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中道)’의 재발견인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다시 정치 전선에 등장하면서 중도의 기치를 내건 것이다.
그는 “정치라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한 뒤 “만약에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면 어떤 특정한 진영의 논리에 기대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지금껏 친야 성향으로 인식돼온 바와는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언급이다. 그가 최근 탈북자 북송 반대 집회와 방송사 노조 연대파업 현장을 잇따라 찾은 데서 좌우를 넘나드는 행보를 엿볼 수 있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보완하며 함께 가야 한다는 안 원장 측의 해석은 일단 공감과 울림이 크다.
물론 ‘제로섬 게임’ 같은 여·야의 대립구도를 뛰어넘는 안 원장의 구상은 독자적 대권 행보 의 시사로도 해석된다. 연말 대권과 연계된 이번 19대 4.11 총선 이후 뜨거운 정치 이슈를 예고하고 있음이다. ‘공동체 상생’을 전면에 내건다면 폭발력은 예측 이상으로 크고 깊을 수 있다.
‘특정 진영 논리’ 탈피한 중용의 가치 재발견
안 원장의 정치 이상을 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의 중도정치는 ‘중용(中庸)’으로 대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중도·중용은 즐거운 추억이 많지 않다. 잘못된 문화, 곧 이분법적 사회 현상 속에서 자칫 과거처럼 ‘사쿠라’로 매도될 수도 있다.
특정인의 주장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중도·중용의 길은 진지하게 모색돼야 하는 것이다. 중용이란 무엇인가. 동서양과 고금을 뛰어넘어 지도자가 갖춰야 할 제1덕목이다. 중용은 ‘융통성 있는 원칙주의’를 가르친다. 세계 곳곳에서 ‘탐욕에 대한 분노’와 ‘정의에 대한 갈구’가 확산되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가 상징하듯 현대자본주의는 계층 간 ‘분노’를 안고 있다. ‘중용민주주의’가 요청되는 대목이다.
이는 곧 성숙한 민주화에 기반한 상대화의 튼실한 뿌리내림을 전제로 한다. 프리덤하우스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204개국 가운데 157개국이 민주국가 내지 민주화 과정의 국가로 분류된다. 한국은 민주화는 수준 이상이지만 상대화에선 부족하다. 극단이 아닌 배려, 양보를 통한 제3의 길 모색이 바로 중용 정신인 것이다.
일찍이 플라톤이 “정의는 중용”, 아리스토텔레스도 “중용은 법”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중용을 다소 밋밋하게 느낀다. 여전히 어중간한 태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정의’라는 용어는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번역어다. 이 단어엔 가슴이 뛰지만, ‘중용’에 대해선 무덤덤한 게 사실이다. 롤스는 정의란 ‘독단론과 환원주의의 중용’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성찰적 균형’, ‘겹치는 합의’가 중용이다. 원칙과 상황 사이의 대화를 통해 고난도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동양 고전 ‘중용(中庸)’에는 화이불류(和而不流)란 말이 나온다. 서로 화합해 어울리되 패거리지어 그릇된 일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패거리들 사이의 작은 의리에 연연하지 말고 대의에 따르라는 가르침이 들어 있다.
서로 화합하되 패거리 짓는 일은 삼가해야
우리 선조들 중 원효와 다산을 빼놓을 수 없다.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은 그 기준이 ‘중용의 정의(中道義)’이다. 이 역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최대한의 합의점을 찾는 것, ‘적절한 균형’을 뜻한다. 추상적 논의가 아니라 삼국통일의 사상적 기반으로 제시됐다. 다산도 있다. 그는 조선의 현실을 ‘시중지의(時中之義)’의 관점으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천하의 만사와 만물에 대해 반드시 한다는 것도 없고 말아야 한다는 것도 없다. 오직 의에 맞으면 행하고 의에 어긋나면 멈춘다는 철학이다. 동·서양의 석학들이 보여준 중용의 명제들을 한데 꿰면 황금의 염주가 가능할 터이다.
영국의 세계적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현 세기를 ‘극단의 시대’(ages of extremes)라고 불렀다. 합리적인 기준을 세워, 흑백논리만이 존재감이 있어 보인다고 여겨지는 시대다. 이건 아니다. 자로 재듯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세상일은 별로 없다. 상대의 처지를 헤아려보려는 노력이 요청된다. 여·야당 모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비슷할 터이다. 서로 헐뜯지만 말고 정책과 도덕성, 성실함으로 미래비전을 제시하길 바란다. ‘색깔론’ 같은 편벽된 이데올로기 공세나 ‘정권 심판’ 같은 정치공세는 설 땅이 없는 것을!
- 기사입력 2012.04.06 (금) 13:35, 최종수정 2012.04.06 (금)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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