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과점 체제의 은행, 서민들 고통분담에 참여해야”
이자수익 비중 82%…글로벌 100대 금융사 40.8%보다 배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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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환 칼럼니스트. |
“전세대출 이자를 1년 사이 배(연3%~6%)로 올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대출받은 서민들은 죽지 못해 살아가는데, 은행들은 돈방석에 앉아 성과급 잔치하네.” “모럴해저드라고 할 만도 하지. 고객들 등쳐서 영업 이익이 난 거지, 실력으로 노력해서 이익을 낸 건 아니잖아.” “허가낸 도둑을 잡아주세요.” 최근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국민의 목소리에는 ‘이자 장사’로 막대한 수익을 남긴 것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다.
지난해 5대 은행이 거둬들인 이자수익은 40조원에 달한다. 전년보다 20% 넘게 증가했다. 이러한 은행 수익의 대부분이 이자수익에 전적으로 기댄 구조라는 점도 비난을 키우는 대목이다. 지난해 신한은행의 총 영업이익 중 이자이익 비율은 96.2%에 달했다. 수수료나 자문료 등 비이자수익은 고작 4%도 안된다는 의미다. 이자수익으로 재미를 톡톡히 본 것은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KB국민은행 96.2%, 하나은행 94.3%, 우리은행 90.9% 수준이다.
국민의 분노가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나섰다. “금융·통신 분야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과점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특허사업이다. 서민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고통 분담에 참여해달라.” 고 주문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목소리를 높였다. “어려운 시기에 일부 고위 임원 성과급이 최소 수억원 이상 된다는 것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유동성 악화시기에 당국과 타 금융권이 도와준 적이 있는데, 이를 오롯이 해당 회사에 임원들의 공로로 돌리기에 앞서 구조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에 쏟아진 비난은 최근 역대급 성과급 파티에다 퇴직금을 1인당 7억~10억원 씩 지급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도화선이 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5대(KB국민·우리·신한·하나·농협) 시중은행의 성과급 총액은 1조3823억원에 이른다. 전년 대비 성과급 총액이 무려 35%나 늘어났다. 1인당 최고 성과급은 최고 15억780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퇴직자들에게도 목돈을 두둑히 챙겨줬다. 최근 신한·KB국민·우리은행 등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실적에 따르면, 각 은행은 4분기 직원의 희망퇴직 비용으로 1인당 3억4400만원~4억4300만원을 책정했다. 여기에다 근무연수에 따른 법정퇴직금을 더하면 수령액은 엄청 많아진다.
금융당국은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은행의 공공재적 성격에 초점을 맞춰 은행이 손쉽게 달콤한 과실을 독차지하지 못하도록 현재의 ‘과점 체제’를 깨고 시장을 완전 경쟁 체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대 은행의 국내 예금·대출 시장 점유율은 60~70% 수준에 이른다. 최근 은행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입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은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법안 총칙 1조에 ‘금융시장의 안정을 추구하고 은행의 공공성을 확보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며 은행의 공공성을 명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민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은행들은 이익금 10조원을 사회환원 하겠다는 수습 대책을 내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민심은 여전히 차갑다. 은행의 사회공헌 공약도 기존 취약계층 지원 방안을 부풀려 생색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 번지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은행이 공공의 적으로 확산 되어 가고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이자수익 의존 비중이 과도하게 높기 때문이다. 저금리 시대에 비이자수익을 늘리려던 노력을 하던 은행권이 금리 인상기를 맞아 다시 이자장사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금융그룹과 견줘보면 차이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말 기준 7개 은행그룹(KB국민·우리·신한·하나·BNK·DGB·JB)의 총이익 중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81.8%, 글로벌 100대 금융회사의 비이자이익 비중은 40.8%였다.
지난해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 금리 차이)의 확대도 반발을 초래한 원인이다. 예금 이자 인상 폭보다 대출 이자를 더 많이 올려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대출금리 폭탄을 맞은 서민들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기준금리를 연 1.00%에서 3.25%로 7차례 인상했다. 이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 여파로 잔액 기준 은행 예대금리차는 2021년 12월 2.21%포인트에서 지난해 12월엔 2.55%포인트로 벌어졌다. 은행은 정부의 인가를 바탕으로 과점 형태로 수익을 올리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금리 급등기엔 서민들의 이자부담을 낮춰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기준금리 인상이 가계대출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과 미국이 크게 달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1년간 국내 기준금리가 2.25%포인트 인상되는 동안 국내 잔액기준 가계대출금리는 1.32%포인트 올라간 반면, 미국의 경우 지난해 3분기 기준금리가 1.5%포인트 올라간 시기에 잔액기준 가계대출 상승폭은 0.24%포인트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매우 커서 금리 인상에 취약한 구조가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전체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은 65%(지난해 7월말 기준) 수준인 데 반해 미국의 경우 15%에 불과했다.
금융권은 이러한 ‘공공재’ 논란에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금융의 안정성과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한 금융전문가는 우리 정부가 2000년대부터 우리나라를 동북아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세웠다. 하지만 현실에선 금융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 씨티은행이 한국 철수를 선언한 예를 들었다. 때문에 글로벌 금융사들로부터 외면 받는 ‘패싱 코리아’의 꼬리표가 붙어있다. 금융 선진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글로벌 표준에 맞는 시스템과 금융 안정성이 근간이 돼야 하는데, 정부의 잦은 정책 개입은 금융 리스크를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은행은 공공재’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은행주의 낙폭이 심각하다. 올해 배당 확대 기대에 고공행진하던 금융지주 주가는 ‘은행은 공공재’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고꾸라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서둘러 발을 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4거래일 동안 외국인은 신한·KB·하나·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 주식을 1930억1700만원을 팔아치운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외국인이 가장 많이 팔아치운 KB금융의 매도액은 971억원에 달한다. 이어 하나금융지주 433억원, 신한지주 423억원, 우리금융지주 103억원 순으로 순매도 금액이 컸다. 이에 따라 주가도 급락했다. 4대 금융지주 중 순매도 규모가 가장 컸던 KB금융 주가는 지난 10일 대비 10.59%나 하락했다.
세계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주요 금융그룹 주주의 60~70%가 외국인인데 과도한 정부 규제는 합리적인 예측 가능성을 낮춰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일수록 금융의 가치를 높여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고율이자로 벌어들인 돈으로 성과급 잔치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현행 전세대출이자의 경우 2억원을 빌리면 월 110만~120만원(은행에 따라 약간의 차이)을 이자로 내야한다. 취약계층일수록 월 수익은 통상 2백50만원을 넘지 못한다. 전세대출 120만원, 아파트관리비 20만원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은 고작 100만원 정도다. 살기기 너무 빡빡하다. 현재 은행에선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방안으로 저리대출 혜택을 주고 있으나, 문턱이 높고 요건이 까다로워 실제 수혜를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은행이 공공재라면 이참에 대출이자 2원제를 신설해 실제 소득을 따져 명실상부 ‘서민대출 지원제도’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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