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대출과 실물경기 위축으로 주택시장 불안 지속
자영업자 대출 급증 1033조, 이중 18%가 연체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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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영 칼럼니스트 |
한국은행은 최근 “고금리와 실물경기 위축에 따른 주택시장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 같은 ‘금융안정보고서’를 내놨다.
한국은행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가구는 116만7000가구다. 이는 국내 전세 가구 325만2000가구(2020기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중 ‘역전세 대란’우려 가구는 30여만 가구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쪼들리는 서민 살림살이에 시름이 더 깊어지게 된다.
한은은 116만7000가구에 들어 있는 전세 보증금 총액을 288조8000억원으로 분석했다. 집주인이 돌려줘야 하는 전세금과 새로운 세입자에게 받을 수 있는 전세금의 차이, 즉 집주인의 ‘역전세 부담금’은 24조2000억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116만7000가구 중 73.2%는 전세 보증금 반환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반면 19.3%는 빚을 내야 전세금 반환이 가능하고, 7.6%는 빚을 내더라도 자금이 부족할 것으로 판단했다. 약 9만 가구는 집주인이 빚을 내도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다 못 돌려 준다는 분석이다. .
집값 하락으로 인한 파급은 가계 재무구조도 급격하게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의 평균 순자산은 2021년 말 4억4000만원에서 올해 3월 말 3억9000만원으로 5000만원 감소했다. 대출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고위험 가구 비중은 2.7%에서 5.0%로 늘었다. 가계대출이 증가하면서 금융 취약성이 높아지는 문제가 발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분양 주택이 늘면서 건설사의 부실이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은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관련해 위험 사업장 정리 작업이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부실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영업자 대출 잔액 1033조…3년 사이 50.9% 증가
자영업자들의 부실채권은 가계대출 보다 더 심각하다. 자영업자 대출 잔액이 지난 3월 말 1033조7000억원까지 치솟았다. 1년 전보다 7.6% 증가했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 말 684조9000억원에 비해선 50.9% 증가했다. 특히 여러 은행에서 돈을 빌린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액이 104조원가량이고 연체위험률은 올해말 18.5%까지 높아질 것으로 한국은행은 예상했다.
자영업자 대출이 금융 불안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때 이뤄진 정부의 저금리 지원이 종료되면 기업대출 부실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은 자영업자 대출이 늘었을 뿐 아니라 부채의 질도 나빠졌다고 경고했다. 세 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취약 자영업자 비중이 2019년 말 9.9%에서 올 1분기 말 10.1%로 높아졌다. 대출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은행권 대출 비중이 같은 기간 32.1%에서 39.4%로 상승했다.
이미 부실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연체율이 3월 말 1.0%로 과거 장기 평균(2012∼2019년·1.05%)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한은은 “앞으로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되고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대출금리 부담이 계속되면 취약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연체 규모가 커질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기간(2020∼2021년) 기업에 적용된 가산금리는 정책 지원 덕분에 코로나19 이전 장기 평균(2000∼2019년)에 비해 평균 1.06%포인트 낮았다. 특히 중소기업은 가산금리 우대 혜택이 컸다. 문제는 저금리 지원이 종료되면 기업대출이 대거 부실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은은 실제 위험을 반영한 이자비용을 적용했을 때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자보상배율 1 미만)의 여신 비중이 26.7%에서 30.0%로 높아진다고 밝혔다.
특히 한은은 기업 신용 부문의 잠재 위험이 현실화한다고 가정하면 작년 말 기준으로 은행의 기업대출 부도율은 0.24%포인트 오르고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0.47%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따라서 현재의 기업대출 건전성 지표는 신용 리스크를 과소 반영할 수 있으며 은행은 잠재 신용손실 현실화 등에 대비해 대손충당금과 자본금 적립을 늘려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한은은 인터넷은행과 저축은행·상호금융도 ‘약한 고리’로 지적됐다. 인터넷전문은행은 4월 말 기준 총자산 규모가 92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9% 증가했지만 연체율이 0.85%까지 높아졌다.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리면서 신규 연체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비은행 금융회사는 부동산·건설업 대출 비중이 은행보다 10%포인트 이상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부동산 부실이 확대되면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한은의 ‘금융안정보고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대출 및 자영업자 ‘다중채무자’들의 연체비율이 증가함에 따른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경고인 것이다. 미국은행 순위 16위였던 ‘SVB 실리콘밸리 은행’이 44시간 만에 파산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실리콘밸리은행의 경영방식은 한국의 시중은행과는 다르다고 해도 미국의 대형은행이 삽시간에 무너질 줄이야. 금융위기 예측은 할 수 있어도 급격한 위기는 타개책 마련이 녹녹하지 않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는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금융안정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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