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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용수 이사장. |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한반도의 상황은 원효대사가 활약했던 신라시대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 남북한 간에는 민족통일의 구심점이 없이 물리적 수단을 통해 승패를 규정지으려는 북의 대남 혁명전략으로 인해 무력충돌의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
둘째로 우리 민족의 통일은 우리 내부의 사안임에도 강대국들의 패권논리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자주적·민주적·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이 되더라도 남과 북의 주민들을 통합할 수 있는 가치기준이 없다.
셋째로 남과 북은 서로 간에 이념적 갈등은 물론 통일관 등에서 현격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 넷째로는 세대간 의식 차이로 분단 세대는 이산가족의 고통과 분단으로 인한 양측 문화의 이질화를 안타까워하고 북의 자원과 남의 기술, 즉 북의 노동력과 남의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통한 우리 민족의 성장과 번영을 염두에 두는 등 통일 이후를 생각하고 있지만, 분단 이후 세대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
오늘날 남북한의 현실을 보면 북한은 ‘김일성주체사상’을 중심한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인민들은 자유도 없고 빵도 없이 일인독재 우상화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고 남한은 시장경제 논리에 따른 자본주의 경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 사이에 골이 깊게 패여 있다.
또한 남과 북은 상이한 이념체계로 인한 가치관의 차이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이질화돼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인적.물적 교류의 확대에 따라 어느 정도 동질성이 회복된 듯 보이지만 남북한 주민들의 의식과 사고방식의 차이는 통일이 되더라도 오랜 기간 갈등의 요인으로 남게 될 것 같다.
통일은 남과 북의 어느 한 쪽의 주장이나 이념에 의해서는 불가능하다. 통일이념은 남북의 모든 구성원이 흔쾌히 수용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더 중요한 것은 한국적인 사상이어야 하는데 바로 ‘화쟁(和諍)’을 근본으로 무애의 경지에서 냉철하게 통일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원효의 사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원효대사는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부처가 있을 때는 부처의 큰 가르침에 힘입어 서로 다툼이 없었는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여러 가지 쓸데없는 이론들이 나와서 서로 다투게 됐다. 자기만 옳다고 자기의 견해에 집착하기 때문에 다투지만 알고 보면 다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얼음과 물이 같은 원천인 것처럼 차별이 없으니 다툴 이유가 없다. 일부의 경론만을 아는 것, 낮은 소견을 가지고 있는 것, 널리 불교 경전을 배운다 해도 스스로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화쟁의 대상이 된다.
남을 이기겠다는 욕심으로 널리 배워 아는 사람에게는 욕심에 사로잡히면 올바른 지혜가 되지 못함을 알게 해서 욕심을 버리게 하고 소견이 낮은 사람에게는 높은 소견을 알려줘 낮은 소견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화쟁이다.”
이러한 원효의 가르침을 오늘날 남북 분단시대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화쟁’이 우리 민족을 통합할 수 있는 즉 남과 북의 대립뿐 아니라 남한 내의 좌우익의 대립과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핵심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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