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흥 칼럼] 우리가 꿈꾸는 정치의 정의는 무엇인가?

마나미 기자

| 2024-03-18 12:23:06

▲칼럼니스트 이 강 흥 (시인. 수필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보면 한 나라의 정치적 색깔도 그 나라만의 특성으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나라마다 차별화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시대가 변화 속에서 수많은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데도 아직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인권을 무시하고 강제적으로 통제되는 의식구조로 통제를 하며 살아가는 나라가 과연 좋은 나라인가?


물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요즘 같이 첨단 과학 문명이 발달하여 세상 어디에서도 서로 공존하며 살아야 하는 필요가치가 있는데도 무시한 채 전쟁을 꿈꾸며 사는 나라가 과연 제정신인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고 자국민들은 전쟁터로 내보내고 죽음 앞에서도 자신은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 국민들을 선동하며 강제적으로 억압의 틀을 제시한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그 나라의 정치적 성향으로 지켜 보고만 있다. 이러다 보니까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나라들은 삶의 행복보다는 항상 불안 속에서 생명을 던지고 살아야 한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최고 권력자에게 아부하며 주변을 알리면서 자신은 암시적 존재의 가치로 살아간다. 그걸 이용해서 서로 감시하고 사는 나라가 과연 제대로 된 나라인가?

어느 나라이건 그 나라가 잘되려면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그런데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나라는 과연 그런가? 각 나라마다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잘살고 행복하려면 어느 나라이건 국민이 편하게 인권을 보장받고 살아야 한다. 대부분 헐벗고 못사는 나라들은 그 나라의 정치가 대부분 공산화 속에서 통치자와 몇몇 권력자들 빼고는 배고프고 어렵게 사는 나라이다.

정치가 전하는 바른 이야기는 어느 나라이건 국민과 함께 잘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나라들은 선진국으로 진입하여 시대에 맞게 삶의 보람을 느끼고 사는 나라들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공산화 사회에서 정치적 이념으로 사는 나라들은 아직도 배고프고 고달픈 삶이다. 한 나라는 힘든 순간을 버티는 버팀목이다. 그런데 버팀목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누굴 믿겠는가?

정치적 성향을 바꾸어 여러 선진 민주국가 우방국들과 서로 외교와 경제교류로서 국민들의 삶이 달라진 나라들도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잘살았던 나라들도 그 나라의 정치 지도자의 모순된 정치성향으로 외교적 문제 부터서 경제교류까지 문호가 갈수록 닫혀 자국민들만 힘들게 되어 살아가는 나라도 많다.

이제 국제 정치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듯이 나라가 힘들고 망하면 누가 정치지도자나 권력자를 믿고 따르겠는가? 내란으로 나라는 시끄럽고 국민들은 배고픈 세상에 앉게 된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정치는 정의롭고 바르게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서로 불만이 사라지고 협치속에서 서로 교류가 이루어지는 현실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정치지도자라면 자신의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아는 정치인이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과거의 정치에 안주하여 전쟁을 불사는 사고방식은 현명하고 정의로운 정치가 아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통치의 정치는 어느나라건 망하게 되어 있다.

현명한 정치지도자라면 정의롭게 세상을 보고 배우면서 다른 나라들과도 손을 잡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을 해야지 자신의 어리석은 잘못을 못 느끼고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으로 통치를 하려는 발상은 현대 정치에 걸맞지 않는다. 다시 한번 생각하라. 이 세상 올바른 정치 지도자들은 자국을 위해서 정의롭고 바르게 외교와 더불어 살아가려고 한다면 그 나라의 경제는 좋아지며 살기 좋은 나라가 될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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