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에 기술한 바와 같이 소련은 자신들이 만주에서 누리기로 했던 특권을 돌려받는 것을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에 연합군 편에서 참전하기로 했다. 만일 그 당시에 중국이 만주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생각했다면 장제스가 스탈린의 이 제안을 냉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중국은, 그 당시 일본이 만주국을 세워서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는 만주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일본이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기꺼이 허락했던 것이다. 이미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만주국 영토가 중국에 귀속된 것은 중국과 미국, 영국, 소련의 밀약에 의한 것으로 미국은 오키나와를, 소련은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영국은 홍콩을 차지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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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그러나 만주국 영토는 전리품 중 하나를 넘겨주듯이 중국에게 무작정 귀속시킬 것이 아니었다. 영토는 문화주권자가 영토권자가 되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만주의 영토문화를 분석하여 영토문화에 대한 문화주권자를 규명하여 그들이 영토권자라는 것을 밝히고, 문화주권자인 나라나 민족에게 그 영토를 귀속시켜야 했던 것이다.
만주국을 해체하고 그 영토를 우리 한민족에게 귀속시켜야 하는 당위성은 역사적인 고찰만 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병탄한 후 대한제국의 영토임이 분명한 만주까지 차지하기 위해서 대한제국의 백성들을 앞세워 고조선 이래 고구려의 고토를 수복하여 ‘대고려국’을 건국하려던 계획이 무산되자, 패망한 청나라 왕실을 끌어들여 만주국을 건국함으로써 만주정복에 대한 야욕을 이룩했다.
그 당시 청나라 푸이황제에게는 비록 괴뢰정부나마 자신이 다스릴 왕국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만주는 우리 한민족이 대대로 지배하며 생활해오던 영토인 동시에 청나라 발상지였기 때문에, 만주국 건국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은 신라가 멸망할 때 갈라져 나간 민족으로 우리 한민족이 그 뿌리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금사 세기'에 의하면 ‘금의 시조 함보는 고려에서 나왔고, 태조가 요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나서 발해인을 초유하면서 말하기를 “여진과 발해는 본래 한 집안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고려라고 지칭한 것은 신라가 패망한 이후 고려가 들어섰음으로 고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금의 시조인 누르하치가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한다는 의미의 애신각라(愛新覺羅)라는 성씨를 채택하여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애신각라노이합적(愛新覺羅努爾哈赤 :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이라고 명명한 것을 보아도 금사에서 이야기한 고려는 신라가 패망한 이후 고려가 들어섰음으로 고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만주인들의 성씨에 대한 구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만주의 성씨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한 부분은 성(姓)이며, 또 한 부분은 혈연종친 관계를 나타내는 씨족명(氏族名)이다. 이것에 의하면 애신(愛新)은 족명(族名)으로서 만주어로 금(金)이란 뜻이다. 각라(覺羅)는 성씨(姓氏)로서 누르하치의 조상이 처음 거주한 각라(흑룡강성 伊蘭일대)를 성씨로 삼은 것이다.
결국 만주인의 족명인 금(金)은 우리 한민족의 선조인 신라왕조의 성씨인 김(金)인 것이다. 따라서 연합4개국이 자신들의 욕심만 내세우지 않고 조금이라도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노력했다면, 이미 그 당시 청나라는 멸망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만주국 영토는 우리 한민족에게 귀속되어야만 했다.
만주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해체되었으니, 그 영토에 대한 문제는 일본의 만주 강점 직전에 만주를 지배하던 청나라와, 최초로 만주를 개척하여 고조선 이래 청나라가 건국되기 전까지 그곳을 생활터전으로 삼았던 우리 한민족 간의 문제였다.
만주족과 우리 한민족의 역사부터 검토하여 두 민족의 동질성 혹은 이질성에 대해서 확인하고, 연합국의 중재로 두 민족의 대표들을 소집하여 만주의 영토권에 관해서 합의를 도출하게 했어야 한다. 그것만이 만주의 영토권을 올바르게 정의함으로써 미래의 만주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4개국은 자국에 필요한 영토들을 서로 나누어 점유하기 위해서, 그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대대로 만주를 두려움의 존재로 여기며 살아온 한족의 중국에게 만주국 영토를 불법 귀속시키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한족 중심의 중국은 만주의 영토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들은 만주가 두려움의 존재일 뿐이다. 고구려 시대에는 만주의 고구려에게 수나라와 당나라가 처참하게 당했으며, 송나라의 한족은 원나라에게 굴복하여 노예 같은 생활을 하다가 겨우 한족의 명나라를 만났으나, 명나라는 청나라에게 갈기갈기 찢겨 멸청흥한(滅淸興漢)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한족의 중국역사는 만주가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므로 반드시 지배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연합국은 그런 중국의 욕심을 이용하여 동북아 영토권을 철저히 유린한 것이다. (19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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