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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청소년교류평화연대 윤정규 사무총장. |
1300년 전 웅대한 제국 고구려인의 기상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에게 한민족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고, 형제란 어떤 의미일까.”
남북청소년교류평화연대 12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5박6일(6.22~27) 일정으로 중국 백두산과 고구려 유적지 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백두산 고구려유적지 압록강 답사는 2016년 블라디보스톡(연해주) 5차에 이어 한민족평화통일 백두산 연수를 펼치고 있는 것 중에 하나이다.
여행 중 백두산, 광개토대왕비, 압록강, 북한주민, 조선족 등을 보거나 만나면서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적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비단 나 뿐 아니라 일행 대부분이 여행 중에 잃어버린 역사와 잊고 살았던 한쪽 형제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혀를 차거나 장탄식을 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도 4월에 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때에 처럼 배편이었다. 인천 제1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동방명주(東方明珠)호‘를 타고 비행기로 2시간이면 족할 거리를 16시간을 항해했다. 하지만 지루하거나 심심하지는 않았다. 바다는 항상 색다른 세계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항해 중간에 스쳐 지나가는 크고 작은 섬들. 그리고 고기 잡는 어선들, 누군가 던져주는 ‘새우깡’ 맛에 취해 선상을 맴도는 갈매기 무리 등을 보고 있으면 여행은 역시 ’이런 맛’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북한과 마주한 중국의 국경도시 단동에 도착한 것은 여행 둘째 날 오전9시였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은 2시간을 달려 통화시에 도착했다.
더욱이 중국의 열악한 도로 사정은 버스의 운행을 더디게 했지만 버스 안에서 옛 고구려의 영토를 관망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산천이 우리의 땅처럼 느껴져 왠지 낯설지 않았다.
▲(사)남북청소년교류평화연대 120여명의 회원들이 백두산을 오르기 전 단체촬영을 하고 있다. |
통화시에 도착 저녁을 먹고 2시간을 더 달려가 백산시 프리마호텔에 여장을 푼 다음날 백두산 천지 관광길에 올랐다. 우리 민족에게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애국가 가사에도 나오는 백두산은 반만년의 우리 역사를 묵묵히 지켜 온 대다 해발 2744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많은 시인과 묵객도 찬사를 아끼지 않을 만큼 경치도 뛰어나 누구나 생전에 꼭 한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로망의 산’이다.
백두산 천지로 오르는 길은 서파, 북파 2가지 루트 가운데 비교적 쉬운 길이면서 천지가 용암을 분출하면서 만들어낸 V자형태의 금강대협곡, 천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서파를 이용해 120명의 답사단 일행은 등정 길에 올랐다. 20번 이상 백두산을 찾아 천지를 구경하여고 했지만 백두산은 나를 잘 반겨 주지 않았다.
단 한차례 올라도 천지를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번을 찾아도 끝내 천지를 못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천지 구경도 행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복불복(福不福)’인 모양 이다. 출발 때부터 궂은 날씨를 보여 우리 모두는 우비를 입고 1440계단을 올라가고 중턱에 이르자 빗방울이 굵어졌다.
우리 일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재촉, 정상에 도착했을 때도 짙은 구름과 안개는 천지와 우리들 사이를 가로 막았다. 천지가 끝내 ‘면회’를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기세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지 천지 정상에 도착하자 빗방울은 더 거세게 몰아쳤다. 빗방울을 맞으며 1시간을 기다려도 끝내 천지는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다.
경남 거제시에서 참석한 옥규열(74)씨는 한쪽다리가 불편함에도 지팡이를 짚고 1440계단을 힘들게 올라왔을 때 참석자 전원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 대부분의 여성 참석자들은 눈물을 훔치는 장면도 있었다. 옥씨는 불편한 다리로 힘들게 한발 한발 올라오면서 내가 살아있는 동안 평화통일을 꼭 이루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빌면서 올라왔다고 소감을 말했다.
천지를 보지 못하고 하산 하면서도 다양한 자생식물이 피어있는 고산화원의 정경에 넋을 잃은 채 “백두산이 괜히 백두산이 아니다”라는 말을 일행들과 주고받았다.
여행 나흘째 고구려의 수도였던 지안을 찾았다. 이곳에는 광개토대왕릉비와 장수왕릉, 국내성 성벽 등의 유적이 있는 곳이다. 동북아의 작은 반도에서 그것도 남북으로 갈려있는 우리에게 광개토대왕은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대륙성을 상징한다.
광개토대왕의 사후 후세들이 바친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란 시호는 평생을 말 위에서 보냈던 그의 위대한 역정을 보여주고 있다. 17세에 왕위에 올라 39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22년의 재위 기간 대부분을 그는 거칠고 고단한 도전의 시간으로 채웠다. 짧은 생애를 편안한 왕궁이 아니라 거친 황야를 달렸기 때문에 고구려는 동북아의 패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광개토대왕비의 터와 능은 자국의 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의 야욕 속에 이제는 중국인들의 주요한 역사탐방 루트가 돼 있었다. 그를 보기 위한 중국인 관광객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커다란 유리 관 속의 웅대한 광개토대왕비를 올려다보자 어느덧 내 몽고의 광할 한 초원에서 기마병 무리의 선두에서 말을 모는 대왕의 말발굽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광개토대왕의 웅대한 기상을 우리 지도자와 국민이 오늘날 되살릴 수만 있다면 무언가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남북청소년교류평화연대 회원들이 중국역사기행 중 화이팅포즈를 취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여행 중 느낀 서글픈 상념은 이뿐이 아니었다. 단동 도착 첫날은 일정에 쫓겨 압록강을 ‘주마간산’으로 봤으나 여행 마지막 날에는 온전히 볼 수 있었다. 보트를 타고 강 건너 북쪽 어린이, 빨래하는 여인 강의 모래를 채취하는 노동자, 자전거를 타고 구경 나온 청년, 군인 등 2002년 평양을 방문해 평북정주에서 본 초라한 북한인의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소설가 박범신은 오래전 압록강에서 뜨겁게 운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강 건너에 나와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 그런데도 오랫동안 그들을 잊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졌다. 손을 내밀면 언제라도 다정하게 맞잡으면서 ‘반갑수다’ 할 것만 같은 사람들이었다. 절박한 눈빛과 몸짓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금방 다가올 듯했다” 고 당시 감상을 표현했다.
압록강을 사이에 놓고 고층 빌딩이 즐비한 중국 쪽에 비해 북한 쪽은 변변한 건물 하나 없는데다 우리의 60∼70년대 풍경을 연상케 하는 북쪽 사람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 가운데 일부는 아마도 이 소설가처럼 속으로 많이 울었을 것이다.
내가 본 2016년 6월 압록강은 장도상의 소설 ‘찔레꽃‘을 떠올리게 충분했다. 이 소설은 탈북 여성 ‘충심‘의 기구한 삶을 그리고 있다. 순진한 17살 처녀 충심은 인신매매 범에게 속아 북한을 탈출하지만 헤이룽장성의 궁벽한 농촌에 팔려 시집갔고, 이후 남편의 의심과 폭력에 시달리다 탈출한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메이나, 소소, 은미로 이름을 바꾸며 월경하지만 현실은 끝까지 혹독했다. 몽골 초원까지 거처 한국에서 정착했으나 선교사 일당에게 정착금과 생계비를 갈취당한 충심은 노래방 도우미, 매춘으로 전락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다시 이 책을 펴든 나는 ‘또 다른 ’ 충심이 우리 일행이 지나온 지안, 단동 등지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자유를 찾아 헤맬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또다시 서글퍼졌다.
고구려 유적지를 보고 단동 장성호텔에 도착시간은 오후6시경 호텔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사)남북청소년교류평화연대 설용수 이사장은 ‘한반도 평화통일준비’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통일의 개념정리 필요성과 남북한 간의 의식의 차이에 대해서 인정하고 이해관계 속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며 “독일의 통일과정과 베트남의 과정처럼 힘이 강한 쪽에서 약한 쪽을 흡수하는 통일이 평화통일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통일지도자들에게 “그래서 국민모두가 통일운동을 전개해 통일의 때를 맞이할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설 이사장은 “국민 마음속에서 남북통일의 필요성 북한인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그리고 주변 국가들의 통일에 대한 협력, 끝으로 하늘(천심)의 때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나는 남북청소년교류평화연대를 통해 민족정기를 고양하고, 각박한 생활에서 벗어나 재충천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중국여행 프로그램을 마련해 평화연대회원들이 많이 참여토록 할 계획이다. 일상을 잠시 접어 두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낯선 환경과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여행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이 고단하고 피로한 과정 역시 피할 수 없는 줄 알면서도 다시 떠나기를 갈망하는 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이번 행사에 많은 협조를 해주신 김영길 경남회장, 이문승 충남회장, 양재형 부산회장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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