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강대국들은 서로 영토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영토확장에 광분하고 있는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침략할 때 그에 맞서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제무대에 호소라도 해서 영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확고한 이론이라도 필요한 것이 오늘날 국제정세의 현실이다. 올바른 ‘영토론’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힘의 논리로 무자비하게 치고 들어오는 강대국의 세력에 맞서 그나마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진작부터 이러한 현실을 간파하고 있던 필자는 박사학위 논문을 서술하면서, ‘영토문화론’을 동반하는 ‘문화영토론’에 의해서 영토권을 규명하는 이론을 정립하고 그 이후로 많은 논문과 저술을 발표하여 만주에서 대마도까지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당위성을 주창했다. 하지만 영토권 규명을 위한 하나의 목적에 사용되는 이론이 ‘문화영토론’과 ‘영토문화론’이라는 두 개의 용어로 나뉘어 혼동을 줄 뿐만 아니라, ‘문화영토론’의 경우에는 ‘문화가 실행되는 영역’을 의미하는 홍일식의 ‘문화영토론’이 이미 존재하는 터라 일반 독자들은 물론 연구자들까지 혼동이 온다는 점을 토로하곤 했다.
필자는 그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 ‘영토문화에 의해서 영토권이 규명되어야 한다는 문화영토론’의 기본개념을 바탕으로, 분쟁이 야기된 일정한 영토의 영토권 규명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이론으로 ‘영토문화론’을 새롭게 재정립하였다.
이미 앞에서 서술한 내용들을 잠깐 되새겨 본다면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영토론’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실태다. 우리나라 영토론 실태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저술에서 지칭하는 ‘영토론’은 영토권 규명을 위한 이론으로서의 ‘영토론’이 아니라 영토에 대한 의식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고, 많은 저술이 독도 영토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영토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강대국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이론의 무장이 지극히 저조한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기지 영토 소유권을 미국으로 해야 한다는 등의 헛말을 하는데도 옆에 앉아 있으면서 대응도 못하고, 나중에서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할 것이 아니다. 원래 영토라는 것은 이렇게 정의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줄 이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이론이 확실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유정갑의 ‘민족사적 생활영토론’이나 안천의 ‘잠재적 영토관’ 등의 이론이 있다고 해도 영토권을 규명하는 방법이 역사적 사료에 의존해야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그나마 필자가 주창한 영토권 규명을 위한 이론으로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자가 영토권자’라는 ‘문화영토론’은, ‘영토권 분쟁이 야기된 영토와 비슷한 문화를 소유한 주변 모든 영토의 영토문화를 분석하여 본질을 정립함으로써, 분쟁지역과 동일한 영토문화를 소유한 민족이나 나라가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자’라는 ‘영토문화론’에 의해서 영토권을 규명하는 이론으로, 영토문화에 의해서 영토권을 규명하는 타당성은 인정되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한 이론을 둘로 나누어 놓아서 번거로웠다. 또한 필자가 주장한 ‘문화영토론’은 홍일식이 주장했던 ‘문화가 실행되는 영역’이라는 의미의 ‘문화영토론’과 동일한 용어의 이론으로 독자들과 심지어는 연구자들까지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었다.
홍일식의 ‘문화영토론’은 우리의 훌륭한 전통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하되 특히 자신의 희생 없이는 실천할 수 없는 ‘효’ 사상을 인류의 현대생활은 물론 미래의 변화에까지 적응하는 실천지표로 발전・진작시켜 전 세계가 우리 문화영토에 편입되도록 함으로써 인류의 평화지표로 삼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홍일식의 ‘문화영토론’은 ‘문화가 실행되는 영역(領域)’이라는 의미로 영토권의 개념이나 통치의 개념은 일절 없으므로, 일반적으로 영토(領土)라는 단어가 어떤 나라의 통치권이 미치는 영역을 의미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문화영토’라는 용어는 적합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반면에 필자의 ‘문화영토론’은 ‘지리적인 국경에 의해서 지배하고 있는 통치자를 개념적인 영토권자라고 한다면, 대대로 그 안에서 영토문화를 누리며 살아 온 문화주권자를 실질적인 영토권자로 보아 인류의 국경이 정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조로 ‘‘영토문화론’에 의한 문화주권자가 영토권자’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같은 용어로 서로 다른 개념의 이론을 펼치고 있는 홍일식과 필자의 ‘문화영토론’을 많은 독자와 연구자들이 혼동하여, ‘문화가 실행되는 영역’을 ‘영토권을 소유한 것’으로 오인할 정도로 잘못 사용함으로써,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주창한 이론이 자칫 인류를 분쟁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것이 역시 피할 수 없는 문제점이었다. 따라서 필자는 그런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영토문화에 의해서 영토권을 정의해야 한다’는 ‘문화영토론’의 기본개념을 그대로 유지하되, 분쟁이 일어나거나 분쟁을 야기할 소지가 있는 영토의 영토권 규명을 위해서 실제적으로 사용하는 이론인 ‘영토문화론’을 재정립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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