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무웅 건국대학교 이과대학 명예교수 |
75세 이상 노인은 본인이 스스로 공문서에 써서 내거나 담당직원이 희망자의 마음대로 대필하는 제도 이다. [PLAN 75]는 영화화하여 인기작이었다.
고령자사회는 일본 뿐 아니라 지구적 규모이기에 도두가 신경을 써 원하는 목표를 쉽게 달성하기 위해 생각한 [고려장법]보다는 쉽게 스스로 죽는 날을 선택하는 자유를 부여하여 국가는 그에 대한 다양한 손실이 회복가능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처음으로 국회를 통과한 죽음의법 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의 고려장은 이와 같은 맥락이지만 자식이 부보를 지게로 져다 산에 놓고 일정기간 먹을 양식만 놓고 오는 것이 역사적 고려장이다.
이제 노령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므로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발생하여 이를 해결하는 것은 노령자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지만 요즘 75세는 청년이라서 75세보다 10년 더하여 85세로 한다면 행복한 선택을 할 것이다.
만약 일본처럼 75세라 한다면 노인들이 데모로 큰 문제가 발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구비전설은 아버지와 아들이 할아버지를 고려장하기 위해 지게 지고 산에 내려놓고 일정기간만 먹을 수 있는 량의 식량을 놓고 아들 보고 가자 하니 꼬마 아들이 아버지 저 지게 안 가져가세요 하니 응 그것을 가져가 제가 아버지를 지고 와야 되니 지게 가지고 가자고 한 것을 생각하니 그래서 그 후로는 고려장이 없어졌다. 이후 수백년 전의 것이 다시 본 어게인 한 오늘의 시대는 일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 몽고 유목민은 지금도 이동 할 때 3개월 먹을 것을 놓고 떠나서 아들이 3개월 후 와보고 생존하면 3개월 식량을 또 드리고 아들은 유목 길로 떠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노령인구 팽창으로 국가의 재정이 문제가 된다고 이를 하결하기 위해 국가를 위해 노력하고 국가를 지킨 살마들을 자연사 하면 장례를 잘 지내는 것은 안하고 명분상 스스로 죽고 싶은 날을 선택케 하는 법을 국회를 통과한 나라 그래도 되는가요? 하겠죠,
그런데 이런 문제는 오래전부터 전통적으로도 있었고 최근에는 카드까지 만들어 가지고 있는 것도 결국은 죽음을 선택케 하는 것이다. 필지는 오래전에 미래는 죽음을 자신이 선택하는 날이온다고 예측한 것이 불과 수년전이었다.
이런 것이 우리보다 노령화 인구수가 많은 일본이 [Plan 75]를 국회 통과시키는 것은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은 영광으로 생각하는 나라의 전통이어 저항없이 모두가 즐거워하는 것이다. 영화제에 출품하여 인기작품 상을 받아 얼마 전에 개봉하였다.
만약 우리가 일본 따라 그 방법을 한다면 어떤 문제점이 발생할 것인지 예측 불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죽음으로 국가을 위해 죽어도 그 가치를 완벽하게 받들어주지 못하기에 크게 반대할 것이지만 만약 사망을 선택하는 사람에게는 일정금액을 가족에게 준다 하면 아마 신청자가 폭주할지도? 이것이 일본과 다른 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메타버스 시대로 오면서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것처럼 되어 있어 새로운 무엇인가가 작동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미래 행불을 생각지 않고 현상의 그 무엇 때문에 노령자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예측 가능할 수도 있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어 존폐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고 예측할 수 있는 점이 타국과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문제는 우리의 전통적 속에서 많은 스토리가 [孝효] 문화가 짙어 다양한 반대가 예측된다. 아니면 모두가 100% 대찬성일 수도 있다는 것은 나와 관계자로 하여금 이익이 발생한다면 찬성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 타국과 다른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만 선택권이 부여되면 강한 압력 때문에 자신의 의견과 관계없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염려를 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언제나 그리해왔기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예측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오늘의 문제는 지구적 규모이므로 모두가 냉철하게 깊이 샹각할 문제이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일어 버리는 현상이므로 연령과 시기 100%자유권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시작 안하니만 못할 것이라고 예측 된다.
인간 존엄성의 생명을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불행한 일이다라고 생각 된다. 죽음의 선택은 오직 자신이 갖고 있는 아주 대단한 권리이며 도덕이기도 하다. 이것을 주변의 압박에 의해 결정된다면 정말로 불행이 발생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존엄한 것에 가치를 아를답게 자자손손에 전달되고 대우를 해 주는 것이라면 누구든지 스스로 죽음을 선택 할 것이다. 이제 지구의 인구수는 한계점에 도달하여 있다는 것을 충분이 이해하고 오직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큰 권한이라고 해야하는 것이다.
최무웅 건국대학교 이과대학 명예교수.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