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자연 섭리의 경이다. 시골의 봄은 개울가에서부터 온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 위로 매섭게 휘몰아치던 칼바람이 한풀 꺾일 때쯤이면 어느새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졸졸졸…. 두꺼운 얼음장 밑에서 들려오는 시냇물 소리.
그 시골의 봄이 도회지 전통시장으로 옮겨오면 우리네 식탁은 풍요롭다. 냉이국, 쑥국에 달래무침 등. 김장김치에 물린 우리네 입맛을 한결 돋워주곤 한다. 이젠 그 봄 내음을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서 먼저 맡게 됐다. 할머니, 어머니의 진한 분 냄새만큼이나 정감 있는 봄의 향기가 자꾸만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동네 가게와 전통시장의 퇴조! 일부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기업 확장 행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동네 어귀에서 평생 빵 굽는 장인으로 일했던 ‘친근한 아저씨 파티쉐‘가 어느 날 유명 브랜드 업체에 밀려 문 닫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했잖은가.
봄은 오는데 자영업자와 서민들 삶은 고단
지난 7년 새 전국에서 문을 닫은 전통시장이 178개나 된다고 한다. 대기업이 주인인 대형마트와 SSM의 무차별적인 시장 잠식으로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련 조사에 의하면 2003년에 1695곳이던 전통시장이 2011년에는 1517곳으로 줄었다. 반면 대형마트는 265개에서 450여개, SSM은 234개에서 928개로 급증했다. 이런 추세 속에 이미 4년 전에 대형마트매출이 전통시장을 앞질렀다고 한다. 영세 슈퍼마켓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그 뿐만 아니라 대기업 간 무한경쟁으로 편의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동네 골목에서 구멍가게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됐다. 이제 대기업이 지역 상권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골목상권에 찬바람이 불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전북 전주시가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와 SSM 등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 휴업일을 지정하는 등의 영업규제에 나섰겠는가. 전주시의회를 통과한 '대규모 점포 등의 등록 및 조정 조례 개정안'은 대형마트와 SSM 등 대규모ㆍ준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을 오전 8시부터 밤 12시로 제한하고, 매달 둘째 넷째 일요일은 문을 열지 못하게 했다. 다만 전주에 본점을 둔 대규모 점포 등은 의무 휴업일 적용 대상에서 뺐다. 개정 조례는 이르면 3월 초 공포된다. 전주시의 조례 개정은 지난달 17일 시행된 개정 유통산업발전법에 근거하고 있다. 물론 전주시의 조례가 법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가장 강력한 규제를 적용했기에, 대형 유통점과 입주 상인들의 반발 또한 그만큼 거세질 전망이다. 이들의 ‘역차별‘ 주장을 가볍게 볼 순 없을 터이다.
대기업, 상생정신으로 SSM 등 자제해야
하지만 상당수 대기업의 게걸스러운 모습은 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문어발, 아니 지네발식으로 마구 계열사를 늘리는 구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든 지 오래다. 공기업을 제외한 상위 30대 재벌그룹의 계열사는 지난 2년 사이에 975개에서 1150개로 불어났다. 이미 덩치 큰 재벌들이 몸집을 더 불리는 속도에 현기증을 느낄 지경이다. 중소기업을 통째로 사들이거나,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장악하는 인수ㆍ합병(M&A)이 많다. 문제는 주력 기업 경쟁력 강화나 글로벌 미래비전 사업 개척 등 재벌기업이 내세우는 명분과는 동떨어진 행태로 경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경쟁적으로 재벌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대적인 재벌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야당은 더하다. 재벌 개혁과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대기업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다. 국가 경제 기반을 튼튼히 한다는 철학이 뒷받침된 것이라면 진정성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용두사미, 흐지부지할 것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 상생을 위한 대기업의 자발적 상도의가 먼저 요청된다.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봄이 오는데, 중소자영업자와 서민들은 봄 같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몸 마음에 훈풍 부는 봄을 고대한다.
- 기사입력 2012.02.20 (월) 13:17, 최종수정 2012.02.20 (월)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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