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지의 아산병원에도 뇌수술 전문의 2명뿐…출장 잦아 부재중
수술은 어렵고 보수 낮아 뇌수술 전문의 기피 현상 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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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환 칼럼니스트. |
서울아산병원이 어떤 병원인가 배경엔 재벌기업 현대그룹이 있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전문의가 많이 포진된 ‘빅5’병원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이런 대형병원에서 믿기지 않은 의료사고가 얼마 전 발생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는데도 내부에 수술 가능한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갔다가 결국 숨진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밤 아산병원 응급실에서는 비상연락망을 통해 ‘SOS’를 보냈으나 모두 부재중이라는 응답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해외 학회 참석 등으로 자리를 비운 뇌 신경정신과 의사들에게 비판이 쏟아졌다. 비상시 의 대비책을 세워놓지 않고 해외출장을 갔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우리나라 대형병원의 허술한 의료시스템을 지적하는 글을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문제의 본질은 아산병원 같은 우리나라 ‘빅5’ 병원에 뇌혈관외과 교수가 단 2명뿐이라는 사실이라며 이것이 중증의료의 현실이고, 반드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다.
방 교수는 아산병원 간호사가 쓰러지던 밤 전문의 두 명 중 한 분은 해외 학회 참석 중이었고, 또 한 분은 지방 출장 중이었다. 비외상성 뇌출혈은 머리를 여는 개두술이 필요한데, 당시 그걸 할 수 있는 뇌혈관외과 교수가 병원에 없었다. 그래서 그날은 뇌혈관내시술 전문 교수가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보려고 색전술로 최대한 노력했으나 결국은 출혈 부위를 막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 교수는 “그 큰 아산병원에서 뇌혈과외과 교수 달랑 2명이어서 1년 365일을 퐁당퐁당 당직을 서고 있다. 나이 50 넘어서까지 국민의 몇 %가 그렇게 자기 인생을 바쳐 과로하면서 근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면서 “세계학회에 참석해 유수한 세계적인 의사들과 발표하고 토론해야 의사들 수준이 올라간다. 의사의 해외학회 참석을 마냥 노는 것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 뇌혈관외과 의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소수가 응급 수술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중증의료제도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방 교수 지적은 “뇌혈관수술의 위험도와 중증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진료비)로 인해 지원자가 급감하다 못해 없다”며 “그나마 아산병원 같은 큰 대학병원은 뇌혈관외과 교수가 2명이라도 있지, 중소병원이나 지방 대학병원엔 1명만 있거나 아예 없다”고 말했다.
또 “현실은 뇌혈관외과 의사를 전임의까지 훈련시켜 양성해 놓으면 대부분이 뇌혈관외과 의사의 길보다는 머리 열고 수술하지 않는 코일 색전술, 스텐트 등 뇌혈관내시술 의사의 길로 선택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물론 뇌혈관내시술 의사가 더 편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술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머리를 열지 않으니 그쪽으로 더 많이 지원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뇌혈관외과 의사로서 세계 유수의 의사들과 실력을 경쟁할 정도의 수준이 되려면 적어도 40대 중반은 돼야 하는데, 1년에 휴가 10일 정도 외에는 일만 하는 기계처럼 근무해야 한다”며 “자라나는 젊은 의대생들이 신경외과, 특히 뇌혈관외과를 지원할 리 없고 신경외과 전공의들조차도 4년을 마치고 나면 현실의 벽에 절망해 대부분 척추 전문의가 된다”고 지적했다.
방 교수는 “국민들도 제발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중증의료분야 지원, 뇌혈관외과분야 지원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의사들 밥그릇 논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의사들에게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며 “우리가 그토록 존경했던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님이 그렇게 중증의료치료에 매진하다가 나가떨어지신 진짜 배경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방 교수의 용기 있는 지적과 개선책은 어떻게 보면 의료업계의 뼈아픈 실상이기도 하지만 의료업계의 현실을 모르고 비판만 쏟아내는 국민들에게 던지는 호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뇌혈관 수술전문의만 있었다면 살릴 수 있는 간호사의 소중한 생명. “어쩔 수 없었다” “불가항력”이었다“는 변명은 있을 수 없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같은 희생정신은 강요할 수 없지만 허술한 야간 응급실 진료시스템 개선은 시급히 선결되어야 하는 과제다. 현재 종합병원의 야간 응급실 근무 의사들은 인턴들이 모두 채우고 있지 않은가. 이게 현실이다. 통상적 진료에서 주간진료와 야간 진료의 신뢰도가 큰 차이를 이루고 있는 점도 야간 응급실 진료시스템이 허술해 환자로부터 믿음을 잃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셈이다. 의료계는 현실도피의 해명보다 내실 있는 진료체계 구축만이 제2, 제3의 간호사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을 각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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