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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직원이 창구를 찾은 고객에게 전산망 장애로 인해 거래가 안 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
‘농협’은 ‘농업협동조합’을 줄인 말입니다. 그러나 정작…. 농협 전산망 장애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보상 문제가 핵심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농협중앙회가 주요 고객인 농민들에게 보상절차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 등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대책마련에 소극적인 것으로 드러나 정작 ‘농협에 농민은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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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피해상황 제대로 파악조차 못해
농민단체들에 따르면 농협에는 대부분 농민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는데, 상당수 농민은 고령이어서 전산망 피해 신고방법이나 절차를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연구소 팀장은 “농협에서 전산망 장애 사태를 문자로 공지했지만, 내용이 너무 복잡하게 쓰여 있어 헷갈려하는 농민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바쁜 영농철이어서 농협을 방문해 통장정리를 꼼꼼히 하는 농민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농협은 단순히 문자를 보내는데 그치지 말고 신고방법을 명확히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길자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국장은 “전산망 장애로 인한 피해는 본인이 증명해야 하는데, 농촌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농협 측에서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협은 농민의 피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농업인만 따로 파악하고 있진 않다”며 “관련 사항은 홈페이지에 공지했고, 결제계좌 안내 등 케이스 별로 문자 한 번씩을 보냈다”고 말했다.
조합원에 대한 안이한 태도도 엿보였다. 또 다른 농협 관계자는 “실질적인 장애는 하루 동안 일어났기 때문에 금융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농민 피해는 적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불편을 다소 말씀하셨더라도 시골 조합원은 농협과 정적으로 유착돼 있는 경우라서 양해만으로도 해결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는 앞서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고객의 경제적 피해는 전액 보상을 원칙으로 한다며 전산장애와 관련해 발생한 연체이자, 이체 수수료 등은 민원접수와 상관없이 100% 보상하고, 전산장애로 인해 발생한 신용불량정보는 타 금융기관과 협의를 통해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간접피해는 입증 가능한 경우만 보상하겠다는 입장이라서 논란이 예상된다. 간접피해는 피해 여부를 증명하기 어렵고, 명확한 보상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농협 피해접수 사례는 지난 25일 18시 기준으로 1180건에 달한다. 이중 처리된 것은 1035건, 보상금액은 1117여만원이다. 단순 항의는 공식 집계하진 않지만 31만건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농협계좌를 하나씩은 갖고 있는 농민들에 대한 피해접수는 따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 농민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태 해결 위해서는 진정성 담보돼야
농협 전산망 장애 사태가 최악의 금융사고로 비화되면서 농협의 미흡한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농협중앙회는 전산망 장애 이틀 뒤인 지난 14일 첫 브리핑에서 “전산 장애를 일으킨 노트북이 외부와 연결돼있지 않다”고 설명했다가 검찰 수사로 거짓으로 드러나자 “당황해서 잘못 말했다”고 했다.
전산망 장애 복구 시점을 수차례 공언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농협은 “몇시까지 복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명했다. 원장 손실은 없다던 주장마저 거짓으로 확인돼 네티즌으로부터 ‘양치기 농협’이란 별명을 얻었다.
전산시스템 비밀번호 관리도 허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래희망연대 김혜성 의원이 입수한 ‘금융감독원 농협중앙회 검사결과’ 문서에 따르면 농협은 시스템 계정 15개의 비밀번호를 최대 6년9개월간 변경하지 않았다.
3개월에 한 번씩 비밀번호를 변경해야 한다는 금감원 규정을 무시한 것이다. ‘1’이나 ‘0000’ 등 알아내기 쉬운 비밀번호를 설정한 사례도 있었다.
사태 해결을 이끌어야 할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리더십도 찾아볼 수 없다. 최 회장은 “나도 직원들 말만 믿다가 당했다”거나 “비상임이라서 업무를 잘 모르고, 한 것도 없으니 책임질 것도 없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22일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4000여억원을 신규 투자해 첨단보안설비 및 전산장비를 갖춘 새로운 전산센터를 신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후약방문 보다는 사태 해결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1차 피해 못지않게 2차 피해도 많이 접수되고 있다. 그러나 2차 피해에 대한 기준이나 사례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며 “농협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산사고에 따른 피해를 이벤트로 희석하려는 농협의 태도도 문제로 불거졌다. 농협은 지난 18일부터 29일까지 예금 가입 고객에게 특별 금리를 제공하고, 한시적으로 농협 거래 고객의 주요 금융수수료를 면제했다. 일부 하나로마트는 농협카드 결제 고객에게 안심계란을 사은품으로 제공했다.
의정부 농협은 지난 23일 ‘한마음 대축제’를 열고 유공 직원과 조합원들에 대한 표창장 수여를 비롯해 운동회와 노래자랑, 초청 가수 공연 등을 벌여 눈총을 샀다.
뉴스룸 = 박형재 기자 news34567@segye.com
- 기사입력 2011.05.02 (월) 15:03, 최종수정 2011.05.02 (월)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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