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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의정동우회가 지난달 7일 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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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을 앞두고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들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단체들은 각 정당 및 총선후보자들에게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에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 동·북부지역 공무원 모임인 ‘경기동·북부권공무원대표자협의회’는 지난 16일부터 시·군 공무원을 대상으로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공무원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 직접 의사를 표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협의회는 포천, 구리, 남양주, 동두천, 성남, 광주, 이천, 하남, 여주, 양평 등 10개 시·군의 공무원노조나 직장협의회 대표로 구성된 단체다.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에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19대 총선 출마예정자를 대상으로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 폐지 찬반 의사를 묻고 이를 공약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실질적 행동에 돌입했다.
이에 화답하듯 총선 후보들은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요 공약 중에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황주홍 민주통합당(장흥·강진·영암) 예비후보는 지난 26일 보도자료를 내고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지역구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고 충성을 맹세하는 과정에서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가 싹트게 된다”며 “국회에 들어가면 동료 의원을 설득해 정당공천 폐지 입법을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말했다.
지방자치 걸림돌이 된 정당공천제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 목소리가 급속도록 확산되는 데에는 정당공천제가 지방자치 정착의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정당공천제의 가장 큰 폐해는 지방정치의 중앙 예속이다. 지방정치는 생활정치다. 민생현장에서 시민들의 편의를 돌봐야 한다. 중앙의 정치적 이슈에 매몰되지 않고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정당공천제는 이 같은 생활정치에서 벗어나 중앙정치의 예속을 심화시키고 지방정치를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하는 요인이 돼왔다. 특히 단체장과 다수 의석을 차지한 지방의회 간 정당이 다를 경우 더욱더 중앙정치의 대리전 양상을 보인다. 단체장과 기초의원의 갈등으로 예산안 처리조차 하지 못해 행정력과 예산의 낭비가 속출한다.
당적이 같을 경우에도 문제는 발생한다. 같은 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의회의 견제 기능이 약화되고 담합과 부정으로 주민 혈세가 엉뚱한 곳에 쓰인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은 자신들의 공천권을 갖고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각 정당의 지구당 위원장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적 ‘생명줄’을 쥐고 있는 이들에게 한번이라도 밉보이면 다음 선거 때 공천 받을 가능성이 낮아진다. 지방선거에서 인격, 실력, 도덕성 보다는 충성도에 따라 공천권이 오고간다.
특히 특정정당이 강세를 띄는 지역에서는 실력이 부족해도 지역구 의원에게만 잘 보이면 당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지방선거 후보자에 대한 정당공천제가 허약한 정당 구조 속에서 공천과정 자체는 국회의원과 지구당 위원장의 권력을 상세히 보여주는 ‘시험장’이 된다.
자질 부족은 부정부패로 이어져
자질이 부족한 기초 단체장이나 기초의원의 당선은 부정부패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06년 민선 4기에 당선된 230명의 기초단체장 가운데 100여명이 비리와 부정으로 기소됐다. 35곳에서는 재보선 선거가 치러졌다. 자질이 부족한 단체장들로 수백억원의 혈세가 재보선 비용으로 낭비됐다.
기초의원 또한 마찬가지다. 민선 1~5기 지방의원 1100여명이 각종 비리로 임기 중 사법처리 됐다.
민선 6기 들어서도 기초의원 비리 사건은 끊임없이 터지고 있다. 최근 감사원의 공사 계약관련 분야 등에 대한 토착 비리 점검 결과 경기 포천시와 충남 홍성군 등에서 지방의원과 그 가족들이 수의계약 과정에서 비리를 저질렀다.
정당공천제 폐해를 경험한 일본과 미국은 이를 폐지하거나 제한하고 있으며 유럽은 상향식 공천을 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부터 기초자치단체 선거는 무소속으로 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이를 실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70% 이상이 ‘정당표방금지제’를 실시하고 있다.
영국은 지역주민들이 중앙당에서 제시한 후보자 명단을 살펴보고 후보를 선출하는 혼합방식을, 프랑스와 독일은 당원들이 함께 모이는 총회에서 직접 추천과 투표로 기초의원 후보자를 선출한다.
육동일 충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22일 열린 정당공천제 폐지 초청포럼에서 “지방 선거가 그 본연의 의미를 크게 상실하고 중앙 정치에 예속돼 가고 있는 만큼 현행 정당 공천제를 근본적으로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육 교수는 이어 “기초의원까지 본격적인 정당 공천이 이뤄지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되고, 지방 선거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변질됐을 뿐 아니라, 소모적 정치 구도를 형성해 지역 발전에 역행해 왔다”고 지적했다.
라안일 기자 raanil@segye.com
- 기사입력 2012.03.05 (월) 09:56, 최종수정 2012.03.05 (월)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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