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중앙대 인근에서 마주한 풍경은 이 시대의 슬픔을 응축한 한 장면이었다. 트럭 위로 이삿짐을 올리던 한 청년은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해, 본가로 내려간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말을 들으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 젖은 눈망울은 한 개인의 좌절이 아니었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일궈온 부모 세대의 희망이 통째로 짐짝처럼 실려 나가는 순간이었고, 노력하면 나아질 것이라 믿어온 우리 사회의 선순환 구조가 무너졌음을 알리는 침묵의 선언이었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흔히 단군 이래 최대 스펙 세대라 불린다. 기성세대보다 더 오래 공부했고, 더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더 많은 것을 스스로에게 요구받아 왔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노력의 결실이 아니라, 개인의 분투로는 넘을 수 없는 구조적 장벽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가로놓인 임금 격차, 서울에 집중된 기회의 병목, 감당 불가능한 주거 비용은 청년의 미래를 시작도 하기 전에 소진시킨다.
지방에서 올라와 고시원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버텨온 세월의 끝이 다시 낙향이라면, 그 청년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짐을 싸던 그가 끝내 원망의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다문 침묵은, 우리 사회의 공정이 이미 작동을 멈췄음을 알리는 가장 비통한 신호다. 결혼과 출산을 지우는 선택은 자유의 결과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강요된 포기일 뿐이다.
정부는 이 현실 앞에서 더 이상 변명해서는 안 된다. 수십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몇만 원의 수당을 나눠 주는 식의 미봉책으로는 청년의 삶을 붙잡을 수 없다. 문제는 사다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다리를 딛고 서야 할 바닥이 지나치게 기울어 있다는 데 있다. 이제는 사다리를 늘리는 정책을 넘어, 직업 간·지역 간 격차라는 구조 자체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 출발점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다. 직무급제를 중심으로 한 임금 체계 개편을 통해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실질적으로 줄이지 않는 한, 청년들은 계속해서 좁은 서울의 문 앞에 몰릴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에 가도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최소한의 신뢰가 회복될 때, 비로소 청년의 선택지는 넓어진다.
아울러 서울이 아니어도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지역을 만들어야 한다. 과감한 주택 공급과 일자리, 교육·의료 인프라가 결합된 강소도시 육성 없이는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없다. 지방으로의 이동이 밀려나는 퇴장이 아니라, 삶의 질을 향한 전략적 선택이 되도록 국가의 설계를 다시 그려야 한다.
이 문제는 결국 세대 간 미래 협약의 문제다. 청년의 퇴장은 곧 국가의 퇴장이다. 청년이 사회 참여를 포기하고 방 안으로, 혹은 고향으로 숨어버릴 때 연금 체계도, 성장 동력도 함께 무너진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순망치한(唇亡齒寒)의 이치처럼, 청년의 절망은 기성세대의 노후 불안으로 되돌아오는 공동의 운명이다.
이제 기성세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정년 연장과 청년 채용을 맞교환하는 일자리 나누기, 부모 세대의 자산이 청년의 주거 안정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세제 개편 등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대타협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짐을 싸던 그 청년의 뒷모습은 곧 우리의 내일이다. 자식을 다시 품에 안아야 하는 지방 부모들의 심정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청년이 고개를 숙인 채 떠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이제 정부와 위정자, 그리고 기성세대가 답할 차례다. 사과의 언어가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행동으로 응답해야 한다. 흑석동을 떠나던 그 트럭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한국에, 다음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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