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램블 교차로와 하치코
신주쿠에서 시부야로 젊음의 주도권이 바뀐 역사
도겐자카의 환락과 마츠토의 고요함
시부야 스카이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도쿄에서 가장 젊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분출되는 곳, 시부야(渋谷). 이곳은 단순히 유행이 시작되는 곳을 넘어, 끊임없이 자가 복제하며 변신하는 도심의 거대한 용광로이자 전 세계인의 시선이 모이는 현대의 랜드마크다.
'골짜기(谷)'에서 시작된 이름의 유래와 역사
시부야(渋谷)라는 지명은 글자 그대로 '떫은(渋) 골짜기(谷)'라는 뜻을 품고 있다. 실제로 시부야는 무사시노 대지(武蔵野台地)를 침식하는 시부야강(渋谷川)과 우다가와강(宇田川)이 합류하던 전형적인 '곡저(谷底, 골짜기 바닥) 마을'이다.
지명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말기 이곳을 영지로 삼았던 무사 시부야 씨(渋谷氏)의 성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며, 금왕팔幡궁(金王八幡宮, 콘노하치만구)의 전승에 따르면 백제계 도래인의 흔적과도 연결되는 이야기가 내려오기도 한다. 1885년 시부야역(渋谷駅)이 개업할 당시만 해도 주변은 논밭이 펼쳐진 도쿄 변두리의 한적한 시골역에 불과했다.
스크램블 교차로와 하치코
시부야역 하치코 출구(ハチ公口)를 나서자마자 마주하는 스크램블 교차로(スクランブル交差点)는 현대 도쿄를 상징하는 가장 강렬한 풍경이다. 신호가 바뀌는 순간,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천 명의 인파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 물결처럼 섞여 들어가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교차로 한편에는 주인을 기다렸던 충견 하치코 동상(忠犬ハチ公像)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20년대 주인 사후에도 9년간 역 앞을 지켰던 하치코의 이야기는 이제 시부야를 찾는 사람들의 가장 대표적인 약속 장소가 되었다. 가장 첨단화된 거리에서 가장 고전적인 '기다림'의 가치가 공존한다는 사실은 시부야가 가진 묘한 매력이다.
신주쿠에서 시부야로 젊음의 주도권이 바뀐 역사
본래 도쿄 젊은이들의 성지는 신주쿠(新宿)였다. 그러나 1969년 신주쿠역 서구 지하광장에서 벌어진 '포크 게릴라 사건'과 반전 운동에 대한 공권력의 강경 진압으로 젊은이들은 신주쿠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 1973년 パルコ(PARCO)가 개업하고 '시부야 공원 거리(渋谷公園通り, 시부야 코엔도리)' 재개발이 성공하면서, 정치색 짙은 저항 문화는 상업주의와 결합한 세련된 서브컬처로 변모하며 시부야로 옮겨왔다. 이후 도큐(東急) 그룹과 세이부(西武) 그룹의 치열한 개발 경쟁은 시부야 109, 세이부 백화점 등을 탄생시켰고, 시부야를 패션과 음악, 젊음의 독보적인 메카로 만들었다.
도겐자카의 환락과 마츠토의 고요함
시부야는 하나의 색깔로 정의하기 어려운 도시다. 좁고 가파른 언덕길인 도겐자카(道玄坂)와 옛 화류계의 흔적이 남은 마루야마초(円山町) 주변은 밤이면 화려한 환락가로 변한다. 반면, 거기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마츠토(松濤) 지구는 번화가의 소음이 무색할 만큼 정막하고 우아한 고급 주택가가 펼쳐진다.
또한 최근에는 마츠토, 도미가야(富ヶ谷), 가미야마초(神山町) 지역을 중심으로 개성 있는 상점들이 점재하는 '오쿠시부(奥渋谷, 속 시부야)'가 주목받으며, 자극적인 번화가를 벗어난 어른들의 산책 코스로도 사랑받고 있다.
시부야 스카이
현재 시부야는 '수평의 골짜기'에서 '수직의 도시'로 진화 중이다.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渋谷スクランブルスクエア)의 전망대 '시부야 스카이'는 도쿄의 지평선을 새롭게 정의했다. 지상 229미터 높이에서 발밑의 교차로를 내려다보면, 수만 명의 인파조차 하나의 점으로 수렴된다. 100년 전 논밭이었던 시골역이 세계를 선도하는 메트로폴리스가 된 상전벽해의 현장이다.
시부야는 굴곡진 지형만큼이나 굴곡진 현대사를 관통하며 성장해 왔다. 유행은 짧게 스쳐 지나가지만, 그 흐름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에너지는 시부야라는 깊은 골짜기에 켜켜이 쌓여 도쿄의 새로운 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을 뒤로하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이제 산책의 발길은 도쿄의 가장 고풍스러운 품격과 근대화의 화려한 기억을 간직한 거리로 이어진다. – 계속 –
[기자 메모]
비트 밸리(Bit Valley): 떫은(渋, 비터) 골짜기(谷, 밸리)라는 뜻을 따서 명명된 이 이름처럼, 시부야는 현재 구글(Google) 일본 법인이 입주한 시부야 스트림(渋谷ストリーム)을 중심으로 IT 산업의 중심지로 재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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