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돈 쉽게 쓸수있는 ‘예타조사’ 대상 1000억으로 완화
가계부채 1867조, 국가채무 1000조 이자 1분에 1억 불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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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환 칼럼니스트. |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경제에 대한 경보음을 연달아 울리고 있는 것도 늘어나는 가계빚에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IMF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 성장 전망치를 네 차례나 연달아 낮춘 이유를 분석해보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가계부채와 무관하지 않다.
IMF가 지난 11일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4월(2.9%) 이후 4연속(2.1→2.0→1.7→1.5%) 하향 조정됐다.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성장률 전망치가 연이어 하락한 건 한국이 유일하다. 세계경기 둔화로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성장률 반등의 계기를 그만큼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IMF가 이번에 발간한 ‘세계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취약 국가로 지목한 4개국에 한국이 포함됐다. IMF는 스웨덴·벨기에·프랑스·한국의 경우 가계빚에서 출발한 위험이 경제 전체로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가계 부문 총부채상환비율(DSR)을 제시했다. DSR은 가계가 일정 기간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IMF가 국제결제은행(BIS) 방식을 토대로 산출한 한국 가계의 부채상환비율은 지난해 2분기 13.4%를 기록했다. IMF가 가계부채 건전성을 점검한 17개 주요국 가운데 호주(13.7%) 다음으로 높았다. 이 기간 한국 가계는 벌어들인 돈 가운데 13% 이상을 빚과 이자를 갚는 데 썼다는 의미다. 일본이나 미국·독일 등은 이 비율이 한국의 절반 수준인 6~7%대에 불과했다.
2007년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로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대부분의 선진국은 가계빚 줄이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역주행 노선으로 치닫고 있다.
IMF 집계에 따르면 한국 가계의 부채상환비율은 금융위기 때인 2007년 1분기 11%에서 지난해 2분기 13.4%로 2.4%포인트 올랐다. 주요 17개국 가운데 상승 폭 1위다. 스웨덴(1.6%포인트)·벨기에(1.1%포인트)·프랑스(1.1%포인트)가 그 뒤를 이었다. 같은 기간 호주(16.7→13.7%), 미국(11.5→7.5%), 영국(12.6→8.4%), 스페인(10.2→5.9%) 등이 강도 높은 가계부채 구조조정을 펼친 것과 반대다.
IMF는 보고서에서 “주요 17개국은 2000년대 중반보다 강화된 주택담보대출 기준을 적용하면서 부실 대출 위험을 줄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나라는 가계의 부채상환비율 역시 2007년 대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반면 벨기에·프랑스·한국·스웨덴 같은 국가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가계부채가 오히려 증가하면서 가계 부문의 취약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2007년 말 665조원이었던 가계빚(신용)은 지난해 말 1867조원으로 300%가까이 올랐다. 이 기간 주택담보대출도 344조원에서 1013조원으로 3배 가까이 불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경험을 갖고 있다. 나라가 풍전등화 위기에 처하자 우리 국민 모두가 우국충정의 열사가 됐다. 집안에 돈 되는 것은 모두 갖고 나와 나라살리기 운동본부에 기탁했다. 당시 ‘금모으기 운동’은 세계를 감동시켰다. 장롱속에 깊숙이 숨겨 놓았던 금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아들 손자 돌찬치에 선물했던 것까지 모두 나라 살리기에 보탰다.
엊그제 경제부처 수장인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수출이 잘안되고 기업경영이 어려워 지난 1월~2월의 세수결손이 16조원에 이른다며 걱정했다.
나라 경제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여야 정치권은 어떤가? 아무 문제가 없는 듯 흥청망청이다.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도로-철도 등 국가재정 수백억원이 투입되는 SOC(사회간접자본)사업과 R&D(연구개발)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여야합의로 의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예타’ 대상기준을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런 완화정책을 도입하면서 나라빚을 적정수준에서 관리하는 ‘재정준칙 기준’도입은 미뤄졌다.
당초(지난해)여야는 예타 완화 개정안에 잠정합의하면서 국가재정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재정준칙 도입과 연계해 처리하자고 합의했었다.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한도를 국내총생산(GDP)대비 3% 이내로 유지하고 국가채무비율이 GDP대비 60%를 넘으면 2% 이내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재정준칙 법제화 조건으로 공공기관에 사회적 기업의 물품구매를 의무화하는 조건을 요구하면서 일단 유보되고 예타 기준만 완화됐다. 여야가 합의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17일 기재위 전체회의를 거쳐 이달 내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결정된다.
애둘러서 말하면 예비타당성 조사없이 나라 돈을 쉽게 쓸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즉, 내년 총선 전에 지역구의 선심성 사업을 조기에 발주해 표심을 끌어모으려는 심보다.
나라 살림을 걱정한다면 이렇게 쉽게 처리할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채무는 1000조원을 돌파했다. 지금도 1분에 1억원씩 나라빚이 불어나고 있다. 더 이상의 포퓰리즘 정치는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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