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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8일 전주지법 제2호 법정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강완묵 임실군수(왼쪽 두 번째)에 대한 1심이 열린 가운데 재판이 끝난 뒤 강 군수가 말없이 법정을 떠나고 있다. |
강완묵 임실군수, 건설업자에게 사업권 보장 각서
브로커들 “조직 동원 당선 보장” 유혹에 본분 망각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인사권을 파는 관행이 사실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표와 인사권을 맞바꾼다는 ‘검은 거래’ 소문의 진상이 밝혀진 것이다.
강완묵 임실군수는 2007년 건설업자 권모씨에게 공무원 인사권과 사업권 일부를 보장하는 각서를 썼다고 말했다. 2008년 예상된 군수 보궐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 군수는 “권씨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를 포함해 3명이 자리를 함께했던 다방에서 각서를 써줬다”고 주장했다.
이어 “브로커가 ‘보궐선거가 곧 실시될 것이다’며 찾아와 적극 도와주겠다는 빌미로 각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2004년에 이어 2006년에도 낙선하다 보니 절박한 심정이었다”며 “이들 브로커 세력은 지역에서 실제 표로 직결될 수 있는 조직을 관리하는 등의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각서를 써줬다”고 시인했다.
강 군수와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군수 출마예정자 심모씨도 ‘인사권과 사업권의 40%를 위임한다’는 각서를 권씨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비리로 구속됐던 김 모 군수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보궐선거가 무산돼 이런 각서는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이에 건설업자 권모씨는 “각서를 쓴 사실이 없고 강 군수의 말은 모두 거짓이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않지 않고 있다.
앞서 2004년 초 김진억 전 군수는 권씨로부터 어음지불각서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2007년 7월 구속됐다. 하지만 2008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해 보궐선거가 무산됐고 강 군수와 심씨는 출마하지 못했다.
권씨가 작성한 각서에는 하수종말처리장 공사를 위임하면 2억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임실군은 2005년 오수하수종말처리장 공사를 권씨의 부인이 사장으로 있는 업체에 줬다.
지방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인사권 등을 판다는 ‘검은 거래’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1995년 민선 첫 군수로 뽑힌 이형로 씨는 2000년 11월 쓰레기매립장 부지 조성과 관련해 건설업체의 부탁을 받고 서류를 임의로 꾸며준 혐의로 1심에서 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아 중도 하차했다. 이후 이씨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두 번째 군수였던 이철규 씨는 2003년 8월 사무관 승진 청탁과 함께 9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씨의 낙마로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김진억(70) 전 군수는 현재 수감 중이다. 상수도 확장 공사와 관련해 수의 계약을 주는 대가로 건설업자에게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008년 8월 구속됐다.
강 군수는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측근을 통해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됐다. 강 군수는 지난 8일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8400만원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항소 중이다.
선거에서 드러나는 여러 불법행위를 살펴보면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경쟁후보를 매수한 사례도 있다. 혹시 문제가 되더라도 당사자들이 발뺌하면 처벌하기 어렵다. 당선자가 약속 내용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처벌을 우려한 상대측이 폭로하기도 쉽지 않다. 불법이 탄로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번 각서 파동으로 소문으로만 떠돌던 지방선거 인사권 매매 행위가 사실로 드러난 만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례가 더 있을 거란 주장도 나온다. 이번 인사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임실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26일 전북 순창군수 재선거를 앞두고 이홍기 후보가 조동환 전 교육장에게 “남자답게 권한의 3분의 1을 주겠다”고 약속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된 사건을 보면 이런 음습한 거래가 비일비재함을 알 수 있다.
2007년에는 경북 청도군수 불법선거로 2명이 자살하고 52명이 구속됐으며 불구속 입건된 사람은 1418명이었다. 인구 4만여명이 안 되는 소도시에 대형 불법 선거가 이뤄진 것이다.
불법 부정선거가 기승을 부리면서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의 자질 검증과 비리 척결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라안일 기자 raanil@segye.com
- 기사입력 2012.01.06 (금) 16:00, 최종수정 2012.01.06 (금)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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