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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후한서'에는 현토군의 3현인 상은대현・서개마현・고구려현 중 하나인 고구려현에 대해서 ‘무제는 조선을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현으로 만들어서 현토에 속하게 하였다.(武帝滅朝鮮 以高句驪爲縣 使屬玄菟)’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송나라 문신 서긍이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에 ‘한 무제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현으로 삼아 현토군에 소속시켰다(漢武帝滅朝鮮, 以高麗爲縣, 屬元菟郡).’라는 거의 동일한 기사가 있다.
고구려를 현으로 만들어서 현토에 속하게 했다는 것은, 고구려가 이미 존재했으니까 고구려를 현으로 삼아 현토군에 소속시켰다(以高句驪爲縣 使屬玄菟)라는 표현을 쓰지, 만일 고구려가 없는 상태에서 고구려 현을 새로 만들었다면, ‘고구려현을 만들어서 현토에 속하게 하였다(爲高句驪縣 使屬玄菟)’라고 써야 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한 무제가 고구려를 복속하여 현토군에 소속시켰다는 것의 진위는 나중에 규명할 필요가 있겠지만, 기원전 107년에 고구려는 이미 존재했다. 중국 역시 이 기사를 인식하여 무제가 고구려현을 설치할 때 고구려가 존재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고구려를 국가가 아니라 부족 이름으로 치부하여, ‘현토군의 고구려현은 고구려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붙여진 이름으로, 현토군은 고구려현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였고 한나라 정권이 백성을 호적에 두고 관리하는 편호제민(編戶齊民)으로 기원전 37년에 그들이 거주하는 중심지역에 민족정권을 수립하였지만, 한사군 관할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고구려라는 부족이 고구려현에 살며 현토군에 예속된 상태에서 고구려를 건국하고 한족 중국왕조와 신속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만일 중국의 주장대로 현토군에 설치된 고구려현에서 고구려 정부가 탄생하여 그것이 고구려라는 국가로 발전한 것이라면, 한사군 설치 이후 기원전 37년까지는 현토군의 고구려현과는 별도의 고구려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기록의 존재 여부만 판가름해도, ‘고구려는 현토군 안의 고구려현으로 출발해서 성장했다’라는 한족 중국의 주장에 대한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후한서'에, ‘소제(昭帝) 시원(始元) 5년(B.C.82)에는 임둔과 진번을 폐지하여 낙랑과 현토에 합병하였다. 현토는 다시 고구려로 옮겼다.’라는 기록을 볼 때, 고구려 전체를 고구려현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거짓이고, 고구려는 기원전 82년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삼국지' 「위서」에는, ‘한 무제 2년(B.C.109)에 조선을 정벌하여 위만(衛滿)의 손자 우거(右渠)를 죽이고, 그 지역을 분할하여 사군(四郡)을 설치하였는데, 옥저성(沃沮城)으로 현토군을 삼았다. 뒤에 이・맥(夷・貊)의 침략을 받아 군(郡)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니 지금의 현토 고부(故府)라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한사군이 위만조선의 영역에 설치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사인 동시에, 기원전 75년에 현토군이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이동한 것을 지칭하는 기사다. '후한서' 「동이열전」에도 ‘한 무제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옥저 땅으로 현토군을 삼았다.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겼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기원전 75년에 현토군이 이・맥의 침입을 받아 고구려 서북쪽으로 이동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아울러 고구려인을 이(夷) 혹은 맥(貊)이라고 부른 것은 '후한서' 「동이열전(東夷列傳)」「고구려」에 ‘고구려는 일명 맥(貊)이라 부른다’고 기술한 것은 물론 고구려를 지칭하는 서적이 동이(夷)열전이니 여기서 가리킨 이・맥은 고구려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현토군이 고구려의 침략을 받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고구려현이 현토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개 행정구역인데 본체인 현토군을 공격해서, 현토군이 그 안의 행정구역인 고구려현의 서북쪽으로 갔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으니, 현토군 밖에 독립된 고구려가 존재해서 현토군을 침략하고 현토군은 그 서북쪽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원전 75년에도 고구려현과는 별개의 고구려가 존재했으므로, 기원전 107년 현토군 설치 당시 고구려를 현으로 만들어 현토군에 속하게 했다는 것 자체가 왜곡된 것이다. 현토군에는 기원전 107년 이전부터 존재했던 독립국인 고구려라는 이름을 사용한 고구려현을 만들었을 뿐이고, 그 이후로도 고구려는 현토군과 무관하게 계속 존재한 사실을 한족 특유의 역사기록 수법인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 즉 한족의 치욕을 감추고 역사를 기술하는 수법으로 기록했을 뿐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적어도 기원전 107년 이전부터 존재했던 국가로, 고구려현에서 고구려가 번창했다는 동북공정의 기저는 의미를 잃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기원전 37년이라는 고구려 건국 연도 역시 재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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