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간도의 날 새겨보는 간도(間島)와 만주(滿洲)-간도(間島) 소야곡(小夜曲)(Ⅰ)

마나미 기자

| 2026-08-25 16:28:22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

9월 4일은 제21회 ‘간도의 날’이다. 간도가 우리 한민족의 영토임을 기억하고 선언하는 의미로 간도 수복을 염원하는 학회와 민간단체가 뜻을 모아 제정한 날로 매년 이날을 기념하고 있지만, 마치 간도(間島)라는 단어조차 금기시하고 있는 한족 중국처럼 언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간도(間島)라는 단어 자체가 금시초문으로,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고, 섬도(島) 자를 쓰니 어디에 있는 섬인가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간도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의 잘못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미·영·소·중 연합 4개국이 제2의 침략군으로 변하면서 동북아 영토를 유린하는 과정에서, 우리 한민족의 영토인 만주를 한족 중국에 귀속시키는 바람에 잃어버리게 되었음에도 항거하여 찾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간도가 속해있는 만주를 포기하고 우리 한민족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정의한 헌법을 제정한 것은 물론, 역사와 영토에 대한 교육까지 총체적으로 잘못되었음에도, 식민사관에 젖어 고칠 줄 모르는 까닭이 그 원인일 뿐이다.

[그림 1]

간도는 [그림 1]에 표기된 심요지역, 서간도, 북간도, 동간도, 연해주를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다.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거나 간도를 설명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다만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만주를 대략 북부・중부・남부로 나눌 때, 남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일각에서는 연해주를 만주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필자가 누차 여러 가지 저술을 통해서 밝혔고 또 앞으로도 기술할 여러 가지 근거를 볼 때, 연해주는 확실하게 만주에서도 간도에 속한다. 그렇다면 [그림1]의 지도는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제작되고, 섬도 아닌데 섬도(島) 자를 쓰는 지명이 형성된 과정은 무엇이며, 간도의 면적은 어느 정도이고, 간도를 품은 만주를 지금은 한족 중국이 지배하고 있지만 반드시 수복해야 할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근거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림 2]

[그림 2]는 [그림 1]을 제작한 근거 중에서도 중요한 하나로, 1920년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 조선교구라는 하나의 교구로 관리하던 대한제국의 가톨릭 신자 수가 불어나면서, 원산교구・경성교구・대구교구 등 세 교구로 나누어 관리하려고 그 영역을 표기한 지도다. 여기에서 간도의 영역과 직결되는 것은 원산교구다. [그림 3]에 표기된 바와 같이 원산교구는 두만강을 넘어 지금의 흑룡강성에 이르는 만주로 뻗어있는 북간도와 동간도가 된다.

그 당시 원산교구로 책정된 땅들이 모두 대한제국 영토가 아니었다면, 가톨릭의 관례에 따라서 로마교

[그림 3]

황청이 하나의 교구로 묶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가톨릭에서 교구를 설정할 때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지역이 아니고는, 서로 다른 나라를 묶어서 하나의 교구로 정하지 않는 것이 상례다. 따라서 이미 조선교구로 책정되어 있던 대한제국의 교세가 확장되어 대한제국 내에서 세 개의 교구로 나눈 것이므로, 원산교구에 속한 땅들은 모두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세계 평화를 가장 큰 목적으로 삼는 가톨릭 교황청이 굳이 영토분쟁을 일으킬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니, 그 당시 북간도와 동간도가 확실한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는 사실이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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