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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흔히 왜족 일본인들, 즉 왜인(倭人)은 인사성이 밝다고 한다. 특별한 결례가 아닌데도 ‘스미마셍(すみません; 미안합니다)’이라는 말을 아주 잘해 미안함을 표시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사소한 일, 예를 들면 서로 몸이 부딪히거나 좁아서 불편한 것도 아닌데, 상대방의 앞을 지나거나 교차해 가게 되는 상황만 발생해도 ‘스미마셍’, 길을 가다가 길을 묻기 위해서 ‘말씀 좀 묻겠습니다’라고 해야 하는 부분에도 ‘스미마셍’, 식당 종업원을 부르는 데도 ‘스미마셍’이라고 하며 ‘스미마셍’을 입에 달고 산다.
서양인들이 예의상 ‘익스큐즈미(Excuse me)’라고 하는 것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정말 그들은 예의 바른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만 보고 사실을 잘못 판단하는 모순이다. 그들이 ‘스미마셍’을 입에 달고 사는 데에는 그들만의 아픈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오랫동안 바쿠후(幕府; 막부) 정치였다. 왕은 존재하되 통치하지 않는 허수아비였고 실질적으로는 막부의 쇼군(將軍; 장군)이 통치하는 정치체제였다. 가장 최근의 막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혼슈(本州), 시코쿠(四國), 규슈(九州)를 무력으로 통일하고 세운 에도막부(1603~1867)를 보면, 최고 통치자 쇼군 밑에는 열도를 나누어 다이묘(大名; 대명)가 다스리는 번(藩)을 두고, 각각의 번에는 다이묘 아래 사무라이로 대변되는 무사 계급과 최하층 계급으로 농민이 존재했다.
중세 유럽의 영주가 다이묘이며, 영지가 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최하층 계급 농민은 말이 농민이지 실질적으로는 막부의 노예나 다름없는 신분으로 일본 전체 국민의 80%가 넘었다.
농민은 막부에서 배당해주는 땅에 농사를 짓고 그 소출에서 몇 %를 세금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일단 추수가 끝나고 나면 막부에서 알아서 가져가고 남겨주는 것으로 먹고 살아야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다시피 남겨준다는 것은 항상 부족했지만, 불평은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어 불평할 수도 없었다.
비단 먹고 사는 것뿐만 아니라, 농민은 무사 앞에서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다. 길을 가다가 무사와 마주쳤는데 잘못해서 무사를 바로 보고 눈이라도 마주쳤다가는 괘씸하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칼로 베어버려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따라서 길을 갈 때 항상 고개를 15도 정도 숙여야 하는 까닭에 눈은 자동으로 3~4미터 전방 땅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깨를 움츠리고 종종걸음을 걸으면서 혹시 누가 맞은편에서 와서 교차라도 하게 된다면 고개를 더 수그리고 ‘스미마셍’을 연발하며 빠르게 지나쳐야 목숨을 온전히 보장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노예만도 못한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농민 신분은 세습되었고, 다만 무사 계급 사람에게 자식이 없어서 양자가 된다면 겨우 신분을 상향시킬 수 있었을 뿐이다. 훗날 3번의 수상과 대한제국 초대 총감을 지내고 안중근 의사의 총에 심판받아 죽은 이토 히로부미가 그런 유형의 농민 출신이었으나,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었기에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전 왜족 일본의 농민 대부분은 목숨 보전을 위해서 몸과 마음은 움츠리고 입에는 ‘스미마셍’을 달고 살면서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고달프고 불안한 삶이었다.
일본인들은 정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도 ‘스미마셍’이라고 한다. 하지만 용서를 구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족 일본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스미마셍’은 예의와는 별개다. 대다수가 농민 계급에 속하던 왜족 일본인들의 목숨 보전을 위한 수단이었고, 그것이 전통으로 굳어 고유문화로 자리 잡고 전래 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스미마셍’이라고 할 때, 그 어감에서 진정성이 묻어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저 습관처럼 해대는 말인지 아니면 정말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이는 것인지도 가름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일본인들이 입에 단 채 떼어내지 못하고 사는 ‘스미마셍’ 한마디를 듣지 못한 채 강제 동원되어 착취당한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문제를 매듭지으려고 한다.
게다가 일본 총리 기시다는 착취당했다는 표현은 커녕 강제 동원이라는 단어조차 쓰지 않은 채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이라고 표현 함으로써 마치 스스로 자원해서 노동한 것이라고 오인하기 딱 좋은 표현을 쓰며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한다.
왜인들 특성상 이럴 때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훗날 ‘지난 번에 그런 표현을 썼을 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니까 그게 맞는 거’라고 우기고도 남을 종족들이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생떼를 쓰는 이유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일개 작은 지방에 지나지 않는 시네마현 고시 40호로 시네마현 관보에 게시해 놓고는 대한제국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니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철을 다시 밟게 해서는 안 된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설령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일지라도 간 쓸개 모조리 도려내 가는 것이 왜인들의 가장 큰 특성이다. 설마 사람이 그러겠느냐고 방심하는 순간, 왜족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체험을 하게 해준다.
입으로는 ‘스미마셍’을 연발하여 상대가 방심하는 사이에, 상대를 짓밟고 양어깨 위에 다리를 벌리고 올라앉아 다리로 목을 조여 압박하면서, 손으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가리켜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잔인할 정도로 상대를 혹사하는 족속이 왜족 일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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