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한우산업이 그 모양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한우산업의 사육기반이 크게 축소된 상황에서 2000년대 들어 소비회복과 북미지역의 광우병 발생에 따른 쇠고기 수입량 감소로 국내 쇠고기 가격은 지속적인 상승국면을 유지했다.
가격호조에 힘입어 한우농가의 송아지 입식 열기가 높아지고 한우 사육두수도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2011년 하반기 한우산업은 300만두 시대를 열었다. 문제는 소비량보다 공급량의 증가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즉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하락폭이 크고 가격약세 국면이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한우가격은 2010년 9월부터 조정받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하락폭은 점차 확대돼 2011년 하반기에는 한우 수소 산지가격과 암송아지 가격이 전년 동기간 대비 35% 이상 하락했다.
도매시장 쇠고기 가격도 품질 낮은 3등급은 29% 떨어졌고, 1등급 이상은 약 18% 내려갔다. 소비자가격도 하락했으나 소비자가에는 점포운영비, 이윤 등이 포함돼 상대적으로 조정 폭이 작다. 가격이 내려가면 유통업체가 적극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가격이 조정되는 데에도 시차가 발생한다.
산지가격이 떨어져도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의 한우가격 하락은 오래 전부터 예견됐다. 농업관측센터를 비롯해 각종 심포지엄에서 과잉 사육두수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물량조절에 대한 대책을 촉구한 바 있다. 이에 부응해 2010년 하반기부터 농협 등 생산자단체를 중심으로 한우농가의 암소 10만두 자율도태 운동이 전개됐으나 실적은 2만두에 불과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우가격의 하락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송아지를 생산할 수 있는 가임암소두수는 연말 기준으로 2008년 102만두에서 2010년 123만두, 2011년 125만두 수준으로 증가했다.
가임암소두수가 크게 늘어난 2010년부터 한우 암소가격과 송아지가격이 조정받기 시작한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소비수준에 부합하는 가임암소두수는 100만두 전후가 적정하다고 볼 수 있다.
한우산업이 장기 침체로부터 벗어나려면 지금부터라도 능력이 떨어지는 암소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과잉물량에 대한 적극적인 도태가 이뤄져야 한다.
한우가격 하락 폭을 줄이려면 낮아진 가격을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도록 중간 유통 마진을 최소화하고 직거래 물량을 확대해야 한다. 소비촉진 운동도 꾸준히 전개해야 한다.
소비자의 접근성이 높은 지역 농·축협과 농협중앙회가 자체 유통망을 최대한 활용해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가격 수준을 제시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로써 경쟁관계에 있는 일반 유통업체의 가격인하를 유도하고 전체적으로 한우고기의 소비를 촉진시키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한우산업은 사료가격이 올라 채산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다. 국제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한 사료비 인상을 개별농가가 대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사료가격 안정대책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직접적인 시장 개입보다는 한우농가를 비롯해 축산농가의 위기관리 능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정책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한우농가는 물량 조절뿐 아니라 생산비를 낮추기 위한 사료비 절감 등의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급육 생산을 통해 시장 차별화를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 한우산업이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주위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한우농가와 협회,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농협, 정부 등 모두가 적극 협조해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 기사입력 2012.01.13 (금) 16:09, 최종수정 2012.01.13 (금) 16:07
- [ⓒ 세계일보 & local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