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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세계협동조합의 해' 공식로고. 유엔(UN)이 정한 '협동조합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든다'(Cooperative enterprises build a better world)라는 슬로건에 기초해 만들었다.
양극화와 승자독식, 무한경쟁, 재벌 중심체제로 얼룩진 한국경제에 ‘협동조합’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생협운동, 사회적기업 육성, 자활공동체운동 등에 몰두해온 수많은 활동가와 이론가 들은 협동조합을 가리켜 노동조합이 필요 없는 기업이자 연대와 신뢰의 힘으로 노동이 자본을 고용하는 혁신적인 기업형태라고 치켜세운다.
협동조합은 ‘개미들의 경쟁’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배제된 자들, 혹사당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이들, 타인의 탐욕에 희생당하는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
약자를 위한 진정한 연대
올해는 유엔(UN)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다. 이런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협동조합에 대한 높은 관심이 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0월말 협동조합기본법이 민주통합당 손학규 의원에 의해 대표발의 된 후 12월29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올해 1월26일 공포됐으며 12월1일부터 시행된다.
협동조합은 영리를 목적으로 투자자들이 모여 만드는 주식회사와 달리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자율적·독립적 단체다. 1주 1표라는 주식회사의 원칙과는 달리 출자규모와 상관없이 1인 1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제협동조합연맹이 제시한 ‘협동조합정체성 선언’에서는 협동조합에 대해 ①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enterprise)를 통해 ②공통의 경제·사회·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③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인적결합체(association)라고 정의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르면 기존 1000명 이상이던 설립요건을 대폭 완화해 5인 이상 신고제로 바뀌었다. 업종도 농업과 수산업 등 1차산업에 제한됐던 것이 서비스산업까지 허용돼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경제를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착한 기업’이 설립될 전망이다. -
한국경제 대안모델 될까
협동조합사업은 크게 10가지로 범주화 된다. △영세상인의 경쟁력 강화 △청년들의 소자본 창업 활성화 △노동자협동조합을 통한 특수노동자의 노동권 보호 △지방자치시대에 걸맞는 지역민 주도의 지역개발 △사회적협동조합의 활성화 △장애인의 노동통합 △저소득층 자립·자활 △의료의 공익성을 실천하는 의료생협 △공공재의 탈시장화에 기여하는 주택·에너지 협동조합 △여가 활성화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로컬푸드 등의 영역이 그것이다.
박범용 한국협동조합연구소 협동조합형 기업지원팀장은 “영리적 법인과 비영리적 법인의 이분법 사이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며 “협동조합은 경제영역과 사회영역을 넘나드는 법인으로서 사회적기업과 주식회사 사이의 중간 영역을 메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3월2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한국경제의 대안전략과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협동과 연대를 통해 ‘자립자치’의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지향한다. 사회적 경제(경제적 이익과 함께 구성원과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도 실현하는 경제)와 경제민주화가 가장 잘 실천되는 장이다. 지역민이 중심이 돼 협동조합 공동체를 꾸리고, 자치단체는 이를 육성하기 위해 등 적극적 지원을 해야 한다. 협동조합은 100년이 넘는 기간 이미 유럽 등지에서 검증된 사업체 운영 방식이며, 앞으로도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대표적 협동조합인 농협 등의 비리와 권력화가 협동조합의 국내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국가의 산업정책상의 필요에 의해 육성·활용된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목소리보다 정부정책에 좌우되는 측면이 컸다. 그러나 정부 주도로 탄생된 농협과 아래로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협동조합은 태생이 다르다.
박범용 팀장은 “규모가 커지면 비리가 없을 수 없다”면서도 “민간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생겨난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자발성과 자주성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고 말했다.
정원각 한국협동조합학회 사무국장은 협동조합의 의의에 대해 “임금을 매개로 고용된 형태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주인된 노동을 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작은 기업들이 설립되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구성원들의 상호신뢰와 협동이라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며 “홍보와 교육 및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 지원과 법적 여건은 그 다음 문제”라고 협동조합의 활성방안을 꼽았다.
주식회사의 ‘사회책임경영’은 가진 자들의 자선에 의지하는 일이다. 진정한 해결책이 아닐뿐더러 지속가능하지 않고 예측할 수도 없다. 이에 비해 협동조합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인류 최고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실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금융경제의 대안이자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의미도 아울러 담고 있다. 자본주의적 욕망에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협동조합법이 일구어갈 작은 변화와 희망을 기대해 본다.
신상미 기자 uncanny@segye.com
- 기사입력 2012.04.20 (금) 11:15, 최종수정 2012.04.23 (월)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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