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위반 병의원 업무정지를 과징금 3만원으로 때우는 나라
대한민국의 참담한 민낯…공직사회 책임감 상실이 실망감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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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환 칼럼니스트 |
지난 17일에 발생한 국가행정전산망 마비 사태가 그렇고 최근 “한국 좋아 하지만 여행 절대 안간다”는 태국국민들의 분노다. 소셜미디어에 ‘한국여행 금지’ 캠페인 글이 전개되어 며칠사이 4백여만 건이 넘는 글이 실렸다. 아이러니 한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마약과의 전쟁이 한참이다. 경찰이든 세관이든 마약퇴치 사건에 공적이 있으면 특진과 함께 포상제도까지 둬 과잉수사 논란까지 빚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국내 병의원의 경우 시행령에 특혜조항이 있어 마약사범 근절에 역행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과태료 부과제도’이다. 마약류 오남용으로 업무정지처분을 받아도 과태료 1일 3만 원만 내면 정지를 면피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법규인가.
◆국가행정전산망 마비사태 분석
국가행정전산망 마비 사태가 사흘 만에 풀렸지만 ‘디지털 선진국’을 자부하던 국가 이미지에 오점을 남겼다. 문제는 2020년 초중고 온라인 수업 시스템 마비, 2021년 코로나 백신 예약 시스템 접속 장애, 올해 들어 법원 전산망 마비, 차세대 교육 행정 정보 시스템(나이스) 오작동 등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 전산망 사고 때마다 정부가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공공 전산망 운영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배제가 큰 문제 중 하나라고 꼽는다. 대기업 독과점을 막기 위해 2013년부터 삼성·LG·SK 등 기술력이 앞서는 대기업 계열사들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 SW 사업에서 대기업 비율은 76%에서 22%로 격감한 반면, 중견·중소기업은 24%에서 78%로 급증했다. 중견·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전산망 사고를 일으킨 온라인 수업 시스템, 코로나 백신 예약 시스템, 법원 전산망, 차세대 나이스 모두 중소기업이 개발했다. 사고가 터진 후 대기업 기술진이 투입돼서야 문제가 해결됐다.
대기업 독과점을 막기 위해 중소·중견기업에 기회를 주자는 정책 취지는 옳다. 그러나 무조건적 대기업 배제가 잦은 사고를 낳고 국민 불편을 초래한다면 득보다 실이 더 큰 결과가 나온다. 국가 안보나 인공지능·블록체인 등 신기술 활용 분야에선 중소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일을 전제로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고는 있다. 하지만 사고 때 수습 책임을 100% 대기업에 떠넘기는 탓에 대기업이 사업 참여를 기피하는 실정이다.
정부도 개선책을 모색해왔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혁신위원회는 지난 7월 1000억원 이상 공공 SW 사업에는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고, 대기업의 하도급 남발을 막는 평가 방식을 도입하는 등 개선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업계 의견 수렴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이견이 불거져 제도 개선이 계속 미뤄지는 가운데 이번 사고가 터졌다. 대기업을 무조건 배제할 것이 아니라 안보나 국민 생활에 영향이 큰 기간 시설 분야에선 참여 문호를 넓히는 개선안을 하루빨리 실행해야 한다. 우선 첫 단추부터 꿰고 미흡한 점은 추후 보완해야 한다. 언제까지 논의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행정전산망 마비사태 역시 3일 만에 재가동은 됐지만 아직 왜 마비가 됐는지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날 주무장관이 해외에서 디지털 정부 대한민국을 홍보하는 와중에 사고가 터져 국제망신까지 당한 꼴이 됐다.
◆태국에 불어 닥친 ‘반 한국 정서 확산’ 왜?
최근 태국에서의 핫이슈는 ‘한국 여행 가지 말자’이다. 한국을 찾는 태국인 관광객들이 입국허가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 나면서 분위기가 분노로 돌변한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관련 해시태그(#)가 달린 글이 불과 며칠 사이 수백만개가 폭발적으로 게시·공유되면서 한국여행 거부 현상이 빠르게 확산돠고 있다는 것이다.
태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깊어졌다. 작년 태국 마히돈대가 성인 1000명을 상대로 태국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국가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미국, 일본, 영국, 중국을 제치고 1위였다. 태국 여론 분석 업체 와이즈사이트는 10월 말부터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한국 여행 금지’ 관련 게시·공유가 이루어진 글이 지금껏 4백여 만개가 넘는다고 밝혔다. 글 작성자의 75%가 여성이고 절반 이상이 18~24세였다. 이 현상을 이끈 이들 역시 한류를 사랑하는 젊은 여성이라는 뜻이다.
사랑하고 아꼈던 한국으로부터 인종차별과 모멸을 느꼈다면 애인에게 배신당한 느낌보다 더 큰 배신감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 여행 금지’ 해시태그가 달린 글의 주제를 파악한 결과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태국인들을 후진국에서 온 이들로 취급하며 외모와 피부색 등을 이유로 차별한다는 글이 많았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 여행 중 겪은 차별, 한국에서 일하며 당한 학대나 따돌림 등 경험담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실제 인천공항에서 태국인들에 대한 까다로운 검색과 입국거부 사례가 늘어나면서 불만이 크지고 있다는 지적의 언론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무부 출입국관리 당국이 불법체류 의심자 및 마약 운반 의심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로 까다로운 검색은 불가피하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인종차별의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심하게 다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마약법 위반 업무정지 병원, 하루 3만원 과징금 내면 ‘해금’
마약류 관리법 위반으로 적발된 병의원들이 보건당국으로부터 업무정지처분을 받아도 정지기간 동안 과징금 1일 3만원만 내면 업무정지가 해금되는 규정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런데 잘 믿기지 않는 내용이 실존하고 있어 행정명령 개선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하루에 3만 원의 과징금을 물면 금세 업무정지를 풀수 있다는 황당한 현실이다. 한쪽에선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 마약사범 근절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판국에 또 한쪽에선 돈만내면 ‘만사형통’이란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 국민들로부터 불신행정 이라는 오해를 쌓고 있다.
그야말로 마약 퇴치에 역행하는 행정처분이 아닐 수 없다.
서울의 한 의원의 경우 마약류관리법을 위반해 30여 일의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정지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또 마약 성분 수면제를 처방했다가 '1년 업무정지'를 추가로 받았다. 또 다른 서울의 의원도 업무정지 기간에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했다가 '업무정지 1년'을 처분받았다. 두 곳 모두 하루 3만 원으로 계산한 1년치 금액, 총 1,080만 원의 과징금으로 업무정지를 대신했다는 것이다. 펜타닐 등 마약류 의약품을 과다처방한 혐의로 13개월 업무정지를 받은 다른 한 의원도 역시 과징금 1,170만 원을 내고 바로 병원 운영을 정상화했다.
2018년 이후 서울에서 마약류관리법을 위반해 석 달 이상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의료기관은 63곳, 이들 중 80%를 넘는 51곳이 하루 3만 원의 과징금으로 업무정지를 대신했다.
현재 마약류법 46조는 ‘업무정지처분을 갈음하여 2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로 되어 있으며, 동법 시행령 15조는 업무정지 1일에 해당하는 과징금은 3만원이며, 이를 업무정지 13개월(390일)에 적용하면 1170만원이면 업무정지를 면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
불합리한 규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법개정을 서둘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영석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은 "마약류법을 적용받아 업무정지된 병의원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과징금 제도는 문제가 있다“며 ”특히 1일 3만원의 과징금으로 마약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 서둘러 개정 입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따지고 보면 공공의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 안 되는 분야가 어디 ▲국가행정전산망 ▲외국인 출입국관리 ▲마약류 유통 문제뿐이 겠는가. 문제는 공직사회에서의 최고 책임자나 간부가 의무감 상실로 인해 잘못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은 가지 말자’는 태국국민들의 정서가 뼈에 사무치도록 아픈 사연이었다면 진정으로 해명하고 달래야 제2의 태국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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