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 평화자동차는 내일의 남과 북의 비젼
평화가 경제다, 문선명의 비전, 10·4 선언으로 결실
한학자 총재와 함께 일군 '민간 외교의 결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2007년,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걸으며 "분단의 장벽을 허물겠다"고 선언한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과 평화자동차 방문은 남북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문선명 총재가 일찍이 구축해 놓은 대북 민간 경제 인프라와 노 대통령의 ‘평화 번영’ 철학이 만나, 남북 관계를 실질적인 경제 공동체로 격상시키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문 총재가 열어놓은 평화의 길을 국가 수반이 공식적으로 계승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문선명 총재, 불가능을 가능케 한 '평양 네트워크'
노무현 대통령이 시찰한 평화자동차는 문선명 총재의 결단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던 결실이다. 1991년,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문 총재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담판을 지으며 남북 경제 협력의 물꼬를 텄다.
이후 문 총재는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 등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북한 내부에 '남측의 자본과 기술'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노 대통령이 공장을 직접 방문해 "함께 잘 살자"고 역설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수십 년간 이념을 초월해 평화의 토양을 일궈온 문 총재의 '선구자적 안목'이 있었다는 평가다.
남포 평화자동차 공장 시찰…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비전을 확인하다
2007년 10월 4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일정 중 노무현 대통령은 남포의 서해갑문을 참관한 뒤 평화자동차 공장을 찾아 생산 라인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문선명 총재가 북측과 합작하여 세운 통일교의 대표적인 경제 협력 모델이다.
노 대통령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휘파람' 등의 차량을 직접 살펴본 뒤, 북측 관계자들과 노동자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현장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의 방문에 대해 “민간이 뚫어놓은 경제적 통로를 대한민국 정부가 신뢰의 보증수표로 공식화한 것”이라 평가했다.
"평화가 경제다"… 문선명의 비전, 10·4 선언으로 결실
노 대통령은 방북 기간 중 "남과 북이 서로 돕는 것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Win-Win) 전략"임을 강조했다. 이는 문선명 총재가 평생을 바쳐 강조해온 '공생·공영·공의'의 가치와 맥을 같이 한다.
노 대통령의 진솔한 화법과 문·한 총재 내외가 닦아놓은 민간 인프라의 결합은 결국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을 골자로 한 '10·4 남북공동선언'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문 총재가 뚫어놓은 '경제의 길'이 대한민국 정부의 '평화 정책'과 만나 거대한 민족 번영의 물줄기를 만들어낸 셈이다.
한학자 총재와 함께 일군 '민간 외교의 결실'
문선명 총재의 이러한 행보에는 한학자 총재의 헌신적인 동행이 있었다. 한 총재는 문 총재와 함께 대북 평화 사역의 중심에서 민간 차원의 문화·경제 교류를 지속적으로 독려해 왔으며, 이러한 노력은 북측 지도부의 마음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힘이 되었다.
정치적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문·한 총재 내외가 구축한 독자적인 채널은 남북을 잇는 생명선 역할을 했고, 이는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으며 "내가 넘어가면 이 금(분단선)이 점차 지워질 것"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실질적인 토대를 제공했다.
[기자 수첩] 문선명이 닦은 길, 노무현이 걷다
평양 남포 공단에 울려 퍼진 자동차 조립 소리는 이념의 장벽을 뛰어넘는 평화의 교향곡이었다. 문선명 총재가 뿌린 평화의 씨앗은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화려한 꽃을 피웠다.
종교 지도자로서 민족의 화합을 위해 평양의 문을 먼저 두드린 문선명 총재와, 그 길을 담대하게 이어받은 노무현 대통령. 두 거목의 만남은 '평화는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며, 경제적 결합이 곧 통일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문선명 총재와 노무현 대통령의 만남은 민간의 헌신적인 개척과 정부의 정책적 결단이 어우러져 남북 관계의 황금기를 일궈냈던 소중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이하는 기사 원문 일본어 번역
【新年企画特集⑥】文鮮明が切り開いた平壌への道、盧武鉉が歩む
文鮮明総裁、不可能を可能にした「平壌ネットワーク」
南浦の平和自動車は、南北の未来を示すビジョン
平和こそ経済――文鮮明のビジョン、10・4宣言で結実
韓鶴子総裁と共に築いた「民間外交の成果」
[ローカル世界=李勝敏 大記者]2007年、分断の象徴である軍事境界線を歩いて越え、「分断の壁を取り払う」と宣言した盧武鉉大統領の訪朝と平和自動車訪問は、南北の歴史に新たな一ページを刻む感動的な場面だった。
文鮮明総裁が早くから築いてきた対北朝鮮の民間経済基盤と、盧大統領の「平和繁栄」の理念が出会い、南北関係を実質的な経済共同体へと高める象徴的な出来事だった。
文総裁が開いた平和への道を、国家元首が公式に引き継いだという点で、歴史的な意義を持つ。
文鮮明総裁、不可能を可能にした「平壌ネットワーク」
盧武鉉大統領が視察した平和自動車は、文鮮明総裁の決断なしには存在し得なかった成果である。1991年、誰もが不可能だと言う中、文総裁は平壌を訪問し、金日成主席との直談判を通じて南北経済協力への道を開いた。
その後、文総裁は平和自動車や普通江ホテルなどへの大規模な投資に踏み切り、北朝鮮内部に「南側の資本と技術」が共存できる場をつくった。盧大統領が工場を直接訪れ、「共に豊かに暮らそう」と訴えることができた背景には、数十年にわたり理念を超えて平和の土壌を耕してきた文総裁の「先駆的な眼識」があったと評価されている。
南浦の平和自動車工場を視察…文鮮明・韓鶴子総裁のビジョンを確認
2007年10月4日、「第2回南北首脳会談」の日程の中で、盧武鉉大統領は南浦の西海閘門を視察した後、平和自動車工場を訪れ、生産ラインを見学した。ここは文鮮明総裁が北側との合弁で設立した、統一教会を代表する経済協力モデルである。
盧大統領は、工場で生産される「フィパラム」などの車両を自ら見て回った後、北側の関係者や労働者に激励の言葉を伝えた。現場の関係者は盧大統領の訪問について、「民間が切り開いた経済交流の道に、韓国政府が正式に信頼のお墨付きを与えたものだ」と評価した。
「平和こそ経済」…文鮮明のビジョン、10・4宣言で結実
盧大統領は訪朝中、「南と北が互いに助け合うことは、双方に利益をもたらすウィンウィンの戦略だ」と強調した。これは、文鮮明総裁が生涯をかけて訴えてきた「共生・共栄・共義」の価値と軌を一にする。
盧大統領の率直な語り口と、文・韓両総裁夫妻が築いた民間基盤との結び付きは、やがて「西海平和協力特別地帯の設置」などを柱とする「10・4南北共同宣言」として実を結んだ。
文総裁が切り開いた「経済の道」が韓国政府の「平和政策」と出会い、民族繁栄へと向かう大きな流れを生み出したのである。
韓鶴子総裁と共に築いた「民間外交の成果」
文鮮明総裁のこうした歩みには、献身的に寄り添う韓鶴子総裁の存在があった。韓総裁は文総裁と共に、北朝鮮との平和活動の中心に立ち、民間レベルの文化・経済交流を継続的に後押ししてきた。こうした努力は、北側指導部の心を動かす柔らかな力となった。
政治的関係が冷え込むたびに、文・韓両総裁夫妻が築いた独自のルートは、南北を結ぶ命綱の役割を果たした。それは結果として、盧武鉉大統領が軍事境界線(MDL)を歩いて越えながら、「私が越えれば、この線(分断線)は次第に消えていくだろう」と宣言できる実質的な土台を提供した。
【記者手帳】文鮮明が切り開いた道、盧武鉉が歩む
平壌・南浦の工業団地に響き渡った自動車の組み立ての音は、理念の壁を越える平和の交響曲だった。文鮮明総裁がまいた平和の種は、盧武鉉大統領の訪朝を通じて鮮やかな花を咲かせた。
宗教指導者として民族の和合のために真っ先に平壌の扉をたたいた文鮮明総裁と、その道を果敢に引き継いだ盧武鉉大統領。二人の巨人の出会いは、「平和はスローガンではなく実践であり、経済的な結び付きこそ統一への近道である」という事実を、全世界に改めて印象付けた。
文鮮明総裁と盧武鉉大統領の出会いは、民間の献身的な開拓と政府の政策的決断が相まって、南北関係の黄金期を築いた貴重な歴史的瞬間だった。
LOCAL 世界/李勝敏 記者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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