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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용수 이사장. |
평화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은 근원적으로 다른 배경과 사유를 가지고 있다. 서양에서는 평화에 대한 인식을 전쟁의 반대 개념으로 보는데 반해 동양에서는 우주의 순환이치를 염두에 두고 사유하는 넓고 깊은 의미의 평화사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평화에 대한 서양과 동양의 사고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세계사를 통해 볼 때 전쟁이 많이 일어났던 지역은 구라파이다. 어릴적 흔히 듣던 말 중 하나가 ‘구라파전쟁’이었다. 배가 고파 꾸르륵 소리가 나면 ‘뱃속에서 구라파전쟁이 났는가보다’라고 했었다.
전쟁을 많이 치렀던 유럽에서는 평화에 대한 개념을 전쟁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전쟁은 갈등의 한 형태이며 집단적 대립구도에서는 언제나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고에 의해 평화에 대한 개념이 싹텄기 때문에 그들의 평화사상은 동양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칸트의 ‘영구평화론’도 전쟁의 원인을 없애고자 하는 사고에서 나온 이상론이라고 볼 수 있다.
서양의 역사를 보면 침략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들은 싸움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잔혹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환경에서 살아온 그들의 정서 속에 우주의 이치나 자연의 순화 같은 사고가 깃든 평화의 개념이 자리 잡을 수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평화사상은 서구의 평화사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의 평화사상은 천(天)‧지(地)‧인(人) 조화에 바탕을 둔 크고 넓은 포용의 개념이다. 우리 민족사적 정통성의 이면에는 이렇게 넓고 큰 평화사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평화사상은 단군성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의 뿌리가 되는 ‘한’사상에 의해 형성되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가슴에는 평화의 실천사상인 ‘한’사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한’사상이 환인천제(桓仁天帝)께서 환웅천황(桓雄天皇)에게 당부하신 ‘홍익인간’ 정신으로서 단군성조(檀君聖祖)에게 전수되어 단군조선의 개국이념이 되었고, 그로부터 경천(敬天).숭조(崇祖).애인(愛人)의 실천으로 너와 내가 더불어 사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제세이화(濟世理化)’의 민족정신이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 연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런 뿌리 깊은 평화사상을 가진 우리 한민족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평화의식을 가진 민족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홍익인간’ 정신은 유교.불교.도교.기독교.이슬람교 등 세계 어떤 종교와 만나더라도 조화를 이뤄 품을 수 있는 사상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전 세계 모든 전쟁의 원인을 살펴보면 거의가 종교가 그 원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종교적 원인으로 일어난 전쟁이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이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이고 체첸과 러시아 간의 분쟁도 이슬람교와 러시아정교의 대립이며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분쟁도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이다. 또 동티모르에서 일어난 분쟁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이요 코소보 사태도 러시아정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종교는 어떠한가. 우리 민족은 어떤 종교든지 ‘홍익인간’ 정신으로 포용하고 있다. 즉 각 종교가 지니고 있는 각기 다른 교리와 의식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관용하는 화합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사상은 우리 한민족의 의식의 저변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으므로 어느 시기에 도달하게 되면 남한과 북한은 반드시 평화를 공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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