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임차인 보호 기준액 아파트 경우 8천만원, 현실과 괴리
인상률 5% 제한 임대차보호법 무용지물…20~30%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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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영 칼럼니스트. |
가슴을 더 아프게 하는 일은 현재 ‘건축왕’이 125억 원대의전세사기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사기당한 전세금을 대부분 되돌려 받지 못하거나 일부만 변제받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들 일부는 재계약 때 전세금을 최대 32%까지 대폭 올려줘 피해가 커졌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소액임차인 전세금 변제 기준액이 아파트 경우 8000만원, 빌라 경우 650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수도권에서 소형아파트라 해도 1억원 이하는 없다.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임대갱신 때 5% 이내 범위에서만 임대료를 인상한다고 규정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젊은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택한 가장 큰 원인은 주택임대차 보호법이 서민보호차원에서 최우선변제 제도가 있지만 대부분 이런 규정을 잘 모르고 전세계약을 하고 있다. 사기를 당하고 나서야 자신의 무능에 대한 자괴감이 커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극단의 선택을 한 A씨 경우 2019년 9월 보증금 7천200만원을 주고 아파트 전세 계약을 맺은 뒤 2021년 9월 임대인의 요구로 재계약을 하면서 보증금을 9000만원으로 25% 올렸다.
B씨도 2019년 8월 6천800만원짜리 오피스텔에 입주했다가 2021년 8월 재계약 때는 임대인 요구에 따라 전세금을 9000만원으로 32% 올려준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재계약 때 과도한 인상을 허용한 바람에 이들은 거주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받을 수 있는 최우선변제금에서 대폭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전세보증금이 8000만원 이하였다면 최우선변제금으로 2천700만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2021년 당시 계약금이 9000만원으로 뛰어올라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B씨도 보증금 9000만원 중 3천400만원은 최우선변제금으로 일부 구제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5천600만원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C씨도 당시 전세금이 7000만원으로 소액임차인 전세금 기준액이 6천500만원보다 불과 500만원이 많았던 탓에 최우선변제금 보장을 받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거의 전 재산을 날리게 된 이들은 사망 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20~30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전세 사기가 활개를 치자 정부는 지난 2월과 3월 전세 사기 피해 지원 대책을 연이어 내놓은 바 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당장 오갈 데 없어진 피해자를 위해 시세의 30% 수준으로 6개월간 거주할 수 있는 긴급 주거를 제공하고, 대출 만기 연장과 저리의 전세대출 등 금융지원도 담았다. 지난해 9월에는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도입, 피해자의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제공해 왔으나 결과적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됐다.
이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보증금을 선 지원한 후 악성 임대인의 재산 추적 등을 통해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앞서 관련 피해자단체도 비슷한 요구를 했다. 피해자들의 딱한 사정은 안타깝지만 말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지금도 집주인이 전세금을 주지 않을 때 대신 주는 제도가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이다. 상품 약관상으론 1개월 이내에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엔 전세금을 돌려받기까지 평균 56일 걸렸고, 올해는 3개월 넘게 전세금 반환이 지연되고 있다. 전세보증금 반환 요구건수가 급증한데다 현행법상 자기자본의 60배까지만 보증이 가능하다. 이미 지난해 보증 사고가 1조1726억원에 달할 만큼 급증해 54배로 보증한도에 육박해 있다. 자칫 전세보증금 반환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보증 사고의 급증은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자연스레 깡통전세나 역전세난이 불거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가 감정평가사와 공모해 집값을 부풀리는 이른바 ‘업(up) 감정’ 수법을 동원한 전세 사기가 횡행한 게 사고를 키운 게 사실이다. 신축 빌라처럼 세입자가 정확한 시세를 알기 어려운 부동산 시장의 정보 비대칭이 피해자를 양산하는 구조다.
인천시 피해자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미추홀구에서만 전세 사기 피해가 3000가구에 이른다. 더 이상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촉구된다. 기존대책은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현실에 맞는 실질적인 구제책을 강구해 이 땅의 주인인 젊은이들이 단돈 2만원에 절규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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