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일 경남 산청군의회에서 열린 ‘제204회 산청군의회 임시회’에서 군의원들이 의정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전국 228개 시·군·구의회 의원 1만5000여 명은 정당공천제 폐지를 촉구했다. |
-
4년마다 열리는 축제는 끝났다. 이제는 지방자치 활성화를 모색할 때다. 특히 19대 국회의 역할이 크다. 아직은 걸음마 수준인 지방자치가 주민들 삶속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국회가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풀뿌리 지방자치 정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산재해 있다. 기초 의원·단체장 정당공천제, 지자체 재정자립도 악화,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 등이다. 이 가운데 기초 의원·단체장의 정당공천제 폐지는 지방자치 활성화를 위한 첫 번째 과제로 꼽힌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는 1995년 기초단체장선거에 처음 도입됐다. 2006년 지방선거부터 기초의원도 정당공천을 받게 됐다.
도입 당시 논란이 거셌던 정당공천제는 중앙정치 예속화, 공천비리, 지방의원 및 단체장 자질논란, 국회의원 거수기 역할 등 여러 폐단을 불러오고 있다. 진일보해야 하는 지방자치가 퇴보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지방정가를 비롯해 학계, 시민단체 등은 기초 의원·단체장 선거에서만은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4.11총선을 앞두고도 이 같은 주장은 계속됐으며 일부 당선자 및 후보자들은 이에 동참해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방분권국가 실현을 위한 부산시민회의’는 부산지역에 출마한 4.11 총선 후보 67명 전원에게 기초 의원·단체장 정당공천제 폐지 등이 담긴 ‘지방분권 부산시민협약’ 체결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 62명과 약속을 맺었다.
협약체결에 동의한 62명 중 46명의 후보는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찬성을 나타냈으며 16명은 정당을 통한 책임정치의 구현과 후보자의 검증 기능 등을 이유로 폐지에 동의하지 않았다.
경남 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5일 경남지역 총 후보자 56명을 대상으로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21명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약속했다. 이밖에 강원 원주 갑 김기선 후보(새누리당), 전북 익산 갑 김경안 후보(새누리당), 포항 남·울릉 허대만 후보(민주통합당) 등도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지방정가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을 보여 왔다. 정당공천제로 인한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기초 의원과 단체장은 정치권에 폐지를 꾸준히 촉구해왔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지난해 10월 지방분권운동본부와 정당공천제 폐지활동 협약을 체결하고 정당공천제 폐지를 범국민적 캠페인으로 이끌며 총선을 앞둔 정치권을 압박했다.
전국 228개 시·군·구의회 의원 1만5000여 명은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했다.
학계를 비롯한 지방자치 전문가들도 정당공천제 폐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지방자치학회가 지난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공직자, 교수, 공무원 등 행정전문가 집단 212명 중 184명(86.8%)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지방자치제도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일반인 1000명에게 실시한 설문에서도 폐지 의견이 46.7%로 존속 의견(36.2%) 보다 높았다.
이호영 경남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는 “지방자치는 지역민들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해야 한다”며 “하지만 기초 의원이 지역현안보다는 중앙정치의 이슈에 휘둘리는 등 정당공천제로 인한 폐단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지난해 7월7일 경기 수원 이비스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지방이 세계를 움직인다’에서 염태영 수원시장, 김윤식 시흥시장, 한범덕 청주시장, 최영호 광주남구청장 등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교수, 공무원, 행정전문가 집단의 86.8%는 기초 의원·단체장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아직도 19세기 제도 21세기 민심 역주행
정당공천제 이젠 끝내자
기초 단체장·지방의원 ‘공천권’ 줄서기·공천헌금 부작용
한국의 정치문화를 말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후진성’이다. 정치인은 가장 부패한 직업을 뽑는 설문에서 수위를 다투고 정치는 가장 낙후된 분야로 뽑힌다.
국내 정치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하향식 공천이 꼽힌다. 밀실공천, 비리공천, 인맥공천 등은 하향식 공천방식에 나타나는 문제들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하향식 공천이 난무하는 기초 단위 지방선거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19대 국회에서 기초 단위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을 없애야 하는 이유다.
기초의원은 국회의원의 가신?
정당공천제는 말 그대로 각 정당에서 후보자를 추천하는 제도지만 현행 지방선거 공천권은 국회의원 또는 지구당위원장이 쥐고 있다. 이들의 추천이 곧 당의 추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후보자들뿐 아니라 기초 의원·단체장들이 국회의원 등에게 쩔쩔매는 이유다.
이번 총선에서 상당수 기초의원들이 재선 이상을 노리는 국회의원 후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선거유세를 직간접적으로 도왔다. 특히 국회의원의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병풍처럼 서 있던 기초의원들의 모습에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기초의원들이 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데에는 자신들의 정치적 생사여탈권이 국회의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음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
일부 기초의원들은 의정활동보다 지역 내 행사에 더욱 관심과 열의를 보인다. 국회의원을 대신해 지역 기반을 다지는 셈이다. 의정활동은 뒤로 한 채 행사만 열심히 다닌다는 주민들의 지적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지역구 관리에 비례해 공천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주관하는 행사에는 자비를 들여 주민들을 동원하고 국회의원 선거운동도 대신한다.
이 때문에 활발한 의정활동과 조례발의 등 지역민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기초의원들도 도매금으로 욕을 먹고 있다.
단체장은 기초의원에 비해 낫지만 국회의원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비슷하다. 지역현안을 해결하고자 특정 사업을 추진해도 국회의원들이 반대하면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지역민보다 국회의원의 표심에 의해 사업여부가 결정된다. 특히 주민들의 반대가 심한 님비 현상을 보이는 음식물쓰레기처리장 등의 사업이 그렇다.
지역민의 일꾼으로 선출된 기초의원이 한순간에 국회의원 개인의 일꾼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실제로 2006년 부산의 구청장 후보가 지역구 국회의원의 총선을 책임진다는 내용을 약속한 충성서약서를 작성했다. 국회의원이 기초의원 등 지역 정치인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정당공천제를 악용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천 여부에 따라 지방의원의 행보가 달라진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선을 통해 당선된 지방의원이 중앙정치로부터 좀 더 자유롭다. 반면 국회의원으로부터 낙점된 지방의원은 종속된 모습을 보인다. 의정활동 평가에 있어서도 상반된 결과가 나타난다. 경선을 통해 당선된 의원은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의원보다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는다.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의정활동을 모니터링하다 보면 경선을 통해 의회에 입성한 의원과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의원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며 “경선을 거친 의원이 더 활발한 의정활동을 하고 지역 국회의원이나 중앙정치로부터 자유로운 행보를 보인다”고 말했다.
우수 인재 정치권 입성 가로막아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기초의원·단체장을 거쳐 국회의원이나 광역 단체장이 된 정치인은 많지 않다. 짧은 지방자치역사를 감안해도 지방정가에서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지방 정치인 및 신인 정치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정치적 풍토 때문이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는 이를 더욱 굳건하게 만든다.
공천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은 장차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경쟁자의 정치활동을 방해하거나 지방 정가로만 국한시킨다. 지방정가에서 뛰어난 정치활동을 펼쳐도 중앙정치 진출이 요원한 이유다. 우수 인재보다 자신의 ‘가신’을 공천하는 국회의원도 상당수다. 특히 자신의 보좌관을 지방선거에서 공천하기도 한다.
일부 정치인들이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자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있지만 벽은 높다. 정당이라는 ‘프리미엄’을 안고 있는 후보들과 비교해 출발점이 다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천에 있어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능력이 부족해도 줄만 잘 서면 공천이 된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도 가능하다.
줄서기 공천은 불법 공천헌금으로 이어진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기초 단체장 공천헌금 7억, 광역의원 3억이라는 소문이 지역 정가에서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이호영 경남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는 “지방자치 선거 때마다 정당공천제로 인한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다”며 “우수 정치인 양성 등을 위해서는 혁신적인 정치 개혁이 필요하며 상향식 공천이 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정치 챙기고 지역현안 ‘나몰라’
지방선거에 있어 지역현안에 대한 공약보다는 중앙정당의 공약을 그대로 외치는 후보가 많다. 지난해 10.26재보선과 4.27재보선에서 후보자들은 복지표플리즘 반대와 정권심판론 등 각 정당의 구호 외치기에 앞장섰다. 지역구는 다르지만 유권자들이 들은 공약은 거의 같았다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당과 지역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는 기초 의원과 단체장은 소신보다는 당의 정책에 따라 행동한다. 지역 현안보다는 당이 내세운 이슈와 정책을 우선 한다. 지역민이 체감할 수 없는 공약으로 생활정치 실현은 멀기만 하다. 지역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중앙정당의 대리전으로 변질돼 지방자치가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정당의 대리전 양상은 선거뿐 아니라 지방정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지방의회는 국회의 축소판처럼 정당 간 대립으로 소모적인 정치구도를 형성해 지역발전에 역행하고 있다.
단체장이 소속된 정당과 시의회 다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다를 경우 4년 임기 동안 효율적인 지방자치 운영은 어렵게 된다. 협력과 소통이 아닌 갈등과 정쟁만 남게 된다.
또한 지역주민에 대한 봉사에 전념해야 하는 공무원들까지도 단체장의 당적 여부에 따라 정치권 줄서기, 투서, 진정을 하는 등 기초 단위 정당공천은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지난해 11월 16일 부산 해운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전국 시도별 특위위원 15명이 ‘정당공천 폐지 특별위원회 출범식’을 가진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문가·공무원·시민 폐지 찬성
국회를 제외하면 시민, 학계, 공무원 등 사회구성원 모두 정당공천제 폐지를 찬성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지방자치학회와 코리아리서치 주관으로 실시한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여론조사결과 전문가들의 86.8%, 시민의 46.7%가 폐지에 찬성했다. 반대는 각각 12.3%와 36.2%로 찬성보다 적었다.
지자체 공무원들도 정당공천제 폐지 움직임에 동참했다. 포천·구리·남양주·동두천 등 경기도 10개 시·군의 공무원 노조 또는 직장협의회 대표로 구성된 경기 동·북부권 대표자협의회는 2월16일부터 서명을 받아 행정안전부에 공직선거법 개정을 청원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현행 정당공천제는 지방선거의 공천을 국회의원이 좌우한다”며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다수당의 소속 정당이 달라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지방공천제로 인한 폐단을 막고자 법 개정 움직임을 보여 왔지만 그 효과는 미비하다. 2007년 정부가 기초 단위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냈으며 2008년에는 민주당 정장선·김종률 의원이 같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포기하지 않았다.
앞선 2002년 국회는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여론이 확산되자 기초단체장 후보 ‘주민참여경선제’ 도입을 밝혔으나 주민참여경선은 구호에 그쳤다. 지역 국회의원에 의한 기초 의원·단체장의 후보 결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선진국사례
생활정치에 웬 중앙입김?
선진국들은 지방선거에 있어 정당공천을 배제하거나 상향식 공천을 하고 있다. 지방정치가 정당에 종속되는 부작용을 차단하고 지역민의 관심사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활정치가 꽃피는 이유다. -
일본_지방선거 당선자 90% 무소속
일본은 지방선거에 있어 정당공천제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정당 공천을 받은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 지방자치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소속 후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일꾼을 뽑는데 정당의 입김이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당정치가 지역사회의 발전과 통합에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유권자들의 높은 정치의식이 정당공천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셈이다. 국정은 정당이, 지방자치는 무소속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 때문에 유능한 인재일수록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한다. 2007년 7월 통합지방선거에서는 47개 도도부현 지사 중 1명을 제외하고 전부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기초 자치단체인 정촌의회는 90% 이상, 시의회는 60% 이상이 무소속이다.
미국_정당표방금지제 실시
미국은 지방자치단체 70% 이상이 ‘정당표방금지제’를 실시하고 있다. 정당공천을 금지하는 지방정부의 수는 1975년 전체의 64.2%에서 1986년 72.6%, 2002년 77.6%로 계속 늘어났다.
미국 지자체들이 지방선거에 있어 정당공천제를 금지하는 이유는 건국 이래 시행된 엽관제도(선거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공직을 나눠 주는 제도)의 폐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엽관제로 지역의 토호 세력화된 정당 지도자들이 선거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지방선거가 중앙정치무대의 연장으로 이용됐었다.
유럽_상향식 정당공천
유럽은 정당공천제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국회의원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정치풍토가 국내와 전혀 다르다. 풀뿌리 생활정치와 당비를 제대로 내는 진성당원들이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당원들이 모인 총회에서 직접 추천과 투표로 기초의원 후보자를 선출한다. 투표에 참여하는 당원들은 대부분 지역민이다. 영국은 지역민들이 중앙당에서 제시한 후보자 명단을 살펴보고 후보를 선출하는 혼합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라안일 기자 raanil@segye.com
- 기사입력 2012.04.13 (금) 10:14, 최종수정 2012.04.13 (금) 14:17
- [ⓒ 세계일보 & local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