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설날의 기억
고용주 기자
yjk2004@naver.com | 2026-02-18 01:17:57
아련한 설날의 기억
하얀 입김이 마당 끝에서
달빛처럼 번지던 새벽,
문풍지 너머로 스미던
솥뚜껑 여는 소리 하나에도
가슴이 먼저 설레던 날이 있었다.
새 옷은 조금 컸고
고무신은 발뒤꿈치가 헐거웠지만
그 어색함마저도 기쁨이 되어
마루를 종종거리며
세배할 차례를 기다리던 어린 마음.
방 안에는 송편 대신
하얀 떡국 김이 피어올랐고
국물 속 둥근 떡처럼
올해도 무사하기를 비는
어른들의 숨결이 담겨 있었다.
차례상 향 냄새 사이로
낯익은 친척들의 웃음이 오가고
주머니 속 세뱃돈은
바스락거리는 꿈이 되어
한 해의 시작을 반짝이게 했다.
이제는 그 마당도,
그 새벽의 서리도 멀어졌지만
눈을 감으면 들려온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서툰 인사 뒤에 숨은 수줍은 웃음.
설날은 지나갔어도
그날의 온기는 아직 남아
해마다 겨울 끝에서
조용히 나를 불러 세운다.
“잘 컸구나.”
누군가 속삭이던 그 음성처럼
아련한 기억은
여전히 따뜻한 손이 되어
내 마음을 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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