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가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사실은 만주의 영토문화를 분석해 보면 더 확실해진다. 영토문화는 일정한 영토에 대를 이어 살아오며 축적된 보편적이고 연속성이 있는 문화로서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장문화라고 볼 수 있다.
매장문화는 그 영토의 자연환경에 의해서 방식을 달리할 뿐만 아니라 그 영토를 생활기반으로 삼고 있는 민족의 종교에 따라서도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매장문화는 예식을 진행하는 방법 등은 무형문화이고 예식을 진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나 예식 후에 남는 매장된 유물 등은 유형문화로서 복합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어느 민족이나 나라의 매장문화는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자를 판가름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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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만주의 매장문화는 고인돌과 청동검으로 대표된다. 그런데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과 청동검이 난하 서쪽 한족의 중국에는 존재하지 않고 한반도와 동일하게 분포하고 있다.
이른 시기의 고인돌은 돌무지무덤과 병존하였으나 대부분의 고인돌은 돌무지무덤보다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상에 판석을 4장 혹은 3장 세워서 돌곽을 만들고 그 위에 큰 뚜껑을 올려놓은 오덕형 고인돌과 지하에 돌상자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큰 무덤표식을 덮어 놓은 침촌형 고인돌이 있다.
이 고인돌의 분포를 보면 그 서쪽 경계선은 요하이고 남으로는 한반도 전역으로 남해안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요녕성에 집중 분포하고 있는 탁자식 고인돌은 단순한 무덤의 기능 이외에도, 종교제사 기념물, 집회장소의 역할, 선조 제사 장소 등의 기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북한지역의 탁자식 고인돌 가운데에도 서해바다 가까운 산마루나 능선위에서 무덤 이외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 해석되는 고인돌들이 발굴된다.
이와 같은 고인돌이 북한의 은율 관산리와 운산리 · 배천 용동리 · 용강 석천산 등에서 조사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고인돌 가운데에는 무덤방에서 껴묻거리가 찾아지는 것도 있어, 무덤으로써의 기능도 함께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고인돌에 껴묻기되어 있는 유물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비파형 단검이다. 비파형 단검은 형태가 옛날 악기인 비파처럼 생긴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하지만 날이 비파처럼 생긴 것이라고 모두 비파형 단검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비파형 단검이란 날의 형태가 비파모양으로 생겼을 뿐만 아니라, 검몸, 검자루, 검자루맞추개(가중기)를 따로 만들어서 조립하게 되어있는 단검이 바로 비파형 단검이다. 비파형 단검의 분포지역은 한반도와 현재의 중국 동북부의 대부분 지방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북쪽은 송화강 유역으로부터 남쪽은 조선반도의 남해안까지, 서쪽은 내몽골과의 경계선 부근으로부터 동쪽은 목단강 상류 유역까지이고 서남쪽은 소릉하 서쪽 즉 난하 유역까지다. 그 서쪽의 하북성에서 나온 것은 유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수집품으로 과학적 자료로는 취급하기 어렵다.
또한 검 날의 형태가 비파처럼 생겼다고 할지라도 검자루와 검몸이 붙어있는 주머니자루식 단검이나 비수식 단검은 비파형 단검에 포함시킬 수 없다. 주머니자루식 단검이나 비수식 단검은 비파형 단검의 형태를 본 따서 만든 것이다. 주머니자루식 단검과 비수식 단검은 요서지방에서만 나왔으며 요동 및 한반도에서는 나온 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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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고인돌과 비파형 단검 분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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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고조선과 진국의 영역도 |
고인돌과 비파형 단검의 분포지역을 근거로 작성한 고조선과 유물지도는 [그림 7]과 같다. 그리고 이 영역은 [그림 8]의 고조선과 진국의 영역과 매우 흡사하여 만주를 포함하고 한반도를 거쳐 대마도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한반도를 제외하고 본다면 만주국의 영역과도 비슷한 분포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서쪽 경계는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난하라고 보아야 한다. (20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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