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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환 칼럼니스트. |
29일 밤 TV뉴스 속보에서 실시간 전해지는 압사참사에 비통함마저 잊은 채 이게 정말 실제상황인가 귀를 의심하며 끓어오르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좁은 골목 안은 주체할 수 없는 많은 인파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널브러진 젊은이들 앞으로 소방관이 달려가 심장이 정지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에 매달리고 주변주민들도 힘을 보태며 한사람이라도 더 살려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생생하게 생중계됐다.
용산소방서장의 첫 발표에서 압사사망자가 50명. 시간이 흐를수록 사망자 수가 늘어났다. 끝내 사망자수가 150명 이상으로 늘어나자 ‘대체 핼러윈이 뭐 길래’라는 욕지기마저 생겼다. 건물이 무너진 것도, 불이 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대형 압사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 어떤 공포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공포의 전율이 밀려왔다.
◆세계10대 경제대국의 민낯 드러낸 부끄러운 참사
세계 10대 경제 대국, 지구촌을 열광시킨 ‘K팝의 위력’의 그 밑바닥이 얼마나 부실하고 불안한지를 새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급성장 뒤에 깔린 ‘위험수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1970년의 ‘와우아파트 붕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14년 ‘세월호 침몰’ 등의 비극이 있었지만 우리는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사후약방문의 수습대책을 세웠지만 여전한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그 악령이 충격적으로 확대생산 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10월29일, 이날을 우리는 치욕의 날로 기록해야 할 것이다. 이번 이태원 압사참사는 같은 인재사고임에도 오직 사람에 의한 어처구니없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비극원인 겸허하게 받아들여 반면교사로 삼아야
이번 비극의 원인을 분석하면 다각적 충격으로 나타난다.
첫째, 핼러윈 전날인 주말, 그것도 코로나19 압박에서 벗어나 3년만에 열린 행사로 그간 억눌렸던 청춘이 폭발적으로 한곳으로 쏠렸다는 점과 행정당국이 10만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도 안전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책임이 막중하다.
둘째, 불안과 혼돈의 사회를 물러준 기성세대인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 청춘들에게 건전한 놀이문화를 남겨주지 못하고 변질되고 왜곡된 문화를 물러준 직무유기 행위이다. 한해의 수확을 축하하고 이웃과 정을 나누는 핼러윈이 이 땅에선 나이트클럽 등에서 먹고 마시는 파티로 변질돼 버렸다.
셋째, 핼러윈축제는 행사주최가 없는데다 10만 여명의 인파가 좁은 골목으로 몰릴 것을 예측하지 못한 점도 뼈아픈 교훈이다.
◆외신들 “이웃과 음식 핼러윈, 한국선 클럽 가는 날”로 변질
각국 외신이 29일 밤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를 집중 조명하며, 한국의 핼러윈 문화가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 시각)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벌어진 참사를 자세히 전한 뒤 “한국에서 핼러윈은 아이들이 사탕을 얻으러가는 날이 아니다”라며 “최근 몇 년 간 20대를 중심으로 코스튬을 차려입고 클럽에 가는 행사로 정착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태원 지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한미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세계 각국 요리를 선보이는 바, 클럽, 레스토랑이 즐비한 장소”라며 “사고 전 서울 중심부에 있는 이곳에 약 10만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고 했다.
또 “영업시간 제한과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코로나 관련 규제가 해제된 이후 첫 핼러윈이라는 점 때문에 참여율이 더 높았다”며 “한국의 핼러윈 악몽은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로 전 세계에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축제로 잘 알려진 핼러윈은 고대 켈트족이 새해(11월 1일)에 치르는 사윈(Samhain) 축제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켈트족은 이날 사후 세계 경계가 흐릿해지며 악마나 망령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사자의 혼을 달래고자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내놨다. 망령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분장도 했다.
이후 8세기 유럽에서 카톨릭교회가 11월 1일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정하자 축제는 전날인 10월 31일이 됐다. 핼러윈이라는 명칭은 ‘신성한(hallow) 전날 밤(eve)’이라는 의미다. 유령이나 괴물로 분장한 아이들이 이웃집 초인종을 누르고 다니며 간식을 얻는 오늘날의 모습은, 유럽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며 원주민 문화와 융합된 후 정착됐다.
앞서 사고는 이날 밤 이태원 해밀톤호텔 인근 골목에 대규모 인파가 몰려들며 일어났다. 30일 오후 10시30분 기준 확인된 사망자는 154명으로 오전에 발표한 수에서 2명 더 늘었다. 부상자는 중상 24명, 경상 79명 등 총 103명이다.
◆이웃 일본-홍콩은 핼러윈 행사 안전대책 마련
우리나라는 지난 2006년부터 공연·행사장 안전매뉴얼 등을 만들어 체계적인 안전관리와 예방에 나서고 있지만, 이런 안전규정도 주최측이 명확하지 않으면 이번 이태원 핼러윈 사건처럼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적용되지 않는다. 주최측이 없기 때문에 집회행사 신고가 없다. 따라서 지자체나 경찰, 소방당국이 행사규모와 집회참여 예상인원을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안전대책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일본과 홍콩 등 이웃나라의 경우 우리와 달리 이미 핼러윈 기간 사고 예방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규정이긴 하지만 운영의 묘를 잘 살려나가고 있는 편이다.
일본 도쿄의 번화가인 시부야구는 핼러윈 기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28~31일 매일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후 5시까지 노상 음주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2019년 제정한 조례에 근거한다. 시부야역 주변에선 매년 핼러윈 시기에 많은 젊은이 등이 모여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만큼, 이를 예방하기 위해 조례를 만든 것이다. 시부야구는 기자회견과 거리 캠페인을 통해 규칙을 지켜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홍콩도 핼러윈 기간 특별 안전대책에 나서고 있다. 홍콩 경찰은 지난 28일부터 오는 1일까지 중심가인 란콰이퐁 지역에서 군중 안전 관리 조치와 특별 교통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경찰은 상황에 따라 경고 없이 불법 주차된 차량을 견인할 수 있고, 일부 도로를 폐쇄하거나 필요한 경우 군중 통제를 시행할 수 있다. 운전자나 여가 목적으로 란콰이퐁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현장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란콰이퐁은 홍콩의 번화가로, 1993년 새해 전야제를 맞아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21명이 사망하고 63명이 다쳤다. 당시 식당과 나이트클럽등 유흥가가 밀집한 약 2백여m의 좁은 골목에 한꺼번에 많은 시민이 몰리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수습과 대책, 윤석열 정부 능력 시험대 올라
기성세대는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 시스템을 넘겨주지 못한 참회록을 써야한다. 이번 초대형 참사가 윤석열 정부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그 수습과 대책마련에서 국민의 상처를 달래주는 일에 총력 매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반된 민심을 끌어안을 수 있고 능력도 재평가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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