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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부산지검 앞에서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수력원자력(주)의 고리1호기 블랙아웃 사고 은폐에 대한 책임을 성토하고 있다. 제대로된 비상 매뉴얼도 없어…감시시스템 개선·정기검사 항목 대폭 확대 등 시급
지난달 9일 오후 8시34분부터 12분간 고리 1호기 원전의 전원이 완전히 차단된 사이 원자로 냉각수의 온도는 36.9도에서 58.3도로 21.4도 급상승했다. 사용 후 핵연료 저장조는 21도에서 21.5도로 높아졌다. 사태가 길어지면 냉각수가 증발해 방사능 유출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원자력안전위가 21일 발표한 전력공급 중단 사고는 전 과정에서 허점 투성이였다. 원전사고 은폐는 자칫 국가적 재앙의 단초가 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공직자들의 근무태도와 안전불감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원자력안전위는 지난달 9일 발생한 ‘고리1호기 전력공급 중단사태’를 조사한 결과 당시 한국수력원자력(주) 고리원전본부 제1발전소장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본부에 보고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 조직적 은폐기도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문병위 당시 발전소장은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에서 “비상 발령 및 보고 대상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본사의 안전대책 발표가 있었던 날이었고 심적 부담과 두려움으로 보고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진술했다.
고리1호기에 전력 공급이 안 된 이유는 발전기 보호장치를 시험하는 과정에서 작업자가 감독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면서 외부전원을 차단했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정전 시 자동 작동해 원자로에 전력을 공급토록 돼 있는 비상디젤발전기도 공기공급밸브 결함으로 작동하지 않아, ‘최악의 비상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시나리오 관리’가 현장에서 전혀 이뤄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위는 당시 발전1소장이 사건현장에 있던 주요 간부들에게 한수원 상부 및 안전위 등에 보고하지 않기로 입을 맞추려 했던 사실도 밝혀냈다. 현장에 있던 간부들은 사건당시 운전원 일지 등의 관련기록을 모두 의도적으로 누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8일 외부에 정전사건이 알려지면서 한수원 본사에 보고되고 고리원전본부장과 한수원 경영진들도 그때서야 사건을 처음 알았다고 안전위는 밝혔다.
사고가 작업자의 과실과 비상 디젤발전기의 고장, 현장의 조직적 은폐 등 총체적 부실의 결과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자체와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는 고리1호기 블랙아웃 사고 은폐와 관련, 책임자를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대책위는 “고리1호기에서 일어난 사고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고리1호기 관리원들과 한수원은 반핵여론이 확산되는 것이 두려워 한 달 이상을 감췄다”고 비난했다.
울산 울주군의회는 21일 제127회 임시회 1차 본회의에서 ‘원자력발전소 안전관리 특별강화와 고리원전 1호기 즉각 폐기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고리 원전 사고와 관련 재발방지를 위해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안전성 강화 방안을 마련토록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규제당국은 물론 원전을 운영하는 한수원 본사마저 속이는 등 내·외부 감시체계가 철저히 무너진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폐쇄적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이해관계자가 모여 운영하다 보니 독립성이나 투명성이 떨어진다. 원전 운영의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
허술한 내부감시 시스템도 개선돼야 한다. 지금처럼 폐쇄적인 체계에서는 은폐를 근절하기 힘든 만큼 안전위나 한수원 본사에서 실시간으로 원전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민·지방의원·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간환경감시기구를 강화해 원전 운영을 상시 감시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한편 안전위는 재발 방지를 위해 정기검사 항목 57개를 100개로 확대, 전력 계통 시험에 대한 안전기술원 입회율을 50%에서 80%로 높이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박형재 기자 news34567@segye.com
- 기사입력 2012.03.23 (금) 16:56, 최종수정 2012.03.23 (금)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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