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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한동안 장안을 뜨겁게 달구던 영화가 있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탤런트 이병헌이 1인 2역을 하면서 가짜 광해 임금을 등장시켜, 광해 임금의 선정을 마치 가짜라서, 아무것도 몰라서 베푼 정치인 양 표현한 영화다. 작가와 감독의 진짜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비록 가짜를 통해서나마 광해 임금의 진짜 모습을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서 좋았다.
흔히 광해군이라고 불리는 광해 임금은 인조반정에 의해서 왕좌에서 쫓겨나 결국 제주도로 귀양 가서 19년 동안 온갖 치욕 속에 살다가 67세의 나이로 죽었다. 인조반정의 기치는 살제폐모(殺弟廢母)의 패륜과 명나라에 대한 불충이었다.
살제는 임해군에 이어 영창대군까지 살해되면서 쓴 멍에다. 폐모는 1618년(광해 10)에 인목왕후를 폐비하여 서궁에 유폐한 사건을 말한다. 그리고 명나라에 대한 불충은 후금과 전쟁을 하던 명나라가 군사를 파병할 것을 요청하자,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군사 1만 명을 파병하며, ‘대의 명분상 어쩔 수 없이 출병하는 것이니 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는 밀지를 내렸고, 형세가 불리해지자 강홍립이 후금에 투항함으로써 군사들의 희생을 최소화 시킨 사건이다.
객관적으로 판단하자면, 살제폐모의 불륜은 광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서출인 군(君)의 신분으로 늦게 태어난 대군(大君)을 둔 채 왕이 되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광해를 왕에서 끌어내리고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음모가 끊기지 않았으니, 영창대군은 사사하고 그 어미인 인목왕후는 폐비로 만들어 싹을 자른 것이다.
또한 명나라에 불충한 것은 내 백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공연히 남의 나라 싸움에 내 백성의 피를 흘리기 싫다는 것이 진심으로 백성들을 사랑하는 왕의 자세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영화에서 도승지는 허균이다.
그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허균은 ‘홍길동전’을 저술한 작가이며, 자유분방한 관리로 유명하다. 원래 뛰어난 문장가로 탄핵도 많이 당했고, 사귀는 친구 역시 사람만 좋으면 그 신분은 가리지 않았다.
서자는 물론 기생과 천민도 허물없이 어울렸다. 그리고 수시로 불공을 드리러 절에 다니는 바람에 스님들과도 잘 어울렸다. 주변 관리들은 그런 허균을 수없이 탄핵했지만, 광해 임금이 허균을 감싸고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러던 중 허균이 역모를 한다는 상소가 끊이지 않았고, 해를 넘기며 상소가 올라오자 1618년 8월 10일 남대문에 ‘세상을 구하러 하남대장군이 온다’는 벽서가 나붙었다. 그리고 주모자가 허균이라고 하여 허균은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한다. 광해 임금과 허균의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이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를 않는 일이다.
필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의심을 품게되어 여러 가지 자료들을 수집한 결과, 광해 임금과 허균이 모종의 혁명을 계획하여 반상타파를 도모하다가 대신들이 그것을 눈치채자 허균이 역모를 가장해서 혼자서 희생된 것이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반복하자면 광해 임금과 허균은 당시 조선을 개혁하려고 했고, 기득권을 잃기 싫은 양반‧사대부들이 그런 움직임을 감지하자, 허균이 광해 임금을 보호하기 위해서 스스로 역모의 누명을 쓰려고 심복 현응민을 시켜서 벽서를 붙여 자신을 드러나게 했다는 내용으로, '혁명, 율도국'이라는 소설이다.
물론 그 소설 안에는 허균이 세운 율도국이 대마도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지금 이 칼럼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허균과 광해가 혁명을 도모했다는 것으로, 왕조실록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충분히 든다.
그런 광해 임금이 인조반정에 의해서 쫓겨났다. 솔직히 필자가 보기에는 백성을 너무나도 사랑한 죄 밖에 없는 광해 임금인데 쫓겨나고 만 것이다. 물론 살제폐모 같은 기치는 허울일 뿐이고, 반정이라는 것이 항상 그랬듯이, 당파싸움의 희생물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광해 임금이 백성들을 위해서 대동법을 시행하는 등 수없이 많은 선정을 베풀었고, 그때마다 대신들은 그 일이 백성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이 부정하게 먹을 것을 잃기 싫어서 반대를 일삼았다는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가짜 광해 임금이 처음 밥을 먹을 때는 상을 모두 비웠다. 광대로 놀이를 하다가 밥을 먹던 그대로다. 그러자 상선이 귀띔을 해준다. 왕이 밥과 반찬을 다 먹으면 나인들은 굶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광해는 일부러 음식을 남기고 상을 물린다.
LH공사 직원들의 사전정보 투기가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것도 그 정책을 발표한 국토부 장관이 LH공사 사장 시절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사형을 시켜도 부족할 만행에 대한 조사를 자체 조사로 한다고 하자 오히려 덮어주기 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난리다. 청와대는 자체 조사 결과 0명이라고 하고, 국회는 의원 300명 모두를 조사하자고 한다.
솔직히 제대로 조사만 된다면 백성들 입장에서야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본인들 토지거래만 확인하고 마는 식의 조사가 되어,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까 봐 못 믿겠다는 것이다. LH 직원이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렸듯이 차명으로 다 해 먹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갑갑할 일이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내용처럼 정치인‧국회의원들이 정보를 가져가고 시선 돌리려고 LH만 죽이기 하는거라면 그건 정말 질식할 일이다.
공부도 못하고, 힘‧정보‧돈‧빽 그 무엇도 없지만, 주어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백성들은, 밥상을 깨끗이 비우는 높은 분들에게 영화 속에서 상선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르면서도 하지 못한 한마디를 할 뿐이다.
“전하, 그만 드소서!”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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