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저성장과 오랜 경기 침체가 고착화(固着化)하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동 전쟁 충격으로 인한 내수 위축까지 겹치면서 한계 상황에 내몰리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빚을 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금융회사의 대출 문턱은 갈수록 높아져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일부 개인사업자들이 사업에 쓸 용도라며 대출을 받아 고가(高價) 아파트를 사들이는 등의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대출금리 상승으로 부담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운다는 데 있다.
지난 3월 29일 한국은행이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연간 이자 부담이 1조 8,000억 원 증가하고, 0.5%포인트 상승 시 3조 5,000억 원 이상 늘어난다. 1인당 연간 부담도 평균 55만 원 늘어난다. 금리가 0.75%포인트 상승하는 경우 추가 이자 부담은 5조 3,000억 원까지 확대된다. 이렇듯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연체 리스크(Risk)는 더욱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취약 자영업자 연체율은 12%를 웃돌고, 전체 자영업자 연체율도 2%에 근접하고 있다. 다중채무자 비중 역시 60%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092조 9,000억 원으로 1년 전 1,083조 8,000억 원 대비 0.8% 증가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1인당 평균 대출 규모는 3억 4,000만 원 수준이다. 자영업 다중채무자 대출은 지난해 말 647조 7,000억 원으로, 전체 자영업자 대출의 59.3%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자영업자 대출 차주 10명 중 6명이 취약 차주에 해당하는 셈이다. 지난 2월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대출금리는 연 4.26%로, 전월대비 0.02%포인트 올라 지난해 10월 4.02% 이후 4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해 말 저소득 자영업자 연체율은 2.00%로, 1년 전(1.81%) 대비 0.19%포인트 상승했으며 중소득은 3.45%로 0.21%포인트, 고소득은 1.41%로 0.17%포인트 각각 올랐다.
게다가 경기 불황으로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연체 기업 수가 폭증하며 정책보증기관의 ‘대위변제’ 금액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위변제’란 보증기관이 은행권에 기업 대신 연체금을 우선 갚아준다는 뜻으로, 대위변제액이 늘어날수록 이들 보증기관이 건전성 압박을 받게 된다. 특히 은행권은 최근 생산적 금융 지출 확대를 위해 이들 보증기관에 특별출연 규모를 대폭 늘리고 있어 “은행권 부채를 보증기관이 대신 떠안고 있다.”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실이 지난 4월 13일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지역 신용보증재단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사고기업 수는 1만 3,851곳으로 지난 2월 4,907곳 대비 8,944곳이나 늘어나 약 2.82배나 증가했다. 사고기업이란 이들 보증기관으로부터 보증을 받고 은행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았으나 빚을 제때 갚지 못한 기업을 의미한다.
올해 3월 사고기업이 갚지 못한 빚은 무려 5,072억 원으로 지난 2월 3,985억 원 대비 1,087억 원(27%)이나 늘었다. 그에 따른 ‘대위변제’ 금액도 올해 1월 4,508억 원, 2월 5,536억 원에 이어 3월 5,948억 원으로 6,000억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들 기관이 보증을 약속한 기업 대출액 대비 실제 갚아준 돈의 비율인‘대위변제율’ 역시 올해 1월 3.9%, 2월 4.1%, 3월 4.5%로 증가일로(增加一路)를 치닫고 있다. 관련 통계 수치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부도·폐업·회생 등 사유로 대출을 갚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신호다. 이들 기관은 정부 출연금, 은행권 출연금, 보증 수수료 등으로 기금을 충당하고 있어 대위변제금이 늘어날수록 정부 재정이 더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대내외 불확실성(Uncertainty) 속에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자영업자 대출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은 자영업자 335만 명 중 절반은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였다. 이들이 진 빚은 684조 원으로, 전체 개인사업자 대출의 60%나 된다. 장사가 잘 안돼 빚을 안게 되고, 이 빚을 갚기 위해 다른 금융회사에서 또 다른 빚을 지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의미다. 상황은 더 나빠지고 갈수록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고 있다. 3개월 이상 원리금을 못 갚고 연체해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가’ 된 개인사업자 수는 작년 말 15만 명으로 한 해 전보다 9% 증가했다. 60세 이상 신용유의자의 증가율이 22%로 젊은 세대에 비해 높은 것도 문제다. 나이 많은 자영업자는 업종 전환 등을 통한 재기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고비만 넘기면 회생할 가능성이 충분한 자영업자·소상공인들에 대한 적극적 대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한 푼의 운영자금이 아쉬운 자영업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사업자 대출을 얻어 아파트 등 부동산을 사들이는 개인사업자들의 문제 역시 심각하기 그지없다. 금융당국은 최근 들어서야 2021년 이후 금융회사들이 빌려준 모든 사업자 대출이 제 용도로 쓰였는지 점검하기 시작했다. 작년 하반기 사업자 대출을 다른 용도로 유용했다가 적발된 금액만도 무려 588억 원에 달했다. 정부와 금융회사가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대출을 확대하더라도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업자, 나아가 사업과 무관한 엉뚱한 용도로 사용하는 이들에게 대출이 돌아간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 상황의 악순환이다. 부정하게 대출을 받은 이들에 대한 적발과 처벌이 중요한 이유다. 정부와 금융회사들은 신용등급이 낮고, 담보가 없어도 미래 성장성이 높은 중소기업에 더 적극적으로 대출해 줄 수 있는 ‘신용평가 체계(SCB)’ 도입을 서둘러야만 한다. 일시적인 충격으로 고통받는 유망 사업자가 아예 대출받지 못해 쓰러지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만 한다.
한편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지역 신용보증재단 등 보증기관들은 우선 빚을 갚아준 뒤 대상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해 ‘대위변제’ 금액 회수를 시도한다. 그러나 회수율은 한 자릿수에 그치고 이는 실정이다. 올 1~3월 대위변제금 회수율은 각각 5.1%, 4.7%, 5.4%였다. 대부분의 연체액이 이들 기관이나 부실채권을 인수하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 KAMCO)의 손실로 남는 구조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선 “경기 회복이 선행되지 않은 생산금융 전환의 한계를 보여 주는 통계”란 지적이 나온다. 또한 생산금융 확대 압박을 받는 은행권에선 오히려 보증기관 출연을 계속 늘리는 추세다. 우량 중소기업을 찾기 힘들다 보니 보증 출연을 통한 우회적 해결법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이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지역 신용보증재단 등에 특별출연한 금액은 2024년 1분기 1,654억 원이었지만, 2025년 1분기 2,015억 원에서 2026년 1분기 5,894억 원으로 최근 2년 새 4,240억 원이나 최근 1년 새 3,879억 원이나 증가하는 등 계속 근 폭으로 늘고 있다. 올해엔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2.92배나 급증했다. 하지만 기업 상황이 안 좋다 보니 ‘대위변제액’만 계속 늘어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현상만 계속 나타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이상 은행이 직접 심사하든 보증기관이 심사하든 부채가 확대된다는 결론은 같을 것”이라며 “은행권 부채가 국가 재정 부채로 전환된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 급증과 ‘대위변제’ 금액이 덩달아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용평가 체계(SCB)’ 도입은 무엇보다 화급(火急)한 급선무(急先務)임을 각별 유념하고 실행으로 옮겨야만 할 것이다.
오는 8월부터 소상공인들은 일부 은행에서 ‘소상공인 전용 신용평가 체계(SCB)’를 통해서 대출받을 수 있게 된다. 담보나 과거 금융 이력만이 아닌 미래 성장성 등을 평가해 대출받게 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신용평가 체계(SCB)’가 금융권에 안착이 되면 매년 약 70만 명의 소상공인에게 연간 10조 5,000억 원 규모의 신규 대출을 공급하고, 약 845억 원의 금리 인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9일 ‘제3차 신용평가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어 기업·우리·KB국민·신한·농협·하나·제주은행 등 7개 은행이 소상공인 대출 상품 심사에 SCB 등급을 시범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약 1조 8,000억 원 규모의 소상공인 대출에 우선 적용하게 된다.
이번에 도입하는 SCB는 지난해 7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충청권 타운홀미팅’ 이후 이어진 소상공인 간담회의 후속 조치로 나온 것이다. 매출, 업종, 상권 등 비금융 정보를 활용해 업종별 소상공인의 미래 성장성을 평가하는 인공지능(AI) 기반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 모형이다. S1~10에 걸친 10등급 체계로 S1·S2 등 상위 S등급을 받는 경우 기존 신용등급(CB) 대비 대출 승인, 한도 확대, 금리 우대 등의 혜택을 볼 수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소상공인은 약 790만개로 전체 사업체의 95% 수준이다. 종사자 수도 전체 고용 인구의 46%인 1,090만 명이다. 그러나 소상공인·개인사업자 대출의 약 90%는 여전히 담보·보증 대출로 이뤄지고 있다. 반면 영국,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기존 금융 정보 중심의 신용평가 체계에 소상공인의 미래 성장성, 잠재력 등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점 등을 개선하기 위해 비금융·비정형 정보를 신용평가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추세에 있다.
실제로 영국의 중소상공인 특화은행(Oak North Bank)은 소상공인의 현재 실적 외에 성장성·잠재력을 별도 스코어(Score)로 평가해 여신 의사결정 시 신용등급과 함께 활용 중이란 데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만 한다. 미국의 민간 신용평가(CB)사들도 상거래 데이터, 공공기록 등을 결합해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상 별도 신용점수 등을 산출해 제공하고 있음도 눈여겨봐야 할 일이다. 특히 신용정보원 내에 금융권의 신용평가, 통계 분석 등에 필요한 소상공인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소상공인 통합정보센터(SDB)를 구축해 SCB 운영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 임직원이 소상공인 대출 심사에 SCB를 활용할 시 면책 제도를 도입하며, 성과 평가에 반영하는 등 유인 체계를 마련토록 ‘SCB 이용 가이드라인’도 하반기 배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둘러 실행으로 옮겨 답해야만 할 것이다.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 외부기고 및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