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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일본은 혼슈·시코쿠·규슈 세 개의 섬에 살던 왜족(倭族) 일본의 왜국(倭國) 혹은 왜(倭)가 전부다. 홋카이도, 오키나와, 대마도를 비롯해 왜족 일본이 강점한 영토들이 하루빨리 본래 자리로 돌아가고, 그 영토를 기반으로 생활하던 민족 역시 제자리를 찾아야 동북아는 물론 국제평화 질서가 바로 선다.
‘일본 바로보기’ 이번 회부터는 먼저 홋카이도, 오키나와, 대마도의 일본 강점 과정을 통해서 불합리함을 밝히고, 다음으로 그 영토들이 독립되거나 반환되지 못한 이유를 규명한다. 그러다 보면 그 당시 만주국과 731부대는 미국과 일본을 어떤 고리로 엮어주었으며, 연합 4개국은 무엇을 위해서 동북아 영토를 유린했는지가 자연히 밝혀진다.
지금이라도 그 모든 것을 바로 알아야, 더없이 비열한 왜족 일본을 바로 볼 수 있고, 국제관계의 신뢰라는 것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얼마나 덧없이 버려지는 것인지도 알게 된다. 막말로 믿을 놈 하나도 없는 곳이 국제사회로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힘없는 나라와 민족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묘한 관계를 잘 알고 대처해야 그나마 힘 있는 나라끼리의 나눠먹기식 횡포에 대항할 수 있고, 세계평화라는 단어에 명함 꼭지라도 내밀 수 있다.
일본과 겨울을 동시에 생각하면 당연히 홋카이도(北海島)가 떠오른다. 대지를 뒤덮은 눈에 스며든 낭만이 가득한 곳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낭만 이상으로 피맺힌 한(恨)의 슬프고 아픈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이 바로 홋카이도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낭만이 아니라 저린 가슴에 터지는 울분을 안고 홋카이도를 바라보게 된다.
홋카이도는 사할린과 쿠릴열도와 함께 아이누족이 지배하고 생활하던 곳이다. 아이누족의 ‘아이누’는 원주민 언어로 인간이라는 의미다. 사냥을 즐기고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자연과 함께 생활하던 순박한 민족이다.
왜족 일본은 그들이 자신들과는 언어와 풍습 등의 문화와 역사가 전혀 다른 이민족 오랑캐라는 의미로 에조(蝦夷; 하이)라 불렀고 그 땅을 에조치(蝦夷地)라고 부르면서도, 욕심 많은 개 남의 밥그릇 엿보듯이 그 영토를 욕심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교역의 전진기지라는 핑계로 1784년 에조치 최남단 오시마반도 남쪽에 일본의 카키자키 가문의 마츠마에번이 조그맣게 자리 잡는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 과정에 마츠마에번을 기지로 삼아 전쟁이라고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아이누족을 침략해 무참하게 살해하고 짓밟는다.
교역을 통해서 아이누족의 많은 남성이 어느 시기에 수렵.어로 생활을 위해 장시간 집을 비우는지를 잘 알던 일본은 그 시기에 맞춰 에조치를 습격했고, 병약하여 잔류하던 남자와 여자는 물론 젖먹이까지 보이는 대로 죽였다. 그리고 비보를 듣거나 귀향할 시기가 되어 귀향하는 남자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무차별하게 살해했다. 사냥과 어로 활동을 통해서 획득한 물건을 곡물과 생활용품으로 바꾸기 위해서 교역하는 일본을 믿던 아이누족은 미처 대처할 틈도 없이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은 아이누족을 몰살하면 더 좋다는 생각으로 씨를 말리려 했지만, 에조치 산속 깊은 곳에서 수렵과 자급자족으로 생계를 꾸리던 아이누족과 쿠릴열도와 사할린 등에 살고 있던 아이누족 덕분에 멸종은 면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동반자도 배신하고, 그 배신이 승기를 잡으면 최대한 악랄하게 파고들어 유린하는 왜족 본성 그대로, 상거래 동반자에서 군사적 적으로 돌변한 일본은 아이누족 생활 터전인 에조치를 처참하게 피로 물들이고 1869년 판적봉환 당시 에조치의 명칭을 홋카이도로 바꾸고 강제 병탄한다.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명치유신)은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한 정치 혁명이지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왕정복고일 뿐이다. 그때까지 왕은 단순한 제사장에 지나지 않고 막부정치를 통해서 실제로 지배하던 쇼군(將軍; 장군)이, 권력을 왕에게 반환하여 왕이 정치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메이지유신은 간단하게 설명하면 4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첫째는 왕정복고를 위해서 모든 권력을 왕에게 귀속시킨다는 1867년의 대정봉환(大政奉還)이다. 그다음은 왕이 실질적으로 권력을 소유했음을 의미하여, 1868년 연호를 메이지((明治; 명치)라 정하고 일왕 무쓰히토(睦仁)가 등극한다. 이것이 메이지유신이다.
그러나 권력만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중요함으로 1869년 모든 토지와 백성을 임금께 바친다는 판적봉환(版籍奉還)을 단행하여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871년 그동안 막부 정권 체제에서 이루어지던 행정 체제를 중앙집권 왕정 체제로 바꾸는 폐번치현(廃藩置県)이 이루어짐으로써 메이지 유신은 끝이 난다. 그 과정 중 아이누족의 홋카이도는 1869년 일본의 무차별한 침략을 견디지 못하고 강제 병탄 된 것이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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