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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경기 수원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클린 무한도전, 부패 제로’ 확산 선포식에 참석한 경기교육청 직원들이 반부패 청렴서약을 하고 있다. |
부패공화국.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전국 곳곳에서 부패의 악취가 진동한다.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 정치권, 공기업 등 부패하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힘들다.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자평했던 이명박 정부에서 부패사슬이 더욱 촘촘히 엮여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지도자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도덕성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정권말 권력실세 부패 악취 진동
정권말 권력실세들에 대한 부정부패혐의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소문만 무성했던 사항들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비롯해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CNK 주가조작, SLS그룹 향응, 저축은행 사태,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등이 사실로 드러나거나 수사가 진행 중이다.
특히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6인회’ 중 절반이 비리혐의로 구속되거나 사실상 정계를 떠났다. 권력실세들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방통대군’과 ‘이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사건과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달 30일 구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은 2006년 7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복합유통단지 시행사인 파이시티 이정배(55) 전 대표로부터 인허가 청탁과 함께 총 13차례에 걸쳐 8억여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2월에는 측근 비리 의혹이 터지면서 방통위원장에서 물러났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2008년 7월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당선됐지만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를 돌려 역대 4번째로 중도 퇴진한 국회의장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 대통령의 친형으로 ‘상왕’이라 불린 이상득 의원은 박배수 보좌관이 이국철 SLS그룹 회장 등에게 불법 정치자금 10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되자 이번 4.11총선에 불출마했다. 프라임저축은행 사태, SLS그룹 로비 등 현 정권의 각종 비리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 전 부의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어 검찰 수사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다.
현 정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도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해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8일 구속 수감됐다. 이밖에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차관, 은진수 전 감사위원 등이 구속됐다.
단체장·공무원 토호세력과 공생
지방정부와 공기업 등도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중앙정부에 비해 감시·견제하는 ‘눈’이 적다보니 각종 비리가 속출하고 있다. 관행화된 지역 토호세력과 단체장 및 지방공무원의 공생관계가 비리를 양산한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교육비리, 권력비리와 함께 토착비리를 3대 비리로 규정하고 검찰 등 사정기관에 이를 뿌리 뽑으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MB정부 들어 지방공무원의 비리는 오히려 늘어났다. 지방공무원의 공직비리는 2006년 216명에
서 2010년 1226명으로 5년간 4배 이상 급증했다.
경기 용인시는 용인경전철 비리 등으로 전·현직 시장 3명이 검찰의 수사를 받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경기 수원지검은 감사원이 수사 의뢰한 ‘용인 수지레스피아 주민편익시설’ 수의계약 비리 사건을 특수부로 배당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사건은 서정석 전 용인시장이 당시 업무를 총괄 지시한 최종 결정권자여서 공무원들의 단독 범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수사를 요청한 것이다.
앞서 김학규 현 시장은 2010년 6.2지방선거 출마를 앞두고 업체 관계자 등에게 억대의 선거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김 시장은 체납세금 5000만원을 지인에게 대신 납부하도록 하고 시장 당선 뒤 시 산하기관의 임원으로 채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상문 전 시장도 용인경전철 사업의 편의를 봐주고 미화 1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광주시도 총인처리시설 입찰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실마리가 불법 녹취록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재차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광주지검 특수부는 지난달 30일 총인처리시설 입찰비리 수사와 관련해 업체와 공무원의 대화 내용을 불법 녹취하도록 지시한 최경주 전 통합민주당 광주시당 위원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 전 위원장은 강운태 광주시장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장을 지내 총인비리가 권력형 측근 비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총인비리와 관련해 대림산업, 현대건설 등 참여업체들의 담합으로 70억원이 낭비된 사실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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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태 시장(가운데)을 비롯한 광주시청 주요 간부들이 지난달 19일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인시설 입찰비리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지자체·공기업 건설비리 무더기 적발
이뿐 아니다. 지자체가 각종 공사 계약과정에서 뇌물·향응을 받고 특혜를 제공하는 등의 비리 사례가 무더기로 감사원에 적발됐다.
감사원은 지난해 3월 말부터 약 1달간 전국 광역 시도와 시·군·구 기초단체를 대상으로 ‘지방 건설공사 계약제도 운용실태’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결과 무려 49건의 건설 비리를 적발했다. 지역별로는 전남 신안군과 경기 성남시, 부산시, 인천시 등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비리 사례가 많이 발생했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남 신안군청 직원 A씨는 공사업체 임원들에게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 2개 업체로부터 총 600만원을 뜯어내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감사원은 A씨를 수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신안군수를 상대로 A씨의 파면과 과다하게 지급된 공사비 회수를 요구했다.
성남시 분당구청의 B팀장과 C직원은 분당구 지하차도 유지관리 업무를 맡은 용역업체가 허위로 신청한 용역비 1억9500만원을 알고도 지급했다. 이들은 그 대가로 업체로부터 3차례에 걸쳐 단란주점에서 향응을 받았다.
부산교통공사는 부산도시철도 4호선 경전철 구간 공사 과정에서 13개 역사의 시설 규모가 부풀려 설계됐는데도 이를 그대로 승인해 137억2000만원의 예산을 낭비했다.
청렴도 측정제도 세계 최고 ‘아이러니’
부정부패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한국의 청렴도 측정제도는 올해 유엔 공공행정상 대상에 선정됐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청렴도 측정제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잣대만 높을 뿐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9일 부패 현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청렴도 측정’ 제도가 유엔 공공행정 대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지난해 국민신문고의 우수상 수상에 이어 2년 연속 유엔공공행정상을 수상하게 됐다.
청렴도 측정제도는 민원인과 공직자 등 22만명을 대상으로 부패 관련 설문조사를 벌여 기관별 청렴도 점수와 등급의 산출 근거로 활용된다. 산출된 점수와 등급은 매년 12월 공개된다.
한국은 객관적인 지표로도 부정부패에서 자유로운 반부패 ‘청정지역’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은 183개 국가 중 43위로 전년보다 4계단 떨어졌다. 전체 국가로 살펴보면 중상위권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제한하면 순위는 현저히 떨어진다. 한국의 CPI 순위는 34개 OECD 국가 중 27위로 최하위다.
측정제도와 현실과의 간극은 무엇일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공직자와 사회구성원들이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처벌이 약해 제대로 된 경고를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치인 등 사회고위층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국민정서에 위반되는 경우가 많다.
공직사회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 비리, 성매매, 음주운전 등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실시해 공직사회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 투명한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행정 곳곳에 시민협력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공적인 업무에서의 부정부패 단절이 우선돼야 한다.
한 전문가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이 선결돼야 한다”며 “청렴서약 등 요식적인 행사를 지양하고 실질적인 대책마련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라안일 기자 raanil@segye.com
- 기사입력 2012.05.18 (금) 10:51, 최종수정 2012.05.18 (금)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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