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표적인 명절을 손꼽으라면 설과 추석을 내세운다. 요즘 들어 사흘간 공휴일이 제공되면서 우리나라의 명절은 설과 추석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사실 우리의 세시풍속에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풍속과 놀이를 전승했던 명절은 정월 대보름날이다. 우리 조상들이 대보름날을 매우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명절에는 대보름처럼 ‘대’가 들어간 명절이 없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명절을 뜻하는 것이다.
대보름날은 새해의 첫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인 만큼 보름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상들은 달이 생산을 관장하는 여신(女神)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여성의 달거리를 관장한다고 믿었다. 혼인을 한 여성들이 자식을 잘 낳을 수 있는 생산력을 강화하기 위해 달의 정기를 흡입하는 풍속도 전해졌다. 이처럼 생산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보름달이 새해 처음으로 떠오르는 날이기에 조상들이 매우 중요시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날은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祈豊) 행위가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곡물의 풍요로운 수확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 이런 곡물의 활발한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달이었던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은 달의 정기를 잘 받아 그해의 농사가 풍년 되길 기원하는 날로 정착됐다. 굶주림과 그로 인한 죽음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원초적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풍요로운 수확을 거둬야 하는데 달이 그런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믿었다.
정월 보름날에 행해지는 가장 중요한 의례행위는 마을신앙이다. 특히 마을의 진산에 계시다고 믿는 산신을 모셔 산신제 등을 지낸다. 전라도에서는 당산제, 강원도에서는 성황제, 경상도에서는 동제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는 마을제사가 행해진다. 현재도 전국적으로 마을제사가 전승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새벽에 행해지는 마을제사가 끝나면 정월 보름날 내내 말 그대로 축제가 벌어진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참여하는 줄다리기가 시작돼고 마을 곳곳에서는 술판을 벌인다. 안동지방에서는 ‘놋다리밟기’를 했으며 충청도와 전라도 등지에서는 횃불싸움이 행해졌다. 이런 제의와 놀이의 결합방식은 본래 신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장치다. 즉 신을 즐겁게 해준다면 사람들이 소망하는 내용을 다 들어준다는 원초적인 믿음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의례와 놀이의 결합은 한국 전통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다.
보름달이 떠오르는 저녁이 되면 마을의 논이나 공터에 세워둔 달집을 태우는 동화제(洞火祭), 혹은 달집태우기 행사가 벌어진다. 달집을 태우면서 그 해의 소망과 나쁜 기운을 모두 몰아내길 기원하는 풍속이다.
이와 함께 정월 대보름날 대표적인 풍속으로 ‘부럼깨기’가 있다. 호두와 땅콩, 밤 등 단단한 껍질을 깨서 먹는 풍속인데, 이렇게 하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시기는 건조하고 피부병이 많이 나기 때문에 식물성 기름을 섭취하면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술적인 행위로 ‘더위팔기’ 등을 하는데, 이렇게 하면 여름 내내 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외에도 ‘용알뜨기’, ‘나무 아홉짐 해오기’ 등의 풍속이 있다. 또한 정월 보름날에는 여름에 말려둔 나물을 먹는 ‘진채식’을 먹고, 귀가 밝아지고 좋은 소식만 들으라고 ‘귀밝이술’을 마시기도 한다. 특히 백 집의 밥을 먹으면 그 해 굶지 않는다고 하는 ‘백가반(百家飯)이나 다섯가지의 곡식을 넣어 먹는 오곡밥 등 다양한 풍속도 있다.
우리나라의 설은 설날부터 시작하여 정월 대보름날에 완성된다. 설날은 집안 식구가 모여 차례를 지내는 혈연(血緣) 중심의 날이며, 마음과 행동거지를 조심스럽고 바르게 하는 날이다. 하지만 설의 완성인 정월 대보름날은 마을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지연(地緣) 중심의 날이다. 게다가 이날은 흥겹게 놀고 마시는 즐거운 날이며 다양한 풍속이 행해지고 음식을 먹는 날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대보름날은 우리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뜻깊은 날인 것이다.
그러나 대보름날은 예전처럼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도시화와 핵가족화에 의해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지상주의는 우리를 분열시키는데 효과적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월 대보름날이 지닌 의미를 온전히 전승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월 대보름날이 단지 박물관에서나 행해지는 박제된 풍속이 아님을 알리는 것이 시급한 때다.
- 기사입력 2012.02.03 (금) 16:47, 최종수정 2012.02.03 (금)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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