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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1115년에 완안아골타가 여진족을 규합하여 건국했던 금나라가 1234년에 멸망한 뒤를 이어 1616년 누르하치가 다시 여진을 통일하고 나라를 세워 금(후금)이라 칭했다. 그리고 1636년 청 태종 아이신기오로 홍타이지가 국호를 금에서 청나라로 변경하면서 조서를 발표하여 족명을 만주족으로 개명하고 여진이라는 말을 금지했지만, 스스로 고려의 후손임을 자부하는 것은 변함이 없던 민족이다.
'금사'를 비롯한 역사서에 의하면 그들이 고려라고 지칭한 것은 신라가 패망한 이후 고려가 들어섰으므로 고려라고 표현한 것으로, 여진족이 신라의 후손으로 금나라 시조이며 ‘금’이라는 국호 역시 신라에서 유래한 것을 증언하고 있다.
'흠정만주원류고', '금사', '통고', '대금국지' 등의 역사서 기록에 의하면, ‘금나라 시조 합부(哈富; 이전에는 함보(函普)로 기록)는 본래 신라에서 왔고 성은 완안씨(完顔氏)라고 하였다. 신라왕의 성은 김(金)씨로 수십 대를 이었다. 곧 금(金)나라 시조가 신라에서 왔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아니다. 나라 이름도 마땅히 여기서 따왔다’라고 하였다.
후금의 시조인 누르하치가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한다는 의미의 애신각라(愛新覺羅)’라는 성씨를 채택하여 자신의 이름을 애신각라노이합적(愛新覺羅努爾哈赤 :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이라고 명명한 사실만 보아도, 청나라로 국호를 바꾼 금(金)나라는 자신들이 신라 후손의 민족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금사'에 ‘여진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진과 발해는 본래 한 집안이라고 하였다’는 기록 역시 대진국 발해가 신라와 같은 민족이므로 여진과 신라, 대진국 발해가 같은 민족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흠정만주원류고' 등의 역사서는 만주(滿洲)라는 지명이 만주족을 가리키는 만주(滿珠)라는 부족 이름에서 유래한 것임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결국 만주라는 지명은 만주족의 족명에서 유래한 것이며, 만주족은 여진족이 족명을 바꾼 것으로, 여진족은 우리 한민족과 뿌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언하는 명백한 사실이다.
만주국은 명나라 후손인 한족이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열망하여 1912년에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중화민국을 건국한 후, 청나라의 만주족이 일본의 지원을 받아 청나라 발상지라고 칭하는 만주에서,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황제로 추대하여 1932년에 건국한 나라다.
만주가 한족 중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은 만주국 건국 당시에 중국이 취한 태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만일 만주가 한족 중국의 영토라면, 만주국이 건국되던 당시는 중화민국이 건국되고 20년 후이므로, 만주족이 만주에 만주국을 건국하도록 그냥 방치하지 않고 전쟁도 불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화민국은 만주국 건국에 대해서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은 것은 물론 별도의 국가로 인식한 것을 보면, 그 당시만 해도 한족 중국인들에게는 청나라가 중국 역사가 아닌 것은 물론 만주가 중국 영토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나라 역사를 한족 중국의 역사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화민국 건국의 기조가 된 신해혁명을 분석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신해혁명은 이름만 혁명이지 실제로는 만주족의 청나라를 멸하고 한족의 나라를 세운다는 뜻인 멸만흥한(滅滿興漢) 혹은 멸청흥한(滅淸興漢)을 기치로 내건 한족의 독립투쟁이다.
중국은 지금도 자신들의 나라를 건국하는데 기조가 된 신해혁명을 기념하기 위해서 우창에서 최초로 봉기한 10월 10일을 대대적인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두 개의 중국 모두가 신해혁명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중국 건국의 기반이 되는 독립투쟁이었음을 공인하여,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신해혁명 기념일’로, 중화민국에서는 “쌍십절”로 기념한다.
신해혁명의 기조가 된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사상은 홍수전(洪秀全)이 '배상제회'(拜上帝會)라는 종교단체를 조직하여 1850년에서 1864년까지 일으켰던 태평천국의 난(太平天國之亂)에서 기인하였다.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갈망하며 구호로 채택했던 ‘봉천토호격(奉天討胡檄)’으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오랑캐 즉, 만주족을 토벌한다는 것이다.
태평천국의 난에서 신해혁명까지의 기나긴 독립투쟁이 한족의 나라 중국이 만주족의 청나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였다는 명백한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중국어족인 한족에게 만주족은 그들과 전혀 다른 민족일 뿐만 아니라 청나라 역시 그들의 역사로 인식되지 않았으므로 만주 역시 그들의 영토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 확실하다.
다만 청나라 후손인 만주족에게는 만주가 그들의 영토로 인식되어 청나라가 멸망하고 난 후, 비록 일본의 도움을 받았지만, 만주국을 건국한 것이다. 따라서 만주를 지배하고 생활 터전으로 삼았던 민족은 우리 한민족을 제외하고는 만주족뿐이며 한족 중국은 그 어떤 연관도 없다는 것 역시 역사가 증언하는 명백한 사실이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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