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고려국’ 건국이 무산되자 만주를 지배하려는 일본이 만주족을 이용하여 건국했던 만주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해체된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세는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었다. 그러자 소련군은 뒤늦게 8월 8일이 되어서야 대일본 선전포고를 하고 8월 9일 0시를 기해 일본의 도움으로 건국된 만주국을 침공하는 만주전략공세작전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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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일본 관동군과 소련군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당시, 소련군은 이미 만주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하고 있었다. 만주국은 8월 17일 총리대신 장징후이의 주재로 열린 국무원 회의에서 만주국의 해체를 결정한다. 그리고 8월 19일 관동군 사령관 야마타 오토조 대장이 무조건 항복하기 하루 전날인 8월 18일 만주국의 황제 아이신기오로푸이가 퇴위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멸망하였다. 푸이는 8월 19일 선양에서 비행기로 일본에 망명하려다가 소련군에 사로잡혔다.
원래는 관동군이 항복하고 그 다음 날인 8월 20일 퇴위조서를 공포할 예정이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만주국은 푸이가 퇴위한 1945년 8월 19일 해체되고 만다. 이후 소련은 8월 30일까지 만주지역과 한반도 북부에 있던 일본 관동군에 대해 전면 무장해제하고 11월에 만주를 중화민국에 반환하였다.
소련이 만주국 영토를 중화민국에 반환한 것이 1946년 5월 3일이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형식상일 뿐 실제로는 이미 1945년 11월에 만주의 중국양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1949년 중국의 통일 이후부터는 만주국의 영토를 중화인민공화국이 통치하고 있다. 만주국의 영역은 만주에서 연해주를 제외한 것이다.
결국 ‘대고려국’ 건국을 계획할 때부터 꿈꾸던 일본의 의도대로 고조선 이래 대한제국의 고토였던 만주는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으로 탄생한 것이다. 만주국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대한제국의 선조들이 대대로 지켜온 영토를 중심으로 건국되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고조선은 연해주의 약 절반을 점유하였고 이후 부여와 고구려가 연해주 전체를 점유하였는데 반해 만주국에는 연해주가 일절 포함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1860년 북경조약에 의해서 조선의 의사와는 상관도 없이 청나라가 일방적으로 러시아에게 연해주를 넘겨줌으로써 그 당시에 연해주는 이미 러시아가 영토권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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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영역과 중국 행정구역 융합도 |
만주국 영토인 만주를 강점한 중국의 동북(東北; 둥베이)인민정부는 만주인민정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주국 영토를 부당하게 귀속 받은 중국이 1949년 8월 만주의 행정기구를 동북인민정부로 개편했기 때문이다.
동북지역은 과거에는 만주로 불렸던 지역이다.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 즉 요령성·길림성·흑룡강성의 3개성과 내몽고자치구의 동북부 동스멍(東四盟; 후룬베이얼 시, 싱안 맹, 통랴오 시, 츠펑 시) 지역을 포괄해서 가리키는 말로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동북지구(東北地區)’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다만 일본이나 한국 등지에서는 여전히 그 지역에 대한 명칭으로써 ‘만주’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중국의 동북지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현재 영어권에서는 그 지역 명칭이 ‘만추리아(Manchuria)’라는 용어로 정착되어 있다.
이 지역 최대의 도시는 심양이며, 그 외에 합이빈(哈爾濱; 하얼빈), 장춘, 대련, 길림등의 도시가 있고. 고조선,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고 200만 명 이상의 재중동포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우리 한민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동북인민정부의 영역은 만주와 동일한 영역이다.(15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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