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3일 단체장 사퇴시한 앞두고 잇단 ‘출사표’ …행정공백·혈세낭비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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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전남 무안군 무안종합스포츠파크 실내체육관에서 서삼석 무안군수의 자전적 에세이 ‘열정은 태산을 넘는다’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다. 서 군수는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9일 군수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단체장들이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할 예정이어서 행정 공백에 따른 주민 피해가 예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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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되면 임기를 채우며 지역을 위해 뛰겠습니다”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시장·군수·구청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임기 동안 지역에 헌신하겠다며 밝힌 의지다.
의지는 취임 1년6개월 만에 백지화됐다. 단체장들이 총선 출마 명목으로 잇따라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감 없는 단체장들로 인해 지역 갈등과 행정공백, 혈세낭비 등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정치적 야심을 위해 주민들에게 피해를 전가시킨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
지자체장들 이구동성 ‘지역발전 위해?’
신현국 경북 문경시장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직을 사퇴한다. 문경시는 총선 출마를 위한 단체장 사퇴시한인 12월13일을 하루 앞둔 12일 신 시장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임식을 연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무소속인 신 시장은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한성 한나라당 의원과 마찰을 빚어왔다. 그는 한나라당 소속이었으나 지난해 지방선거 공천에서 탈락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이한성 의원은 신 시장이 지난 총선 때 무소속 후보를 지원한 의혹이 있다며 공천에서 배제하는 등 갈등을 빚었다.
신 시장은 선거 당선 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남은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한 끝에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번에 시장직을 사퇴키로 해 법원 처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덕수 인천 강화군수는 2일 총선에 출마하겠다면서 군수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군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나 군수가 갖는 권한의 한계를 절감했다”며 “지역 발전을 위해 중앙정치 무대에 진출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 중도하차의 명분이다. 온천관광단지 건설 등 안 군수 공약 가운데 상당수는 추진 중이거나 착수하지도 못했다.
노관규 전남 순천시장도 1일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순천의 정치적인 고립과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2013국제정원박람회 등 중앙정부의 지원과 관심을 풀어내기 위해 내년 총선에 나가기로 했다”는 게 출마의 변이다.
시민단체들은 “시민의 여론수렴보다는 독선과 독단으로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추진했으며 개최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사퇴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황주홍 강진군수는 지난달 14일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총선을 앞두고 기성 정치권 전체가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고 새로운 위치에서 고향발전을 가져오기 위한 충정의 결단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5억원 안팎으로 예상되는 내년 군수 보궐선거 비용은 국회의원 당선 6개월 이내에 그 10배 이상을 가져올 수 있도록 최대의 심혈을 기울이겠다”며 군민과 공직자들의 성원을 호소했다.
7일 현재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거나 사퇴하기로 한 기초단체장은 황주홍 강진군수, 서삼석 무안군수, 노관규 순천시장, 신현국 문경시장, 안덕수 강화군수, 서중현 전 대구 서구청장 등 6명이다.
총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시장·군수·구청장들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직후보 사퇴 시한인 13일까지 총선에 뛰어드는 기초단체장은 15명 정도로 예상된다.
관할 구역이 겹치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자치단체장은 일반 공직(90일 전)과 달리 120일 전까지 사퇴해야 한다. -
빈자리 노리는 기초·광역의원들
1일 전남 순천시청 소회의실에서 노관규 시장이 내년 총선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현직 단체장의 총선 출마로 생기는 공석을 노린 광역·기초의원들의 줄사퇴도 예고됐다. 이 경우 지역 곳곳에선 총선과 함께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등을 다시 뽑는 대규모 보궐선거가 동시에 치러질 판이다.
문경에서는 한 광역의원이 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기초의원들은 공석이 될 해당 광역의원직을 넘보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광역의원―기초의원 등으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자리 이동이 발생하면 문경은 내년 총선에서 최대 4개 선거를 동시에 치르게 된다.
제주도에서는 고창후 서귀포시장이 총선 출마를 선언한데 이어 문대림 제주도의회 의장과 오영훈 도의원, 장동훈 도의원이 출마할 예정이다. 제주도는 임명직인 후임 시장을 공모를 통해 이달 28일까지 임명하기로 했다.
부산에서는 안성민 시의원과 권영대 시의원 외에 2명 정도가 사퇴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미리 사퇴한 광역의원과 기초의원도 15명에 이른다.
고위공직자의 퇴임과 출마선언도 잇따라 행정 공백이 불가피하다.
전북에선 이명노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장이 2일 사표를 제출했다. 지난해 9월 부임한 이 청장은 임기를 1년 반 정도 남겨두고 총선 출마로 마음을 바꿨다. 이 청장이 사직서를 낸 지 사흘만인 5일 김승철 관광본부장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은 3명의 지도부가 모두 공석인 이름뿐인 조직으로 전락했다.
산업본부장 자리는 박준배 전 본부장이 9월 전북발전연구원으로 파견된 이후 3달째 비어있다. 지도부 공백으로 관광단지와 산업단지 조성 등 업무 차질이 예상된다.
부산에서는 이기우 경제부시장이 지난달 3일 퇴임했다. 이 부시장은 지난해 7월 취임해 그동안 경제산업 분야 시정을 이끌어왔지만 내년 총선 때 경남 창원을에 출마할 예정이다.
이밖에 강병기 경남도 정무부지사와 최민호 충남도 행복도시건설청장 등도 사퇴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잦은 선거인해 주민혼란·갈등 불러
지자체장들이 잇따라 사퇴하면서 주민혼란과 갈등, 행정공백, 재보선에 따른 세금낭비 등이 불가피해졌다. 이들이 기초단체장과 국회의원 지역구가 겹치는 점을 활용해 총선 출마를 위한 징검다리로 단체장직을 악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직 프리미엄을 이용해 이름을 알리고 지역개발 사업을 추진해 단체장직을 금배지를 달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중도 사퇴에 따른 보궐선거 실시로 선거구당 6억원이 넘는 혈세를 낭비하게 됐다. 총선을 앞두고 12명의 기초단체장이 사퇴해 6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2004년 보궐선거에서 선관위가 집행한 선거경비는 83억2043만원(평균 6억9337만원)에 달했다. 15명이 사퇴해 보선을 치를 경우 100억원이 넘는 혈세가 든다.
공석이 된 단체장을 뽑는 선거는 내년 총선과 함께 치러져 5개월여의 행정공백도 불가피하다. 일부 공무원들은 해야 할 업무가 쌓여있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 단체장의 출마 여부에 따라 추진 중인 상당수 사업들이 중단되거나 방향을 돌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공무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고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했던 사업들이 백지화되는 것처럼 신임 단체장이 오면 지금 사업도 바뀌지 않겠냐”고 전했다.
실제로 10.26 보궐선거를 치른 대구는 총선 출마를 위해 서중현 전 서구청장이 9월 일찌감치 물러나면서 공약사업 대부분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신임 구청장이 취임한 뒤 지역에서 처음으로 신설한 자전거 전담부서의 관련 중장기 계획은 대부분 중단됐다.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행·의정감시연대는 2일 “불과 1년6개월 전 치러졌던 선거에서 당선자 모두는 임기를 마칠 때까지 직무를 잘 수행하겠다고 주민과 약속했다”며 “이는 이기주의의 전형이며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 따른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단체장 자리 비움으로 인한 행정공백, 부단체장이 직무대행을 하며 발생할 수 있는 자치행정 표류, 보궐선거로 인한 예산 낭비까지 모두 주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며 “현직 사퇴와 출마는 정치적 입지와 개인적 영달을 위한 목적 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도사퇴한 단체장들의 총선 공천이나 출마 자체를 금지하고 선거비용을 부담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선출직 공무원의 임기 중 사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 전문가는 “선출직 공무원이 총선에 나가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임기를 다 채우고 나가라는 것”이라며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이들을 엄중히 심판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룸 = 박형재 기자 news34567@segye.com
기사입력 2011.12.09 (금) 14:23, 최종수정 2011.12.09 (금)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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