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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음악다방이 적어도 읍 이상의 도시 냄새가 조금이라도 풍기는 곳에 있었다면, 다방은 대충 면 소재지 정도의 5일장이 서는 곳 이상에는 몇 개씩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도시에는 더 많았다.
다방에는 차를 배달해주는 여종업들 외에도, 얼굴도 예쁘지만 날씬하고 말주변이 좋은 것은 물론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손님들을 모아 들이는 얼굴 마담이 있었다.
얼핏 생각하면 바지 사장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바지 사장이 단순히 이름만 빌려주는 단순직이라면 얼굴 마담은 엄밀히 말하자면 기능직이다.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미모 등의 기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얼굴 마담의 역할 중 하나는 손님의 옆자리에 앉아서 차를 주문할 때 자신은 물론 종업들까지 한잔씩 사주라고 독려해서 허락을 득한 후 차를 주문해 매상을 올리는 역할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얼굴마담은 자주 찾아오는 손님들의 이름은 물론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나온 신상을 기억해 둘 뿐만 아니라 동행하는 사람들을 기억해 둔다.
그리고 그 손님이 다방에 오지 않았을 때 동행했던 사람이 왔다 간 사실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러면 손님들은 얼굴 마담에게 자신의 행선지를 알려주면서 누가 오면 전하라고 하는 등, 동행했던 사람들 상호간의 소식을 전해주는 연락책 역할도 했다.
당시 다방에는 서로의 소식을 전하는 메모꽂이가 있었지만, 그건 어쩌다가 그 다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얼굴마담은 손님들의 메신저 역할을 통해서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손님이 얼굴마담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우쭐함에 자주 찾아오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암기력이 발달하는 등등 노련한 얼굴마담일수록 잘 수행해서 단골 확보를 잘했다. 얼굴마담의 주된 역할은 말 그대로 호감이 가는 얼굴로 수단을 발휘해서, 손님을 많이 유치하고 매상을 극대화하기 위함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 보니 차를 배달하는 종업원과의 임금 차이는 당연히 일반 종업원 두세 사람 몫이었다.
단순히 얼굴마담으로 치부하기에는 조금은 다를지 모르지만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지금도 존재한다. 다방이 아니라 기업과 정당 등등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LH 사건이 터졌을 때는 물론이고 유사 사건이 터지면 의례히 등장하는 것이 바로 퇴임한 전직 임원들의 얼굴마담 역할이다. 심지어는 법조인이 아니면서도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형 로펌에서 연봉 5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받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 연봉의 배경이 된 경력이 백성들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으면서 나라의 얼굴 역할을 하던 일이었다면, 그래도 되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다. 전문지식인으로서 그 지식을 투자해서 얻는 수익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건 그것도 아니고 백성들 세금으로 공직생활 하면서 얻은 배경을 가지고 그랬다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백성들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는데 더 울화통이 터진다. 그리고 다시 백성들의 피어린 세금으로 녹봉을 채우는 공직생활로 돌아오겠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우선이라지만, 공직자와 교육자는 예외여야 한다는 원칙이 무너진지 오래다 보니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요, 백성들 눈높이가 어딘지도 모르니 백성들 현실을 알리도 없다는 것이 더 문제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체면은 젖혀두고 돈과 권력을 위해서 나섰던 비슷한 차원의 얼굴마담 최고봉은 역시 한명회다. 세조의 반정을 주도하고 단종을 사사하는데 앞장선 인물로, 나름대로는 열심히 일한 정승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늙어서 은퇴해야 할 나이에도 한강 변에 압구정을 짓고, 말로는 그곳에서 여유로운 노년을 보낸다면서 실제로는 벼슬하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뇌물을 받으며 그곳을 벼슬 뚜쟁이 소굴로 삼았다. 결국 삭탈관직에 부관참시라는 혹독한 치욕을 당했으며, 개혁에 앞장선 사림(士林)들에게는 간신으로 낙인찍혀야 했다.
옛말에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다. 얼핏 보기에는 가도 될 것 같이 평평한 땅일지라도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 같지만 그게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 아니면 그렇게 살지 말라는 보다 인간적인 삶에 대한 가르침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잘 아는 성경 구절 하나가 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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