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대고려국’과 만주국 및 동북인민정부 세 나라의 상관관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나라 모두 그 영역의 중심을 만주로 계획하였거나 혹은 만주에 세워진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대고려국’은 건국을 계획했을 뿐 건국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일본이 만주를 기반으로 ‘대고려국’ 건국을 계획했다가 실패한 경험을 바탕으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내세워 괴뢰정부 만주국을 건국함으로써 일본의 식민지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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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연합4개국의 밀약에 의해 만주국 영토가 부당하게도 중국에 귀속되면서, 중국은 만주국과 동일한 영역인 만주에, 동북인민정부를 구성한 것이다.
일본이 처음 만주에 건국하고자 했던 ‘대고려국’의 영역을 설정함에 있어서 고구려의 영역이 우리 한민족의 영역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대정일일신문의 ‘대고려국’ 건국에 관한 첫 기사에 고구려 건국설화를 게재함과 동시에, 만주에 대한제국 백성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세워서 대한제국 백성들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 ‘대고려국’ 건국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라고 공언했다.
일본의 이러한 공언이 그 당시 자신들이 병탄하고 있던 대한제국을 이용해서 만주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본으로서는 주장할 근거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을사늑약에 의해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하기 직전으로 몰아넣고 제일먼저 실행한 일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연구하여 자신들이 지배하기 쉽도록 왜곡하는 일이었다.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1906년 이마니시 류(今西龍: 금서룡)를 불러들여 본격적인 역사왜곡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대한제국의 영토가 고조선 이래 만주와 한반도에서 대마도까지 이어지는 영토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한제국을 온전하게 지배한다는 것은 한반도는 물론 만주까지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일본은 청나라는 만주족, 즉 여진족이 세운 나라로 여진족의 뿌리가 대한제국과 같은 민족이고 청나라와 만주족은 중국이 아니라 중국을 지배하는 나라이며, 민족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일본은 절대 만주를 포기 할 수 없었고, ‘대고려국’ 건국이라는 계획을 세웠으나 건국에 실패하자 그 대신 만주국을 반드시 건국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미 1910년에 조선을 병탄한 일본의 입장에서 대륙진출이라는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만주를 통하는 것이 수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만주까지 대한제국의 영토라고 해서 한꺼번에 점령하기에는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있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만주철도 부설권이라는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미 1909년에 간도협약을 통해 만주의 남부인 간도를 스스로 청나라에게 내준 전력이 있다.
이것은 간도가 청나라 영토라는 것으로 인정한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청나라의 후손들을 이용해 만주국을 세우기 위해서는, 만주가 청나라 영토라는 것을 공인해 주었던 것처럼 활용할 수도 있었다. 일본은 청나라의 발상지가 만주라는 것을 알기에, 청나라가 한족들에게 밀려나면 자신들의 발상지인 만주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만주를 차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청나라 마지막 황제를 내세워 만주국 건립을 끈질기게 추진했고 그 결과 만주국을 건국하였는데, 이미 [그림 5]와 [그림 6]을 통해서 비교해 본 것과 같이 그 영역에 연해주만 합한다면, 대한제국의 선조들인 고조선 이래 고구려가 지배했던 영역과 비슷했다. 일본이 ‘대고려국’의 건국을 계획하며 내세웠던 고구려 국토수복에 상당히 근접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연합4개국은 만주국의 영토를 중국에 귀속시켰으니 승전국이라는 미명을 앞세워 영토유린의 폭거를 자행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라고 해서 만주국을 해체한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만주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일본의 괴뢰 정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엄연히 황제가 존재하는 국가로 일본,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헝가리, 엘살바도르, 도미니카 공화국, 소비에트 연방 등이 1939년까지 승인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지배를 받던 나라들이 어쩔 수 없이 승인했다고 핑계를 대지만, 슬로바키아, 프랑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핀란드, 덴마크, 크로아티아 등의 나라들 역시 승인하였다.
또한 타이와 필리핀도 만주국을 승인했고 중국은 만주국을 승인하지는 않았지만 무역, 교통, 통신 등을 위해서 공식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엄연히 세계 속에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는 나라를 해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소련의 경우 만주국을 승인해 놓고 만주국을 실질적으로 해체하는 역할을 했다. 자국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신의는 물론 명분마저 저버리고,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왔다 갔다 하는 국제사회의 현실적인 단면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표본이다.
만주국이 일제의 식민지이며 일제에 의한 괴뢰정부라는 이유로 해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 그 당시 많은 나라들이 일본과 서구 열강의 식민지였으니 그들도 해체했어야 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해체된 나라는 오로지 만주국뿐이었다. 게다가 그 나라를 해체했다면, 그 영토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승전국이라고 자신들 마음대로 처리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일이었다.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만주국을 해체했다면 그 영토의 귀속문제야 말로 신중하게 처리했어야 인류의 평화가 오래도록 유지되는 것이다. 만주가 중국 한족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은 1945년 2월에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위해서 열린 얄타회담에서의 장제스(蔣介石; 장개석)의 행동을 보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18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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