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드디어 뉴타운 정책에 ‘대수술’을 단행했다. 박 시장의 뉴타운 정책 대수술은 사실상 ‘이명박식(式) 뉴타운 정책’의 퇴출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울시내 1300개 뉴타운·재개발 구역 가운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한 317곳이 연내 구역 해제 절차를 밟게 된다. 또한 추진위나 조합이 구성됐지만 아직 사업시행 인가를 받지 못한 293곳에 대해서도 연내 실태 조사를 거쳐 내년에 해제 여부가 결정된다. MB가 2002년 서울시장 시절 시작한 뉴타운 개발 방식을 사실상 뒤집고 뉴타운 대상 지역의 절반가량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당초에 강북 재개발을 겨냥했지만 구역 지정 남발과 부동산 경기침체로 골칫덩어리가 된 뉴타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박 시장은 지난 30일 뉴타운 문제 해결 방안을 담은 ‘서울시 뉴타운·정비사업 신(新)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그는 “외지인·건설사·투기세력·시행사만 판친 뉴타운 사업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업이었는지 묻고 싶다”며 “사회적 약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전면 철거 방식의 뉴타운·정비사업 관행을 거주자 권리가 보장되는 ‘공동체·마을 만들기’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우선 사업시행 인가를 받기 전 단계인 610곳(아파트 재건축 제외) 가운데 아직 추진위가 구성되지 않은 317곳은 토지 등 소유자의 30% 이상이 요청하면 올해 안에 구역 해제를 적극 검토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종로구 창신숭인·한남1(재정비촉진)·신길16·망우2·독산1(재건축정비) 구역 등이 연내 해제가 유력하다. 서울시는 추진 단계별로 2~3년 가량의 일몰(日沒) 기간을 정해 이 기간 안에 다음 단계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구청장이 뉴타운 재개발 지정을 취소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정비사업이 시행되는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기초생활수급자는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받는 등 세입자 주거권도 보장받는다. 그러나 이번 발표만으로 실타래처럼 이해관계가 얽힌 뉴타운 문제가 정리될지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우선 이번 방안은 주요 정책 수단을 가지고 있는 정부와의 조율을 거치지 않은 ‘반쪽짜리’ 구상이다. 박 시장의 구상이 현실화 되기 위해선 재개발 과정에 세입자가 참여할 수 있는 법 개정과 매몰 비용에 대한 정부의 재원 분담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박 시장과 대립각을 세웠던 국토해양부가 시의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세입자들의 권리를 강화한다면서도 정작 의결권을 가진 토지 소유자들을 설득할 방안이 없는 것도 문제다.
결국 이번 뉴타운·재개발 출구전략의 성공은 결국 누가 돈을 내는지에 달렸다. 사업구역이 해제될 경우 현재까지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들인 돈은 회수할 수 없는 매몰비용이 된다. 이 때문에 사업비의 보전 없이 구역 해제를 추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추진위나 조합이 구성된 곳은 문제가 심각하다.
뉴타운 문제는 당장 오는 4.11총선에서도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정치권은 지난 총선 때 뉴타운 덕을 봤던 현직 한나라당 의원들을 상대로 야당 후보들이 이 문제를 주요 공격 소재를 삼을 것이다.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 의원들은 뉴타운 취소를 막아내겠다며 역공을 취할 수도 있다.
이번 발표로 뉴타운·재개발 사업의 대대적인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지금까지 지정됐던 사업을 해제하거나 포기하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가격 하락과 동시에 부동산 거래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면서 사업이 계속되길 바라고, 원주민들은 높은 부담금을 감당할 수 없다며 사업 반대를 외치며 주민간 마찰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도 크다. 특히 뉴타운 초기 사업장의 경우 이번 발표에 따라 구역 해제가 잇따를 전망이다.
이에 따른 부동산 가격 하락도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재건축·재개발·뉴타운에 대한 투자성이 강하게 부각되면서 투자자들이 몰려 일부 지역에서는 3.3㎡당 지분 값이 수천만원을 웃돌기도 했지만 최근에 가격 하락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남 뉴타운 일부 구역의 경우 지난 8년간 사업이 계속 지연되면서 지분 값이 3.3㎡당 2000만원 이하로 떨어졌는데도 문의가 끊긴 지 오래다.
그러나 사업추진 속도가 빠른 곳은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도 있다. 사업 시행자가 임대주택 추가 확보 등 세입자 대책을 강화하면 시가 층수를 더 올릴 수 있도록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의 지원책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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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12.02.14 (화) 11:21, 최종수정 2012.02.14 (화)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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