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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경기 수원의 한 호텔에서 열린 지역주권 시대를 여는 지방분권형 개헌 정책 토론회에서 염태영 수원시장, 곽상욱 오산시장, 채인석 화성시장이 토론자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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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을 앞두고 지방분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총선바람’을 타고 지방정가를 비롯해 시민단체, 학계 등은 각 정당 및 총선출마자에게 지방분권을 공약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방분권 의제가 MB정권 심판론과 함께 이번 총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방분권을 요구하는 주장은 지방정가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부산시의회는 17일 지방재정제도 개혁, 사회복지 재정 우선 이양, 교육자치제 개선, 자치경찰제 도입 등 지방분권 10대 정책과제를 선정, 부산지역 총선 후보들에게 선거 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총선후보뿐 아니라 각 중앙당·시당 공약에도 지방분권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광역자치단체장들도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올해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이뤄내겠다는 방침이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의장인 박준영 전남지사와 부회장인 김범일 대구시장·이시종 충북지사, 감사인 송영길 인천시장 등은 12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을 잇따라 방문, 양당이 총선 공약으로 채택해야 할 지방분권 4대 정책을 제시했다. 4대 정책은 국회·정당의 지방분권 추진기구 설치, 지방재정 확충, 지방자치제도 개선,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 등이다.
시민단체도 한팔 거들었다. 균형발전지방분권전국연대는 15일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등 각 정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을 찾아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10대 의제를 총선공약에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지방분권 국가와 지역균형발전의 이념을 명기한 헌법개정, 부가가치세 20% 지방 환수 등 조세구조 개편,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연대는 31일 각 당과 총선후보자들의 공약을 분석, 지방분권 정책 반영여부에 대한 평가결과를 공개하는 등 정치권에 대한 압력 수위를 높여 나갈 계획이다.
전국연대는 “이명박 정부가 수도권정비계획법과 산업집적활성화법 개정에 이어 지방재정을 악화시키는 감세정책 등을 펼쳐 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정책을 퇴행시켰다”고 지적했다.
학계도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했다. 14일 수원시 이비스엠버서더호텔에서 열린 ‘지역주권 시대를 여는 지방분권형 개헌’ 정책토론회에 참가한 지방분권 전문가 18명은 정당공천제로 인한 지방자치 폐해, 국세와 지방세의 불균형 비율로 인한 지방재정 파탄 등 중앙집권적인 시스템 등이 지방분권 강화를 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방분권과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지방정부 대표가 입법부의 한 축을 구성하는 양원제 도입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성호 한국지방자치학회장(대전대 교수)은 “국민을 대표하는 하원과 지역을 대표하는 상원으로 규정하는 양원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경북 경산 우방어린이집 어린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대구대학교에서 야외수업을 하고 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의 구청장 대표단은 지난달 29일 여야 정책위의장을 방문해 영유아보육사업의 국고보조율 90%이상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방분권’ 해법은?
‘지자체’ 아닌 ‘지방정부’ 역할 모색할 때
정부 여전히 전근대적 중앙집권 미련
국가사무 지방이양·조세개편 모르쇠
단체장 공천권 주민에게 돌려줘야
지방분권은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지방단체가 아닌 지방정부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국가사무의 지방이양과 그에 따른 재정권한이 확대돼야 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다보니 인구와 자본, 인프라 등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화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형적 구조를 지닌다.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비효율과 폐해는 국가와 지방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대선과 총선이 치러지는 올해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중앙집권적인 제도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지방재정 건전성 확보 시급
전문가들은 지방분권을 위해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 확보를 꼽는다.
이를 위해 국세의 지방세 전환, 사회복지사업 국고보조율 상향 조정, 지방소비세 확대 등 조세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세 대비 지방세 비율은 8대2 수준이다. 대부분의 세금이 중앙정부에 귀속돼 지방정부는 재정 건전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방세 비중이 최소 30% 또는 40%까지 인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지방세 수준으로는 지방정부가 각종 사업을 펼치기에 턱없이 부족한 재원이라는 지적이다.
박홍식 강릉원주대학교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국세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너무 높은 편”이라며 “지방세 비율을 늘려야 지방정부가 독립적인 사업 권한을 가질 수 있어 사업 실패에 따른 책임도 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선진국의 국세 대비 지방세 비율을 살펴보면 독일은 49.5%, 일본은 46.3%, 미국은 48.1%에 달하는 등 지방세가 전체 조세의 절반가량을 차지해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보였다.
국세 대비 지방세 비율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지방 재정건전성 확보와 함께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발간하는 지방세전문지 ‘지방세포럼’에 따르면 지방재정에서 자체수입(지방세·세외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60.5%에서 2012년 57.7%로 줄어들었다. 반면 중앙정부로부터 받는 의존수입(지방교부세·국고보조금)의 비중은 2010년 36.2%에서 2012년 39.8%로 3% 이상 확대되고 있다.
지방정부의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비율이 증가하면서 도덕적 해이에 빠지거나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는 등의 폐해도 늘어나고 있다.
국고보조사업이 지나치게 늘어나는 점도 지방재정 악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국고보조사업의 정부 보조금은 2008년 22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30조1000억원으로 연평균 9.7% 증가했지만 지방비 대응액은 2008년 12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18조5000억원으로 연평균 14.9% 급증했다. 수입보다 지출이 커진 셈이다. 이 간극을 지방정부의 예산으로 메우다 보니 지자체 재정상황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일부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가 10%내외로 나타나는 등 지방정부의 재정자립은 요원하기만 하다
정부의 복지정책이 늘어나는 만큼 지방정부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지방재정연구원의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지출의 영향분석과 구조개선 방안’ 연구분석에 따르면 67개 사회복지사업비는 2004년 국비와 지방비 비율이 47%대 53%였으나 2009년 30%대 70%로 지방비 부담이 급증했다.
이로 인해 지방재정에서 사회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12%에서 지난해 20.2%로 6년새 8.2%포인트 증가했다. 2011년 기준 전국 자치구의 사회복지비 예산비중은 평균 45.8%에 달하며 일부 지자체는 60%를 초과하는 등 기초지자체가 복지 관련 매칭사업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의 구청장 대표단은 지난달 29일 여야 정책위의장을 방문해 영유아보육사업의 국고보조율 90% 이상 지원과 노인·장애인·정신요양시설의 분권교부세사업을 국고보조사업으로 전환해 줄 것을 건의했다.
부가가치세의 지방 이양을 확대해 지방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1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부가가치세의 지방자치단체 귀속율 5%를 20%까지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부가가치세는 지역에서 창출된 경제가치에 대한 세금이지만 정부 귀속율이 너무 높다는 주장이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부가가치세 지방 이양률은 40%에 이른다. 지자체가 지역민들이 피부에 와닿는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재정자치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5%인 지방소비세 전환율을 20%까지 높이게 되면 국가재정에 큰 문제없이 지자체 재정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시의 설명이다.
이밖에 지방세의 70%가량을 차지하는 취득세에 대한 인하정책 폐기도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 회복을 위해 추진 중인 취득세 인하 정책이 지방재정 악화를 초래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홍식 교수는 “수입은 한정돼 있는데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계속 커지고 있다”며 “지방재정의 개선을 위해서는 조세구조 개편이 가장 먼저 시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방정부대표 입법부 구성원 돼야
지방분권과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서는 지방정부대표가 입법부의 한 축을 구성하는 양원제 도입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4일 경기 수원 이비스엠버서더호텔에서 열린 지방분권형 개헌 정책토론회에서 “개헌을 통해 광역자치단체에 입법권을 배분, 중앙정부의 입법권을 배타적인 입법권과 지방정부와의 경합적 입법권으로 구분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며 “양원제를 도입해 지방자치단체의 대표로 구성되는 지방원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도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협의회는 “헌법상 지방자치제도를 보장하는 규정이 2개 조문에 불과해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주재정권을 법령으로 위임할 수밖에 없다”며 “19대 국회에서 지방대표가 국회 입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양원제 도입 등을 규정하는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자치 걸림돌 정당공천제 폐지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기초의원·단체장의 정당공천제 폐지도 시급하다. 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는 그동안 풀뿌리 지방자치가 뿌리내리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왔다.
기초단위 지방선거에 있어 공천권을 가진 국회의원과 지구당 위원장은 지방정가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다. 기초의원과 단체장은 자신의 공천권을 가진 이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부 기초의원들은 의정활동을 멀리한 채 지방행사에서 눈도장 찍는 데 열성이다. 공천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을 대신해 지역구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초의원이 주민들의 대리인이 아닌 공천권자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셈이다.
기초의원들이 지역의 현안보다 중앙당의 정치적 이슈에 따라 정책을 펼치는 것도 정당공천제의 폐해다. 정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재의 시스템상 기초의원들은 당의 정책을 따라야 한다.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이 같은 폐단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역민들을 위한 지방선거가 아닌 중앙정치를 위한 지방선거로 전락하는 것이다.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중앙정당의 대리전으로 변질돼 지방자치가 퇴색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여야 국회의원 모두 다음 선거를 위해 자신의 사람을 기초의원단체장으로 심으려고 한다”며 “공천 잡음이 끊이지 않는 만큼 기초지방선거에 있어서라도 정당공천제 폐지는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안일 기자 raanil@segye.com
- 기사입력 2012.03.23 (금) 15:48, 최종수정 2012.03.23 (금)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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