들의 처우는 어떤가? 냉정하게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고통과 고난 속에서 작품 하나를 쓰려고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교정하여 창작된 시나 수필, 소설 등의 작품이 우리 사회에 그냥 값어치 없이 묵혀가는 꼴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어간다. 과연 그것이 오른 길인가? 절대 아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도 배움의 길은 책 속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책을 멀리하는가? 무조건식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경제 원리다. 이것이 원칙에 맞는가? 열심히 일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가 되어야지, 부정과 비리로서 편법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잘사는 사회는 모순된 사회다.
집을 짓는데도 토지가 단단한 터전에 집을 지어야 안전하고 튼튼 하듯이 국가의 미래발전에 국민을 일깨우는 문학작품은 인간을 성숙하게 키워내는 영양제와도 같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책을 멀리하고 드라마나 TV에 빠져서 깊이 없는 자신을 순간의 매력에 빠져서 인생의 행복만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가정도 사회도 바탕없이 흔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가정문화의 근본인 효의 사상은 사라진지 오래고 오로지 대학입시에 치중된 교육 때문에 인성 교육도 엉망이다.
이렇게 자라난 세대들이 과연 무엇이 될까. 아니 최고의 자리에 앉아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진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문학단체도 자신들의 우월주의에 빠져 비젼과 시대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면 무의미한 단체다.
하루가 다르게 과학 문명은 발달되어 가는데 왜 문학은 시간이 갈수록 비젼 없이 사회인들의 등 뒤에 서 있는가? 시대의 변화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발과 지혜는 필요하다.
문학단체의 대표성은 국제펜 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작가회의, 시인협회, 수필가협회, 소설가협회 등 많은 문학 단체들이 있다. 그 단체의 리더들은 그 명성에 맞게 변화시키는 힘이 필요하다.
정부나 문체부도 말하지 않는다고 무관심처럼 홀대해서 내보내는 것보다는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문체부, 국회의원들도 노동조합은 인정하면서 문학단체나 문학인들의 처우 개선에 대하여 한번 고민해 보았는가? 묻고 싶다. 칼럼니스트 이강흥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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