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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동이는 동녘 동(東)자와 오랑캐 이(夷)자의 조합이다. 그러나 이(夷)자를 분석해 보면 큰 대(大)자에 활 궁(弓)자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큰 활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활은 고대에서는 최고의 병기였다. 칼로 맞서 싸우는 것은 나도 상대의 칼에 당할 수 있지만, 활은 원거리에서 적을 조준해서 넘어뜨릴 수 있는 병기다. 창보다도 훨씬 먼 거리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로 나를 보호하며 적을 무너뜨릴 수 있다. 따라서 활을 잘 쏜다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한족을 중심으로 우리 한민족을 동이라 부른 것은 동쪽의 활을 잘 쏘는 민족으로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뜻이다.
동이에 조합된 한자 이(夷)의 뜻을 오랑캐라고 했지만, 그것은 내심 두려움의 대상인 우리 한민족을 폄하해서 나타내기 위한 한족 특유의 춘추필법적인 표현의 방법일 뿐이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우리 한민족을 지칭하는 또 다른 표기로 삼한(三韓)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맥(貉)은 동북방에 있으며 삼한(三韓)의 무리’라고 벌레 치(豸) 변의 오소리를 가리키는 맥(貉)자를 사용한 것이다.
중국의 동북방에 있는 삼한의 무리라는 것은 세 개의 조선이 연합하여 이룩한 강대국 고조선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韓)은 고대 우리 한민족의 말 ‘하나’의 준말로써 ‘환하다’의 ‘환’과 같이 ‘밝음, 광명’을 뜻하는 것이다. 한족 중국으로서는 활 잘 쏘는 강한 대국이자 문화가 발달해서 광명의 나라로 보이는 우리 한민족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그 문화의 우월성을 넘어설 수 없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기에 애써 폄하시키기에 바빴던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일본이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1세기 초에 편찬된 '사기'에는 없고, 기원후 1세기 후반에 편찬된 '한서'에 비로소 나온다. 일본열도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인 '한서'를 비롯한 옛날 책들은 당시에 중국과 왕래하던 일본열도를 ‘왜’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일본열도 주민 자신들도 ‘왜’로 자처했다. 일본을 지칭하는 왜(倭)는 왜나라 왜, 혹은 추할 왜다. 난장이 왜(矮)에 사람인(人) 변을 붙여 작고 왜소한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볼품없이 표현한 것이다. 한족 중국이 우리 한민족을 지칭한 삼한이나 동이와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삼국사기' 권6 신라본기 문무왕 10년조에 의하면 ‘왜’가 국가 체계를 확립하고 ‘일본’이라고 나라 이름을 바꾼 것은 670년이다. '산해경 광주'에 기록된 우리 한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 건국연대가 기원전 2333년인 것에 비해 무려 3,003년이 늦다. 건국연대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중국 사서들에 의하면 한결같이 우리 한민족이 왜족 일본보다 우월하고 발달된 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마한, 변한, 진한 삼한이라고 지칭하는 기원전 4세기경에 건국된 진국에서는 소와 말을 타고 부리는 것이 누에를 치고 뽕나무를 기르며 천을 짜는 것처럼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3세기에 편찬된 '삼국지' 위서 왜인조에는 ‘왜에는 소와 말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에 말을 전한 것은 5세기경 백제가 아직기를 시켜 양마 2필을 보낸 것이 최초라는 기록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교통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무려 7~800여년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왜족 일본으로서는 제3자에 해당하는 중국에 전해오는 사서들의 기록이 증언하는 우리 한민족에 대한 역사적 열등감을 인정하고 현대에서의 동반을 모색해야 하건만, 엉뚱한 방법으로 역사적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발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발악은 우리 한민족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인가 자신들이 확실하게 붙어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한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나라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자신들보다 강하다고 판단하거나 얻어먹을 건덕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수그리고 들어가는 것은 물론 목숨 걸고 충성하는 반면에 자신들보다 약하다고 판단하거나 먹을 것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면 무리를 해서 짓밟고라도 그 위에 서려고 할 뿐 도덕이나 예의는 접어둔지 오래다.
당연히 염치도 없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경우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이들로, 특히 역사상의 일에 대해서는 왜곡과 날조를 일삼으며 그것이 마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우겨대는 것인지 감이 서지를 않는 파렴치한들이다.
우리 한민족에 대한 독도 문제나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벌였던 각종 잔혹한 착취에 대해서 자신들이 날조하여 왜곡한 것들을 사실인 양 뻔뻔하게 주장하는 것이 그 증거다. 그렇다고 일본을 무조건 적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그런 특성을 알고 계획을 세워 상대함으로써 더 이상 억울하게 당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일제가 벌인 강제 동원 노동력 착취에 대한 해결점을 위해 우리가 먼저 물컵의 반을 채웠다고 하면서 일본의 응답을 기다린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이지 그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심각한 문제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왜족 일본은 역사가 증언하는 열등감에 목말라 발악하고 있다. 그 목마름이 우리가 채운 그 반마저 마셔버리고도 남을 족속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그들은 그 반 잔의 물을 마셔버리는 것은 물론 또 다른 마실 것을 찾아서 눈에 광기를 띠고 덤벼들 것이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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